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시절

추억이 되버린 사라진 풍경들

해피y 2018. 1. 17. 07:51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그러나, 더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 그것은 `사라진 것들'이다.
특히 `오래된 것'이면서 `사라진 것'들은
이젠 볼 수 없기에 더 아련하고 더 아름답게만 느껴진다.



얼핏 보면 저 먼나라의 대초원 같지만 우리나라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제주의 풍경이다.
크고 멋진 나무 아래 다소곳하게 자리잡은 제주의 초가집.
지붕 선이 완만하면서도 봉긋한 모습이 마치 제주의 오름을 꼭 닮아보인다.

고 임인식 사진가가 1950년대 찍은 제주 초가 사진이다.
우리나라 어디에서든 가장 흔했던 초가집은 이제 다 사라졌다.
바람이 세게 불어 지붕을 줄로 얽어매는 제주의 초가집들도 마찬가지다.
새마을 운동으로, 그리고 현대화로 사라졌다.
그 거대한 흐름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좀 남아있으면 좋았을텐데
이제 제주에서 제주 초가를 볼 수 있는 곳은 민속마을 외엔 거의 없다.

이 사진을 찍은 임인식 선생 집안은 무척 흥미롭고 유별난 집안이다. 온 집안이 사진가다.
임선생은 한국전쟁을 전장에서 직접 촬영한 종군사진가로 유명하다.
그리고 그의 작은 아버지 임석제 선생은 한국 리얼리즘 1세대 작가다.
그리고 조카보다 먼저 제주의 초가를 찍었다.
역시 1950년대 제주 초가가 있는 풍경이다.




집 뒤로 한라산이 펼쳐지는 어느 제주 마을, 두 소녀가 막 집을 나선다. 지금은 칠순 노인이 되었을 분들.
지붕을 묶는 제주 초가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한국의 초가들은 고장 산들의 능선을 닮았다.
오름과 한라산처럼 부드러운 산으로 둘러싸인 제주의 초가는 그 산들처럼 부드럽다.

작은 할아버지 임석제 선생과 아버지 임인식 선생에 이어 아들 임정의 작가도 사진가의 길을 걷고 있다.
그는 한국 건축사진계의 1세대 중요 사진가인데, 그 역시 제주의 초가를 오랫동안 찍어왔다.
한 사진 집안과 제주의 특별한 인연이다




임정의 선생이 찍은 한림 부근 바닷가 초가다.
오래된 것들, 아름다운 것들, 그리고 안타깝게도 사라진 것들이었다.
오래되고 사라진 것들이 주는 감흥은 늘 매력적이다. 저 사진 속 초가들은 이제 모두 사라졌다
우리는 그 모습을 이제 저런 오래된 사진을 통해서만 볼 수 있다.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다.




1955년 물동이를 지고 가는 서귀포 아낙네들의 모습. (임석제 사진)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에서 시인은 이렇게 노래한다.
"오랜 시간을 순명하며 살아나온 것 시류를 거슬러 정직하게 낡아진 것
낡아짐으로 꾸준히 새로워 지는 것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저 초가들이 꼭 그렇지 않은가. 정직하고, 낡았고, 세월의 더께가 쌓였다.
치열한 삶의 현장이기에 정직하게 낡은 것이고, 낡아서 늘 새로워지는 것들이다. 그리고 이젠 사라졌다.




1957년 성읍마을 고목과 아이. (임인식 사진)

오래된 것이 다 아름다운 것처럼 오래된 사진들은 다 좋다. 저 사진들이 그렇다.
게다가 당대의 사진가들이 찍은 것이니.
이 사진들을 보면서 저 시절 제주를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내가 태어나기 전 모습을 상상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에도 남아 있으면 우리도 볼 수 있으련만,
우리는 늘 우리의 과거를 지워왔다.
그리곤 이렇게 사진으로만 아쉬워한다.




1993년 명월마을. (임정의 사진)

1993년이면 불과 20년 전 아닌가.
이 근사한 초가가 살기 불편하다면
몇 채 쯤은 나라에서 남겨놓았으면 안되는 것이었을까.
오래되어 아름답고 사라져서 더 사무치는 것들의 모습을 혼자 보기 아깝다.




1954년 서울 가회동, 그러니까 지금 `북촌'으로 불리는 동네의 모습이다.
네모 반듯한 도시한옥들이 촘촘하게 동네를 이룬 모습이다.
지금은 이 집들 중에서 얼마만이 남아 있을까.

임인식 선생은 군인이었고 종군 사진가였고,
또 당시로선 거의 유일하게 항공 사진을 찍은 기록자였다.
그리고 이런 사료적 가치가 있는 사진들 못잖게 생활상도 많이 찍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촬영 대상은 물론 그의 가족이었다.
아들 임정의 선생을 비롯한 식구들의 모습을 찍은 사진들은 지금 보면
우리 부모님 세대가 이렇게 살았구나 실감하게 해준다.




임인식 선생 집은 가회동이었다.
그 가회동 집에서 1954년 어느날 점심을 먹고 있는 임정의 선생의 동생이다.
저 사진은 무척 재미있다. 양은냄비들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는데,
눈에 띄는 것은 창문 틀에 놔둔 시계. 손목시계도 무척 귀했을 시절일텐데 말이다.




당시만 해도 가회동에는 기와집이 아니라 초가집들이 수두룩했다고 한다.
그 초가집을 나서 학교에 가는 임정의 선생과 여동생의 모습이다.
1953년 초등학생들의 모습이다. 고무신을 신은 모습이다.
전쟁 직후였으니 정말 열악했던 시절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재미있었던 사진들은 이것들이다.
1953년 인사동 찻집 입간판과 그 옆에선 꼬마다.
전쟁 직후 피폐했던 서울에서 저 입간판이 어린 꼬마에겐 무척이나 신기했을 법하다.
꼬마는 간판 옆에 서서 포즈를 취했고,
아버지는 그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고무신에 눈길이 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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