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되어 우리들은 본래의 성과 이름을 되찾았다.
중학교 시절 처참한 6.25전쟁을 겪으면서
죽을 고생을 다 했다.
대학을 재학중이거나 마치고 징집 영장을 받았다.
춥고 배고픈 자유당 군대에서
최전방 부대, 또는 후방에서 군 복무를 마쳤다.
복학하자 4.19가 터져 데모를 했으며,
그후 5.16을 겪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압축성장’의 한 가운데서
우리들이 어렸을 때 처음 타본 게 소달구지였다.
그러나, 지금은 자가용 승용차를 타고 다닌다.
파란만장한 격변기를 살아온
대표적인 구 세대인 셈이다.
현재 70,80 세대는 거개가 비슷한 세월을 살았다.
서울대 사학과 주경철 교수는,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현재 생존해 계신 우리나라 어르신들은,
관솔불로 불 밝히던 어린 시절을 보낸 후
전등과 상하수도를 사용하고
리다오와 텔레비전을 거쳐
이제는 컴퓨터와 스마트폰까지 익숙하다.
식민지, 광복, 전쟁, 혁명, 군사정변, 계엄령,
대통령암살, 개헌 등, 다른 나라에서는
거의 구경하기 힘든 일들을 모두모두 겪으며
민주화에 이르는 과정을 지켜봤다.
무엇보다 보릿고개에 시달리던
최빈국 상태에서 벗어나 경이로운 경제발전을 이룬
세계 10위권 국가에서 노년을 보낸다.
여기에서 한미디 젊은이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경북 구미시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생가가 있다.
현재 찾아오는 관람객들이 꽤 된다.
생가 초입에는 "보릿고개 체험관"이 있다.
보리개떡과 막걸리를 싼값으로 판다.
윤용하 작곡가가 지은 "보리밭" 가곡이 생각날 것이다.
금년이 윤 작곡가가 서거한지 50주기 되는 해다.
"보릿고개"를 모르는 사람은 "가난"을 모르며,
"가난"을 모르는 사람은 "보리밥의 진미"를 모른다.
70,80 세대! 이분들이야말로 인류역사상
가장 큰 변화를 경험한 세대가 아닌가?
파란만장이란 말은, 생활이나 일의 진행에서
여러가지 곡절이 많고 변화가 심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 구 세대는 고생한 만큼
세상을 볼 줄 아는 ‘지혜의 눈’도 가지고 있다.
오직 경험자만이 가지는 판단기능인 것이다.
이런 혜안은 우리 세대로 마감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할 수 있다.
19세기 초에 우리와 비슷한 수준이었던 다른 나라들은
지금 1인당 국내총생산이 6000달러정도에 도달해 있다.
2014년도 세계은행 통계에 의하면,
앙골라와 도미니카 공화국이 그런 나라들이다.
우리의 GDP는 거의 3만불에 육박하고 있으며
이는 세계사적으로 예외에 속하는
놀라운 발전인 것이다.
그런데, 2015년도 ‘세계행복지수’를 보면,
조사대상국 143개국 중 118위로 최하위권이며
자살율 세계3위라는 불명예를 가지고 있다.
세계 최고수준의 기적같은 경제성장을 이루고도
왜 행복하지 못한 나라가 되었을까.
우리는 정말 ‘기적을 이루었으면서도 기쁨을 잃은’
나라가 되었는가?
이제는 애들까지도 우리나라가
여기에는, 이렇게까지 된 데에는
반드시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걸 찾아 해결하지 않고는
여기에서 주저앉을 확률이 아주 크다.
그래서 문제가 심각한 것이다.
우리들 구 세대가 겪은
파란만장한 생애를 큰 거울이라고 한다면,
거기에 비친 지금의 한국이 보인다.
우리에게 제일 큰 덫은 북한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섬나라나 마찬가지다.
하늘과 바닷길은 있어도 육로가 없다.
대륙과 연결이 안되어 진출이 안되는 것이다.
육로만 있다면 부산에서 암스텔담이나 안트워프까지는
물류에서 입고 있는 손해는 계산자체가 안된다.
다음이 첨예한 남북대치다.
엄청난 국방예산을 써야 하고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형편이다.
사악한 종북좌파 세력들의 발호가
여기에 불을 끼얹어 갈등을 증폭하고 있으며
남남갈등은 온갖 모함과 비열함으로
우리 사회를 쪼개고 있다.
비비꼬인 인간들이 도처에서 여기에 편승,
국론을 분열, 왜곡하고 있으며
특히 제도정치권안에서 제 잇속만 챙기는
사악한 인간들 중에 종북세력이 많다.
국회는 이들이 안전하게 서식할 수 있는
큰 숙주가 된지 오래다.
생각하면 기가 막힌 일이다.
우리 구 세대들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대통령은 두분뿐이다.
건국대통령 이승만과 경제대통령 박정희가 그분들이다.
우선, 그분들은 진정한 애국자들이었으며
세상을 읽을 줄 아는 혜안이 있었고
실타레처엄 얽힌 일들을 풀어내는
탁월함이 있었다.
그때, 세계정세에서 이승만 없이
대한민국은 건국할 수 없었으며
그 기반에서 나라의 가난을 끊고
일어선 분이 박정희 대통령이다.
산업의 대동맥인 경부고속도로를 시작했을 때,
제일 앞에서 이를 반대한 것이 김대중이었으며
그 추종자들은 중장비 앞에 드러눕기까지 했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오랫동안 그때와 같은
정치적 구심점-국가 리더십이 없다.
모두가 도토리 키재기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인물’이 안 보인다.
국가 리더십은
나라의 명운을 가를 수 있는 중차대한 문제다.
우리 모두는 하늘이 이 민족을 사랑하시어
‘출중한 인물’을 보내주시기를 기원해야 한다.
한편 냉정한 머리와 날카로운 눈으로
새인물-새 지도자를 찾아야 한다.
그 다음이 온갖 사회적 갈등들이다.
갈등은 칡과 등나무라는 뜻으로
개인이나 집단 사이의 목표나 이해관계가 달라
서로 적대시 하거나 불화가 있는 상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갈등의
첫 자리는 양극화 현상이며
결국 빈부격차의 문제인 것이다.
갈등의 근저에는 가진 자들의 엄청난 부가
정당성이 부족하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상위 1%가 부의 19.5%를 독점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런 대치는 위험 수준일 수 있다.
그 안엔 상당한 수준의 상대적
박탈감이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인간은 일-노동을 통해
그 댓가로 수입-임금을 받아 생활해 왔다.
그러나 지금은 고전자본주의보다
금융자본주의가 막대한 수입을 올리는
시스템이 되어 있다,
그리고 그 규모는 임금노동의 수입과는
비교자체가 안되는 차원이 됐다.
앞으로 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는 아무도 모른다.
예를 들어 2015년 현재,
이건희의 재산은 14조 4.039억원이며,
이재용은 8조 4.474억원이다.
이들이 임금노동을 통해
이런 큰 돈을 벌 수는 없다.
돈이 돈을 버는 것이다.
상속재산이 막대했고,
주가의 상승과 배당이
앞으로 이 재산은
다시 돈이 되어 더 큰 돈을 벌어들일 것이다.
정몽구의 재산이 6조 6.480억원인 것이나
최태원의 재산이 4조 71억원인게
모두 같은 스토리들이다.
그렇다면 이런 양극화 현상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가?
계층간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면
따라서 정부-집권세력의
‘재분배 의지와 철학’ 이 중요해진다.
합법적으로 많이 가진 자의 것을 세금으로 흡수,
없는 자와 고통받는 자들에게
나누는 ‘복지정책’이 그것이다.
단지 월 20만원의 노인연금을 받고
그래서 ‘맞춤복지’는 가장
큰 해결책이 될 것이다.
다른 하나가 일자리를 놓고 벌이는
세대간 갈등이다.
정년을 연장하고 임금피크제를 도입해도
이 문제는 그 근본에서 풀리지 않는다.
시장이 가지고 있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서 어긋나기 때문이다.
한때 85%까지 치솟았던
대학 진학율이 문제의 뿌리다.
1970년대의 진학율은 25%였다.
수요가 없는 공급이 만들어 낸 게
100만 백수들이다.
엄격히 말한다면, 일자리가 없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일자리’ 가 없을 뿐이다.
100만 외국인 근로자들의 존재가 그 증거이며,
지금도 우수 중견기업엔 8만개의 일자리가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이는 사람들의 가치관도
따라서 변해야 하는 어려운 문제다.
지금처럼 매년 엄청난 대학 졸업생이 배출되는 한
이 문제는 절대로 해결될 수 없다.
세대간의 갈등을 해결하는
근본적인 방법은 그것밖에 없다.
나머지는 모두가 가지 치기이며 땜질일 뿐이다.
우리사회의 지역 갈등은 고질적인 병이다.
이 해묵은 갈등은
이기적인 정치 지도자들이
부추긴 측면이 아주 크다.
누가 그 혜택을 크게 입었는지는
그러나 해소 못할 일은 아니다.
시대도 변했고,
눈을 크게 뜨면 세상이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종북좌파의 존재는 우리 몸을
갉아먹고 있는 암과 같은 것이다.
사이비 진보좌파는 이땅에서 호의호식하면서
이미 폐기처분된 사회주의의 시신을 안고사는
공교육을 붕괴시킨 사교육시장은
어리석고 탐욕스러운 부모들과
학원 모리배들이 합작,
국가의 장래를 좀먹고 있는 한탄스러운 일이다.
애들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원인도 여기에 있다.
일본사람 셋이 모이면 뭉치고,
한국인이 셋 있으면 셋으로 갈라진다‘는
우리 사회의 각종 분열은
스스로를 갉아먹는 병균과 같은 것이다.
개성적인 것과 개인적-이기적인 것을
구별하지 못해 생긴 기현상이기도 하다.
분열도 쉽게 없어질 것 같지는 않다.
정직하게 말한다면,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온갖 갈등은
압축성장을 하면서 건너 뛰었던
과정들이기도 하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얘기다.
주경철 교수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 보자.
‘이제는 현명한 발전의 길을 모색하고
사회 갈등을 완화하는 방법을
우선 교육에서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청소년들을 한줄로 세우는 지옥에서 해방시키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가르치자.‘
국가의 미래는 전적으로 교육에 달려있다.
백년대계라는 게 그 뜻이다.
우리가 최빈국에서 압축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생산라인에 투입할 ‘교육받은 인력’ 이 있었기
교육받은 젊은이들의 섬세하고 매서운 손끝에서
세계 사람들이 사가는 가발이 만들어졌으며,
품질이 뛰어난 신발은 물론, 아름다운 색상에
탄탄히 짜여진 옷감이 만들어진 것이다.
독일에 간 간호사와 광부들도
모두가 세계가 인정한,
교육이 곧 효율이고 생산성인 것이다.
이 값비싼 자산은 학원에서는 나오지 못한다.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했을 때,
가장 시급하고 절실한 문제는
단시일안에 인구를 늘리는 것이었다.
그들은 아프리카 오지에 D70년
로마에 의해 추방된 단지파 유대인의
일부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 유대인들은 흑인이 다 돼 있었지만
엄격한 유대교 율법에 따라 사는
이스라엘인이었다.
그들을 실어오기 위해 급파된 수송기 안에서
비행기안이 춥다고 바닥에 모닥불을 피우는 수준이었다.
그들중 가장 잘 교육받은 사람이라 해도
할 수 있는 일은 우체국에서 편지들에
그래도 이스라엘은 포기하지 않고
그들을 교육시켜 이스라엘을 지키는
군인이 되게 했으며 생산성이 높은
산업전사로 키웠다.
아랍연합이 4번 이스라엘과 싸웠지만
교육이 미래라는 말은 절대로 빈말이 아니다.
우리가 붕괴된 공교육을 하루속히
일으켜 세워야 하는
절실한 이유가 그것이다.
사람만 제대로 키워내면
나라의 앞날은 걱정 안해도 된다.
역사의 발전에 비약은 없다.
어느 사회에도 거쳐야 할 여러 단계가 있다
옮겨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