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오늘의역사)2월 17일(음력 1월 24일) 庚寅 월요일

해피y 2020. 2. 17. 17:38

^빨간명찰^<_p>

▷ <_strong>▷ <_strong>1904년 2월 17일<_span> <_p>

오페라 ‘나비 부인’ 초연<_p>

오페라 ‘나비 부인’ 초연<_p>

작곡가 푸치니.<_dt>

<_p>

1904년 2월 17일 이탈리아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에서 작곡가 지아코모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 부인’이 첫 공연을 가졌다. <_p>

‘마농 레스코’, ‘라 보엠’, ‘토스카’ 등을 잇따라 성공시키며 오페라계에서 최고의 명성을 떨치던 푸치니의 신작 발표였기 때문에 객석은 만원이었다. 입장료 수입은 라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된 작품 중에서 사상 최고를 기록했고, 푸치니는 2만 리라의 선금을 챙길 정도로 사람들의 기대는 최고조에 이르렀다. <_p>

하지만 ‘나비 부인’은 공연 시작과 함께 야유와 아우성에 파묻혔고, 결국 관객들의 모욕과 조소를 받으며 참담한 실패로 막을 내렸다. 초연 이후에 모든 공연은 취소됐고, 푸치니는 선금을 반납해야했다.<_p>

‘나비 부인’은 미국 잡지 ‘센추리’에 실린 존 루더 롱의 단편소설(1898년)로 19세기 말 일본 나가사키를 배경으로 미국 해군장교 핑커튼과 기녀 초초상(초초는 일본어로 나비를 뜻함)의 애절한 사랑이야기이다. 이후 극작가 데이비드 벨라스코가 각색해 1막짜리 연극으로 만들어 뉴욕에서 성공시킨 이후 1900년 런던에서도 공연하게 됐는데 1900년 5월 ‘토스카’ 공연에 맞춰 런던에 체류하던 푸치니가 ‘나비 부인’을 대면하게 된 것이다. <_p>

푸치니의 ‘나비 부인’은 당시의 오페라들과 달리 동양적 선율에 2막이 1시간 반 동안이나 이어지는 지루한 구성이었고 여주인공의 기모노 의상도 관객들에게 익숙하지 않았다. 푸치니는 ‘나비 부인’의 초연 1년 전에는 자동차 사고로 다리가 부러지고 작곡 중에 인후병과 당뇨병으로 고생하는 등 어렵게 곡을 완성했지만 출연자들은 처음 접하는 동양의 낯선 문화를 소화해내지 못했다.<_p>

관객의 싸늘한 반응으로 실패를 맛본 푸치니는 작품의 일부를 고쳐 3개월 뒤 토스카니니의 지휘로 다시 ‘나비 부인’을 무대에 올렸고 이번에는 열렬한 갈채 속에 성공적인 공연을 마칠 수 있었다.<_p>

<_font><_font><_p>

<_colgroup>


<_p>


<_p><_caption>

그해,오늘무슨일이42<_cite>건<_p>


<_p><_th><_tr><_thead>

2010년<_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