패티김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패티김

해피y 2020. 5. 20. 21:46



본명:김 혜자(패티 김)

출생:1938년 2월 28일 (서울)

데뷔:1958년 미 8군무대

직업:가수

                               





[내용정리: 카페지기 서 봉 석 - KBS관현악단 출신모임]

 

 항상 단정하고 자존심 강한 천재적 작곡가인 박춘석님의 병환중인 모습을 어느 다음카페에서 접하게 되었다.

음악인들을 통해서 아무도 만나지 않는다는 말은 듣고 있었지만 이 사진을 보니 너무나도 충격적이어서 말이

안 나온다.  1987년에 本 카페지기는 KBS악단을 인솔하여 부산 해운대의 웨스틴조선호텔에서 패티김쇼를

하게 되었고 지휘와 피아노는 박춘석님께서 담당하셨었다.  그후에도 가끔 KBS에 오시면  뵙는 정도였지만

병으로 고생만 하고 계시다니 가슴이 답답하다. 그분이 지켜온 음악의 수준이나 인격이 어느 분야에 비교해도

부족함 없이 자랑스러운 분이었는데 ...........빠른 시일내에 그분의 건강한 모습이 소개되었으면 좋겠다.


1994년 8월9일 새벽 뇌졸중(중풍)으로 쓰러진 후 "병든 모습을 보이기 싫다"며 한번도 언론의 인터뷰에

응하지 않던 투병중인 작곡가 박춘석(본명 박의병.78)씨가 2001년, 7년만에 처음으로 인터뷰한 한국일보

박은주기자의 게재내용을 어느 다음카페에서 접하게 되어 그 내용을 정리해 보고저 한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2000년에는 폐렴까지 겹쳐 오래 입원해 있었으나  병세가 호전돼 서울중앙병원에서 통원 치료를 받았고.

말은 하지 못하고 가까운 친지만 간신히 알아보는 상태였고 서울 송파구 잠실동의 20평 남짓한 주공아파트에서

동생 박금석(76)님과,  또 연세가 비슷한 아줌마의 병수발을 받으며 외롭게 살고 있다고 한다.

새벽까지 곡을 쓰다 쓰러진 박춘석님은 정신적 충격을 받아 와병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극구 거부해왔으나

재활치료를 받으며 기분이 꽤 좋아져 한국일보에서 왔다는 박은주기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고 한다.

 

-다음은 2001년 한국일보 박은주 기자가 쓴 박춘석님의 음악활동에 대한 기사내용-


박씨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2,700곡을 발표했고, 고 길옥윤씨와 더불어 가장 많은 히트곡을 남긴 가요계의

거목이다. 작곡가인 동생 금석씨는 "고무 공장을 하는 아버지 덕에 어릴 적 집에 피아노와 오르간이 있었다.

형은 한번 들은 노래에 화음을 붙여 다시 연주하는 천재였다"고 회상했다.

경기중학 5학년(고교 2년)인 1948년 당시 서울대 치대에 다니던 길옥윤씨와 만나 함께 음악활동을 하기도 했다.

박씨도 서울대 음대에 진학했지만 1학년후 중퇴하고 신흥대(현 경희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그의 작곡 데뷔곡은 최양숙이 부른 '황혼의 엘레지' "목이 메인 이별가를 불러야 옳으냐"로 시작하는 '비내리는

호남선'은 손인호가 불러 공전의 히트를 했다.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 '기러기 아빠' 같은 애절한 노래, 나훈아의 '물레방아 도는데' 와 은방울 자매의 '마포종점'

처럼 토속적 색채가 짙은 가요, 패티김의 '초우'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처럼 고급스런 팝스타일 등이 모두

'박춘석 사단'의 산물이다. 음악으로 평생을 보내고 이제 병마와 싸우는 쓸쓸한 몸이 됐지만 그는 한국 가요의

지평을 넓힌 작곡자이자 탁월한 재즈 피아노 연주자였다.

<사진설명> 2001년 7년째 투병중인 박춘석님(중앙). 왼쪽은 동생 금석님,



세계적으로 히트한 어느 팝송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수준높은 멜로디.

이곡은 바로 박춘석님의 음악성을 대변하는 곡이라는 생각이 든다.

패티김이 불러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곡을 세계적인 클래식계의 첼리스트 베르너 토마스가 연주했다.


                                                                        

 

80세를 일기로 세상을 뜬 명작곡가 故 박춘석 선생의 노래를 받았던 패티김(72)이 YTN '이슈 앤 피플'에 출연, 그에 대한 추억을 털어왔다.

 

패티김은 YTN과의 인터뷰에서 박 작곡가가 돌아가시기 전 병상을 찾아가 자주 노래를 불러주었다고 한다. 패티김은 "나중 뇌도 마비된 상태에서 자존심도 세서 내가 손 붙들면 손을 빼고 외면하고 그랬지만, '초우' '못잊어' 등의 노래를 불러드리니까 눈물을 주르르 흘리셨다"고 생전을 추억했다.


그녀는 또 자신의 1959년 데뷔초의 박춘석 선생과의 '아주 특별한 인연'도 털어놨다.

 

"8군 출신이 대부분이었던 당시 오디션으로 가수를 뽑았는데, 귀공자풍의 박선생님이 자신을 '키크고 노래 잘하는 신인'으로 소문듣고 찾아와 노래를 주셨다"는 것.

 

당시 美8군서 노래를 불러야 하기 때문에 '틸'과 '파드레' 등 번안가요도 했지만, 패티김은 박춘석으로부터 '초우' '못잊어'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가시나무새' 등의 명곡을 받았다고 했다.


그녀는 "당시 트로트 민요가 대세였는데 박선생님은 클래식한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가시나무새' 등 어떻게 그런 노래를 만드셨을까 할만한 천재적 작곡가였다"고 그를 회고했다.


패티김은 또 "노래를 잘 불러야 진짜 가수다. 요즘 춤 잘추는 가수가 많이 나오는데, 그러면 무용수이지 않은가"라며 "노래만을 위한 가수가 나왔으면 한다"고 요즘 가요계를 꼬집기도 했다. 패티김은 박춘석 선생이 준 노래 중 무엇이 가장 애착이 가냐는 앵커의 질문에 '사랑은 생명의 꽃' 과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을 꼽았다.

 

(글: 마이데일리 문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