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세월 한 때의 명동 거리
모두가 힘겹게 살아온 과거를 돌이켜 보고자 합니다.
지금도 옛모습이 남아있는 곳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나가는 짚차가 아직도 다니는것 보면 무척 튼튼한 차인가 봅니다
이분도 아마 지금쯤 40대 후반이겠지요..돈벌로 서울로~서울로 많이들 모여들었지요
아이낳고 오래살다가 나이들어 결혼하신분도 많았지요.웨딩드레스는 꿈도 못꾸고 한복차림의 결혼식이 많았답니다
예전에는 못먹어서 아이들은 무척 외소하던 때라 이런 대회가 무척 인기 었답니다
다이얼식의 전화기하며 앞에 보이는 타자기 무척이나 정겹지요 저때는 컴퓨터가 없는 시대라 타자기 자격증을 꼭따야 했답니다~
창포에 머리감고 액운을 �고 개울에 멱감으며 ~아련한 추억들이지요
이때는 열차를 몇칸씩 전세내어 수학여행를 떠나곤 했지요 사실은 돈이없어 못가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이당시 전국에 휘몰아 첫던 고고 열풍 대단했었지요
노약자들은 밀려서 다음버스 또 다음 버스 ~ 줄서기가 없었던 시절이 었습니다
못먹어서 오는 병이며 주변에 너무도 많았습니다..위에 저분도 지금 50세정도는 되셨겠네요
피곤한 서민들의 피로를 씻어주시던 분들입니다 좌측 송해/000/김상국/서영춘/000선생이 시네요
아침이면 무작정 이곳에 모여 영화사에서 뽑아가 줄때를 기다리는 인력시장이었습니다
33층인가요? 당시는 동양에서 3번째 높이의 빌딩으로 명물이었지요
길거리에서 놓아주었지요~어른들은 모이고 아이들은 도망가고~ 그땐 전염병도 외그리 많이 성행했는지....
전화 당첨되도 1년 이상은 기다려야 설치가 되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당시 아이를 많이 낳지 않았다면 우리나라 일손 부족으로 경제성장이 어려웠을것 같은 생각도 듭니다
아침에 라듸오를 통해서 전국에 방송되면 구령에 마추어 하나 둘 셋넷 ~ ㅎㅎㅎㅎ
퇴근길에 한두장 사서 새끼줄에 꿔어 들고와 부억 아궁이에 피운던 시절을요 연탄 가스로인해 사랑하는 부모형제를 잃은 분들을 매면 겨울이면 접했었지요~
모자가 무척 이색적이지요
지하 수천미터에서 목숨을 걸고 우리나라 경제발전을 위해 애쓰신 분들입니다 갱속이 무너지고 산소가 끊히고 가스가 폭팔하고 참으로 많은 분들이 돌아가셨답니다
일거리가 부족하던 시절이라 목숨걸고 일하시던 분들이 많았습니다
지금 신어도 멋에서는 뒤질 수없는 예쁜 구두죠?
. 북이 파내려온 땅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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