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야화 - 남인수 1949
1.무너진 여수항에 우는 물새야
우리집 선돌아범 어데로 갔나
창없는 빈집 속에 달빛이 새여 들면
철없는 새끼들은 웃고만 있네
2.가슴을 파고드는 저녁 바람아
북정 간 딸소식을 전해 주려므나
에미는 이 모양이 되였다만은
우리 딸 살림살인 허(흐)벅 지드냐
3.왜놈이 물러갈 땐 조용하드니
오늘에 식구끼리 싸옴(움)은 왜 하나요
의견이 안 맞으면 따지고 살지
우리 집 태운 사람 얼골(굴) 좀 보자
김초향 작사 / 이봉룡 작곡 .1949년 아세아 레코드 작품
55년 전 여수의 노래, <여수야화>
여순사건과 함께 묻혔다가 50년만에 빛 보게돼
이준희 기자
옛 가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여수야화(麗水夜話)>(반야월 작사, 박시춘 작곡, 방운아 노래)라는 노래를 한번쯤 들어 봤을 것이다. 목포에 <목포의 눈물>이 있고 부산에 <울며 헤진 부산항>이 있듯이, ‘어머님 품속인 양 내 항상 그리운 곳/ 물파래 나불나불 내 고향 여수항아’로 시작하는 <여수야화>는 항구도시 여수를 소재로 한 대표적인 지역가요로 지금도 널리 애창되고 있다.
그런데 <여수야화>라는 제목이 붙은 노래는 방운아가 부른 것 말고도 한 곡이 더 있다. 말하자면 동명이곡(同名異曲)인 셈인데, 이 또 다른 <여수야화>(김건 작사, 이봉룡 작곡)는 여지껏 전설적인 가수로 회자되고 있는 남인수가 부른 것이다.
1957년에 발표된 방운아의 <여수야화>가 대중가요로서는 비교적 흔한 것이라 할 수 있는 향수(鄕愁)를 주제로 하고 있는 데에 비해, 1949년에 발표되어 이제는 그 존재조차 희미해져 버린 남인수의 <여수야화>는 특이하게도 상당히 정치적인(?) 색채를 띠고 있다.
1948년 10월에 국군 제14연대의 반란으로 촉발된 여순사건. 5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정확한 진상과 민간인 피해상황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이 여순사건이 바로 1949년에 발표된 <여수야화>에서 묘사하고 있는 소재이다.
무너진 여수항에 우는 물새야/ 우리 집 ** 아범 어데로 ****/ 창 없는 빈 집 속에 달빛이 새어들면/ 철없는 아이들은 웃고만 있네
가슴을 파고드는 저녁 바람아/ ** 간 딸 소식을 전해 주려무나/ 에미는 이 모양이 되었다만은/ 우리 딸 살림살인 흐벅지더냐
왜놈이 물러갈 땐 조용하더니/ 오늘에 식구끼리 싸움은 왜 하나요/ 의견이 안 맞으면 따지고 살지/ 우리 집 태운 사람 얼굴 좀 보자
(남인수팬클럽에서 채록한 가사)
오래된 유성기음반에서 녹음한 음원을 직접 들으면서 채록한 가사라 군데군데 확실하지 않은 대목이 있기는 하지만, 작중화자인 어떤 아낙네의 넋두리 형식으로 전개되는 가사는 <여수야화>가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광복을 맞아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났을 때에는 모든 일이 다 순조롭게 풀릴 것 같았지만(왜놈이 물러갈 땐 조용하더니), 분단과 이념대립으로 인한 민족 내부의 갈등(식구끼리 싸움)은 결국 여순사건이라는 비극을 낳고 말았던 것이다. 가족도 잃고 집도 잃은 상황이면서 한편으로는 멀리 있는 딸 걱정을 하고 있는 아낙네가 끝으로 내뱉은 한 마디는, 무슨 거창한 이념을 담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우리 집을 불태운 사람이 누구인지 그 얼굴이나 좀 보자는 소박한 원망이다.
이념 같은 것에는 별다른 관심도 없고 관련도 없으면서 정작 그로 인한 혼란이 주는 피해는 또 가장 많이 입는 것이 민중이다. 당시 민중들의 분노와 희망은 추상적이고 선동적인 구호로 채워진 노랫말보다는 이와 같은 <여수야화>의 내용을 통해 보다 현실적으로 묘사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남인수가 부른 <여수야화>는 지난 2001년에 남인수팬클럽에서 제작한 <남인수전집>에 목록상으로는 실렸으나 음원이 수록되지는 못했다. 그 뒤 팬클럽 회원인 김동각씨가 음원을 녹음하고 다른 여러 회원들이 가사를 채록해 다듬어서 현재와 같이 어느 정도 복원을 하게 되었다. 여순사건과 함께, 어쩌면 그보다 더 묻혀 있던 노래가 50년이 지나서야 제대로 빛을 보게 되었던 셈이다.
<여수야화>를 비롯해 <흘러온 남매>, <망향의 사나이> 등 분단과 이념대립으로 인한 민족적 비극을 묘사한 남인수의 노래들은 앞으로 제작될 <남인수전집> 증보판에 모두 수록이 되어 다시 세상에 소개될 예정이다. 하지만 당시 사건들의 진상이 명확히 밝혀져 역사적 앙금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노래의 재평가와 발굴은 역사의 재평가와 발굴로 이어지지 못한 채 반쪽으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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