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의 철도 개통이야기
-일제강점기 시절의 교통편
11월12일은 한국에서 첫 철도인 경인선이 정식 개통식을 한지 113년주년이 되는 날이다. 1899년 경인선에 이어 일본인들의 침략야욕의 목적으로 경부선이 1905년 개통되면서 철도가 우리나라에서 주요한 교통을 담당하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시절 부산에서의 교통에 관한 자료를 조사하면서 알게 된 경부선 개통을 전후로 한국의 철도의 역사를 간략하게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한반도(韓半島)에서의 철도는, 조선에서 일본이 「한일 잠정합동 조관(韓日暫定合同条款)」에 기초로해서 철도 부설권을 1894년8월20일에 얻고, 서울 노량진(鷺梁津)∼ 인천 제물포(濟物浦)간의 철도를 1899년 9월18일 개통시킨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것은 뒤에 경인선(京仁線)이 되었다. 현재의 제물포역과 개통 당시의 구 제물포역은 전혀 다른 역이며, 현재의 도원역 인근이다
미국 부룩스 회사의 모걸(Mogull)형 탱크 기관차
모걸형 탱크 기관차는 서울-인천(仁川)간의 경인선에 사용하기 위해서 경인철도합자 회사가 미국에서 4량을 수입, 1899년7월 인천(仁川) 공장에서 조립할 수 있고, 시운전을 끝마쳐 선로나 한강철교의 건축자재운반에 사용되었다.
제물포~노량진 간의 경인선은 이듬해 한강철교 개통(1900년 7월 8일) 이후인 1900년11월12일에야 경인선 개통식이 남대문(南大門)역 (서울역의 최초의 명칭)로 행하여졌다. 1902년12월30일 경인철도는 경부철도회사(京釜鐵道会社)에 흡수 합병되어, 기관차 포함하는 모두가 경부철도의 소유가 되었다. 1904년7월1일 조선 통감부(統監府)의 철도국유화로 경부철도는 모두를 통감부철도국(統監府鐵道局)으로 경영을 이관했다.
1902년 부산에서 경부선 기공기념식
기공식을 기념하기 위해 꽂아 놓은 한일국기를 보면 태극기보다 훨씬 큰 일장기에서 당시 일본의 파워를 여실히 증명할 수 있다. 위 사진에서 참석한 사람들은 대부분 모자를 쓰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당시 남정네들은 출타시 의관을 반듯하게 갖춘 것을 살펴볼 수 있다.
착수 순서 |
구간 |
거리 km |
기공일 |
준공일 |
제1착수 |
부산방면 : 초량-구포 |
10.33 |
1901/10 |
1902/10 |
제2착수 |
부산방면 : 구포-밀양 |
26.35 |
1902/8 |
1903/12 |
제3착수 |
부산방면 : 밀양-성간 |
25.40 |
1903/4 |
1904/4 |
제4착수 |
부산방면 : 성간-영동 서울방면 : 부강-영동 |
77.32 |
1904/3 |
1904/10 |
제5착수 (후공사) |
부산방면 : 부산-초량 |
0.78 |
1905/12 |
- |
경부선은 부산의 초량-서울의 영등포 간을 잇는 선로는 위와 같이 구간별로 개통하였다. 부산의 경우 초량과 구포 구간이 1902년 10월에 선로가 완성됨에따라 열차가 전구간 개통될 때까지 운행되기도 하였다, 1905년1월1일부터 초량(草梁)- 영등포(永登浦)간의 운수 영업이 시작되어 서울-부산간의 역사적인 개통이 완성되었다.
서울에서의 경부선 축하행사1
서울에서의 경부선 축하행사2 - 성대한 경부선 철도의 개통식 광경
경부선 철도공사가 완성됨에따라 그해 5월25일에 서울역 구내광장에서 성대한 개통식이 거행되었다. 한국측 각부각료 기타의 대신을 비롯하여 오우라(大浦) 체신각료와 하세가와(長谷川) 육군대장, 하야시 주한 일공사, 중양원의원, 영국, 미, 프랑스, 독일등의 각국공사 및 영사 기타 내외의 귀빈으로 참가한 사람이 1000여 명이었다.
이날 한국대표로 왕실에서 의양군 이재각(義陽君 李載覺 ; 조선후기의 문신이자 왕족으로 장조의 3남 은전군의 증손)·의정부참정(議政府參政) 심상훈(沈相薰)·농상공부대신(農商工部大臣)박제순(朴齊純) 참석하였으며, 의양군은 매우 온정담긴 환영사를 하였다. 일본 황실에서 히즈야스왕세자(博恭王)도 참석하여 축하를 하였다.
식은 먼저 후루이치(古市) 총재의 식사로 개시되어 양국 전하의 영지, 후루이치(古市) 총재의 답사, 오우라(大浦) 체신각료, 박(朴) 농상공부 각료, 귀족원의원 오기초(正親町) 백작, 중의원의원 에하라(江原) 근본6 및, 일 미 양국공사의 연설, 후루이치(古市) 총재의 인사 등이 있어서 식을 마치고, 뒤이어서 향연으로 옮겨져 성가, 씨름, 신전악, 요술, 관기무용 등 각종의 여흥을 즐기면서 마쳤는데, 이러한 일은 서울에 있어서 당시로서는 볼 수 없었던 만큼 성황을 보였다. 한국에 있어 부산과 서울간의 대동맥을 경부선 개통식이지만 정작 개통식에 참석한 고위 내빈은 일본인들이 훨씬 많이 참석하였다. 이것은 한일합방 전이지만 일본의 침략야욕의 입김이 한반도를 쓸고있을 당시 였기 때문이다.
부산 초량에서 개최된 경부선 개통축하 기념식
한편 같은 날 부산에서도 초량에서 경부선개통 축하회를 서울과 동시에 개최하였다. 경부철도초량사무소 광장에 홍백의 막을 치고, 만국기, 전구 등을 둘렀으며 정면에 대녹문을 마련하였다. 부산의 개통식에는 위의 사진에서 보여주듯 수많은 내외관민이 참여하여 성대한 경부철도개통 축하회를 개최했다.
경부선 개통 당시의 서울역 건물
경부선 개통 당시의 부산역 건물
1905년에는 경부선(京釜線)이 전구간 개통, 다음 1906년에는 일러전쟁의 군사수송을 목적으로 해서 경의선(京義線)을 일본이 개통 시켰다. 경부선(京釜線)·경의선(京義線)은 일러전쟁후에 일본이 얻은 남만주철도(南満州鉄道: 満鉄)에의 접속을 도모하고, 대륙진출의 발판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1910년의 한국 병합으로 일본이 조선의 통치권을 얻은 나서, 경원선(京元線)이나 중앙선(中央線)·호남선(湖南線) 등을 부설했다. 노선수가 적었던 1925년까지는, 조선에서의 철도경영을 일체화할 목적에서 남만주철도에 위탁한 적도 있었지만, 그 후는 조선 총독부의 직할 조선 총독부철도가 되고, 지역경제의 발전이나 주민의 발을 확보하기 위해서 많은 노선이 건설되어 갔다.
조선 총독부철도는 조선에의 관광객의 유치에도 주력하여, 조선 호텔 등의 서양풍 호텔의 건축도 진행되었다. 또, 조선 왕조말기에는 대부분으로 도로의 포장 등이 행하여지지 않고 있었던 서울은 구획정리가 행하여져, 노면 전차가 부설되었다.
1911년 격일 운전하였던 경부선(京釜線)의 직통 밤차 「강조호(降照號)」호가 매일 운전이 되었다. 降照는 '진홍빛으로 비취다'는 뜻으로 밤열차 이름으로 그럴듯 한 것같다. 압록강의 가교 공사가 끝나 만주 창춘(長春)까지의 직통 운전이 시작되었다
건설 당시 경부선은 단선으로 운영됐으나 철도의 발전에 따라 지난 1944년께 길이 97.9m의 하행선을 새로 건설해 두개의 철교가 서울과 부산을 이어왔다.
최초로 건설된 경인선은 물론 이어 건설된 경부선, 경의선 등 당시 조선의 철교와 철도는 피의 역사이자 수탈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이들 철도는 일제의 침략과 수탈의 야욕 속에 건설된 민족의 눈물과 한이 담긴 철길이었다,
민족의 애환 속에 놓인 경부선 철도는 철도 건설전 서울에서 부산까지 열흘이 걸렸으나 첫 개통 때는 28시간, 이후 12시간 그리고 KTX 개통으로 2시간 18분대로 당겨지는 등 철도의 모습은 소통의 역사로 변화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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