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시절

이 갈린 김일성이 만든 동족 상전의 비극 삶과 죽음

해피y 2017. 12. 26. 22:03

이 갈린 김일성이 만든 동족 상전의 비극 삶과 죽음


▲ 1950. 12. 3. 평양, 남행 피난민 행렬 속의 한 소녀.

▲ 1950. 12. 10. 중공군의 참전으로 강추위 속에 후퇴 행렬. 한 병사가 너무 추운 날씨로 모포를 뒤집어쓰고 있다.

▲ 1950. 12. 12. 흥남부두, LST 함정에 가득 탄 군인과 피난민들. 미처 함정에 오르지 못한 피난민들이 발을 동동거리고 있다. 대부분의 피난민들은 원자탄이 투하된다는 말에 피난 행렬에 나섰다고 한다. 몇 날의 피난 길이 50년이 더 지났다.

▲ 1950. 12. 14. 서울역, 남행 피난민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 1950. 12. 16. 흥남, 국군과 유엔군들이 후퇴하고자 부두에서 수송선을 기다리고 있다.

▲ 1950. 12. 27. 흥남, 얕은 수심으로 수송선이 해안에 닿을 수 없자 유엔군들이 바다에 뛰어들어 LST로 가고 있다.

▲ 1950. 12. 24. 흥남, 유엔군들이 철수 후 부두를 폭파시키고 있다.

▲ 1950. 12. 19. 묵호, 흥남에서 철수한 장비를 묵호(동해)항에 내리고 있다.

▲ 1950. 12. 28. 서울, 피난민들이 강추위 속에 한강 얼음을 깨트리며 나룻배로 남하하고 있다.

▲ 1951. 1. 5. 피난 행렬 속의 소년과 소녀. 소달구지가 힘겨워하자 힘을 보태고 있다


▲ 1951. 10. 21. 평양. 살기 위해 태극기를 들고 살려달라고 애걸하고 있다.
▲ 1951. 4. 4. 홍성, 수로에 널브러진 유엔군 시신들.
▲ 1951.1. 4. 공산군의 시신들.
▲ 1951. 5. 25. 길바닥에 나뒹구는 중공군 시신.
▲ 1951. 1. 23. 유엔군들이 상여가 나가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다.
▲ 1950. 7. 5. 한 국군 용사의 무덤.
▲ 1958. 5. 28. 무명 용사의 시신을 본국으로 보내는 미군.
▲ 1950. 7. 5. 국군 헌병이 북한군을 생포하다.
▲ 1951. 6. 12. 원주, 미군들이 야전에서 미사를 보고 있다.
▲ 1951. 7. 3. 미군들이 한국 어린이에게 구제품을 나눠주고 있다.
▲ 1951. 10. 21. 평양. 살기 위해 태극기를 들고 살려달라고 애걸하고 있다.
▲ 1951. 4. 4. 홍성, 수로에 널브러진 유엔군 시신들.
▲ 1951.1. 4. 공산군의 시신들.
▲ 1951. 5. 25. 길바닥에 나뒹구는 중공군 시신.
▲ 1951. 1. 23. 유엔군들이 상여가 나가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다.
▲ 1950. 7. 5. 한 국군 용사의 무덤.
▲ 1958. 5. 28. 무명 용사의 시신을 본국으로 보내는 미군.
▲ 1950. 7. 5. 국군 헌병이 북한군을 생포하다.
▲ 1951. 6. 12. 원주, 미군들이 야전에서 미사를 보고 있다.
▲ 1951. 7. 3. 미군들이 한국 어린이에게 구제품을 나눠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