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오늘의역사)3월 18일(음력 2월 24일) 庚申 수요일

해피y 2020. 3. 17. 22:53

^빨간명찰^<_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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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span><_strong>1982년 3월 18일<_span><_p>

부산 미 문화원 방화사건 발생<_span><_p>

부산 미 문화원 방화사건 발생<_p>

부산 미 문화원 1층에서 발생한 화재로 문화원 3층건물이 불길에 휩싸이고 있다.<_span><_dt>

1982년 3월 18일 오후 2시 부산 고신대생들이 광주민주화운동 유혈진압 및 독재정권 비호에 대한 미국측의 책임을 물어 부산 미 문화원 1층에 방화한 사건이 발생했다. 때를 같이해서 주변에는 유인물 700여 장이 뿌려졌다. ‘반미’의 금기를 깬 이 사건은 대담하고 격렬한 투쟁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줬고, 미 문화원이 1980년대 반미투쟁의 표적이 되는 신호탄 역할을 했다.<_span><_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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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화를 실행한 고신대생 이미옥 등이 3월 30일 잡히면서 사건의 윤곽이 드러났으며, 주범으로 공개수배된 고신대생 문부식과 김은숙은 4월 1일에 자수했다. 이튿날인 2일에는 문부식의 배후로 지목된 광주민주화운동의 수배자 김현장이 검거됐다. 3일 뒤에는 김현장을 은닉한 혐의로 원주교육원장 최기식 신부가 연행되면서 천주교까지 연루되는 사건으로 번졌다.<_span><_p>

전두환 정권은 평소 탐탁치 않던 천주교에 대대적인 공세를 가하기 시작했고 천주교 측은 범죄 혐의자라도 도움이 필요할 때는 도와줘야 한다는 교회법을 내세우며 맞섰다.<_span><_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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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1일, 사건 관련자 16명 전원에게 유죄가 선고됐다. 김현장과 문부식은 사형, 김은숙과 이미옥은 무기징역 등 사건 관련 피의자 전원에게 3년 이상의 징역이 선고됐으나 1983년 감형됐다.<_span><_p>

부산 미 문화원 방화사건은 일단락 됐지만 전국의 미 문화원도 반미투쟁의 표적이 되어 1982년 11월 광주 미 문화원에는 화염병이 투척됐고, 1983년 9월 대구 미 문화원에서는 폭발물이 터져 수 명이 사상당했다. 1985년 5월 서울의 미 문화원은 73명의 대학생들에게 점거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테러리스트적 투쟁방식으로 인해 운동권일각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_span><_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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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사건의 주모자로 사형선고을 받은 문부식은 6년 9개월만에 풀려나 운동권으로부터 반미운동의 선구자로 추앙받았지만 2002년 경찰관 7명이 순직한 부산동의대 사태를 민주화운동으로 지정한 것을 잘못됐다는 입장표명으로 진보세력으로부터 곤욕을 치러야 했다.<_span><_p><_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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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오늘무슨일이?x-content-disposition=inl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