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

新연개소문전 -음모에 걸려들기1(글쓴이-蘭亭주영숙)

해피y 2017. 9. 25. 22:25

                                                                

연개소문 이야기 [10화] 음모에 걸려들기 [1]

 

“예, 계시옵니다.”


“그렇다면 가서 여쭈어라. 병부의 오졸(烏拙 : 고구려 후기 직제의 이품 가량 되는 벼슬. 평양으로 천도한 후 지방 부족의 세력을 중앙에 집중시켜 국가의 관직을 정비할 때 제정된 관직) 고정의(高正義 : 생몰 미상. 고구려의 전략가. '대로' 벼슬에 있으면서 645년 당나라의 내침 때 북부 욕살 고연수에게 안시성을 구원하기 위한 전략을 건의했으나 채택되지 않아 고구려가 대패했다)가 돌궐의 사신으로 오신 아사나두이 장군을 뫼시고 대감을 뵈러 왔다고.” 

 
“예이~”


잠시 후 연비 장군이 나와 두 귀인을 맞이했다.


“호오, 어떻게 고 대인께서 아사나 장군을 뫼시고 오셨소이까?”


“허허, 연 장군. 나는 왜, 오면 안 되는 사람이란 말씀이시오?”


“허허허, 무슨 말씀을…….”


이때 아사나 장군이 연비에게 인사를 했다.


“연 장군, 오랜만이외다.”


“어서 오시오, 장군! 안 그래도 우리 대감께서 장군이 오시길 기다리시는 중인데, 마침 잘 오셨소.”


“이런 고마울 데가……. 대감께오서 소장을 기다리셨다니 황공할 따름입니다.”


연비는 두 사람을 연태조가 기거하는 사랑채로 안내하였다.
아랫목에 앉아있던 연태조는 아사나 장군을 보자마자 지기를 만난 듯 반가워했다.


“아니, 깜짝 놀랐소이다. 내가 아사나 장군을 보고 싶어 하는 줄 어찌 아시고 이렇게…… 하하, 반갑소이다.”


“아닙니다. 아사나는 대감에게 진 신세를 갚지도 못하고…… 황공하옵게도 항상 이렇게 심려만 끼치고 있습니다.”


아사나두이는 넙죽 마루에 엎드려 큰절을 했다. 수차례 고구려 사신으로 드나들었었기에 고구려의 기본 풍속 정도는 알고 있었다.


“아니, 장군께서 언제 우리나라 큰절을 다 배우셨소? 핫하하하하!”


연태조가 아사나두이의 팔을 잡아 이끌어 방의 상좌로 앉히자, 고정의가 입을 열었다.

“대감께 번번이 말씀 올리기가 민망하오만, 내일 열릴 대공의(大公議) 건입니다. 아사나 장군께선 대감께서 한 번 더 상주(上奏 임금께 아룀)해주시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아사나두이가 간곡하게 머리를 조아렸다.

“대감께서 우리 돌궐을 진심으로 위해주시는 은공은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하오나 내일 대왕마마의 어전에서 또 한 번 강력하게 상주해주셨으면 해서 이렇게 찾아뵈었습니다.”

“……”

연태조는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아무리 돌궐에 파병하자고 주장한들 반대파의 세력이 극성스러움의 극을 달리고 있는 터라, 성사되기 어려운 일인 거였다. 해서 그저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대감께서 돌궐 파병을 극구 주장하고 계시다는 것은 아사나 장군께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또 소익환 총관과 막리지 민의겸이 거의 발악적으로 돌궐파병을 반대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지요. 하지만 내일 또 한 번만 상주해 주십사 하고 찾아 뵌 것입니다.”

고정의의 말에 연태조의 표정은 더욱 굳어졌다. 굳은 표정을 풀지 않은 채 덥석 아사나두이의 손목을 잡았다.

“걱정 마오. 기회가 닿는 한 몇 번이라도 거듭 상주해 보리다. 귀국과 우리나라는 오래 전부터 동맹국이었잖소? 우리가 중원의 수 · 당과 싸울 때에, 귀국에선 번번이 신의를 지켜 원병을 보내주셨지 않소? 그것을 알고서야 어찌 귀국의 요청을 저버릴 수 있단 말이오?”


“황공할 따름입니다.”

손님이 돌아가기 위해 뜨락엘 내려서자, 사방은 벌써 어둠이 깔리고 곳곳에 청등 홍등이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막 걸음을 옮기려 하는데, 뜰 안으로 성큼 들어서는 한 젊은이가 있었다. 젊은이는 손님을 배웅하러 나온 연태조 앞에 허리를 굽혔다.

“아버님, 소자, 산성에서 지금 돌아왔습니다.”

“오냐. 늦었구나.”

개소문이 아버지 연태조 앞에서 허리를 굽히고 있을 때에, 고정의가 불쑥 개소문 앞으로 나섰다.

“아! 개소문 도련님, 인사가 늦었습니다. 저는 오졸 고정의라 합니다.”

연태조는 자기가 인사를 시키기도 전에 고정의가 먼저 나서서 좀 민망하였다. 그래서 소개의 말을 보탰다

“개소문아! 고구려의 대 지략가 고정의 어른이시다.”

“아이고, 상찬의 말씀이옵니다.”


“아, 고 장군님……. 앞으로 많은 가르침을 바랍니다.”


개소문의 목소리는 무척 친근하고 정중하였다.

“그리고 이 귀인은 돌궐에서 사신으로 오신 아사나두이 장군이시다. 인사 올려라.”

“아사나 장군님, 인사 올리겠습니다. 연개소문이라 합니다.”

“나는 대인께서 소개해주신 대로 돌궐국의 아사나두이올시다. 도련님의 명성은 너무도 드높아서 꼭 만나 뵙고 싶었답니다.” 

아사나두이의 칭찬에 연개소문은 얼굴을 붉히며 머리를 숙였다. 옆에서 내내 그의 모습을 주시하던 고정의는 마음이 흡족하였다. 연개소문의 늠름하고 슬기로운 모습이 그의 마음을 한없이 끌어들이고 있었다.

“개소문 도련님, 연로하신 대인님을 잘 보필해주시길 바라오.”

그러고 고정의는 아사나두이와 함께 총총히 멀어져 갔다.

◇◇◇

오월 햇살이 어둠을 밀어내며 쏟아지자, 구제궁의 드높은 용마루가 더더욱 찬란한 광채를 발했다. 넓은 뜰 앞에는 벌써부터 조신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대막리지 민의겸을 비롯하여 각 부의 상서*, 도수부의 총관에서 장수. 또 오부욕살* 등 3경(京)240여 산성, 주(州) · 군 · 현을 다스리는 지방의 방백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무백관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9층의 계단으로 하늘을 찌를 듯이 쌓아올린, 웅장한 구제궁 대조전의 장엄한 위용이 유별스레 돋보이는 날이었다. 

대조전 널따란 전각 안에는 모든 조신들이 서열에 따라 열을 지어 서 있었다.
이윽고 북소리가 드높게 울리며 국왕의 행차를 알렸고, 그 소리에 잠시 전까지도 떠들썩하던 대조전은 끽소리 없이 고요해졌다.

여러 궁녀의 호위 속에서 영류태왕이 용상에 좌정했다. 홍시빛깔 용포에 황금의 띠를 둘렀고, 번쩍번쩍한 면류관을 썼다. 장대한 기골, 차람하게 늘어뜨린 수염이 은빛으로 빛났다. 성상(聖上)의 품위보다는 오히려 무인다운 기상이 엿보였다.

옥좌 뒤에는 어림군의 두 장수가 서슬 퍼런 모습으로 섰고, 옥좌의 좌우에는 두 시랑(侍郞)이 시립하여 약간 허리를 굽혀 섰으며, 그 앞에는 막리지를 비롯한 문무 제신을 비롯하여 한림부(翰林部)의 오학(五學) 태사* 등 원로들이 고개를 숙이고 엎드렸다.

영류태왕이 조용히 전내를 둘러보자, 모든 조신들이 일제히 엎드린 채 절을 하였다.
그들의 귀에 잠시 옷깃 스치는 소리가 들리고, 이윽고 임금의 목소리가 흐르기 시작했다.

“짐이 오늘 조정의 문무백관과 온 나라 안의 산성을 위시하여 주 · 군 · 현의 방백들을 불러 상의하고자 함은, 지난날 돌궐의 사신 아사나 두이가 올린 원병 요청 문제를 결말지으려는 것이오. 경들은 좋은 의견들을 기탄없이 내어놓으시기 바라오.” 

엄숙한 분위기가 조용히 전내를 감돌고 있었다.

“소신 막리지 민의겸이 아룁니다. 성상마마의 어명을 받자옵고 문무 제신들과 의논하였사옵니다. 하온데, 지금 본국의 실정으로 보건대, 돌궐원병은 당나라에 대한 신의를 저버리는 일로 사료되옵니다. 당나라의 비위를 건드림은 본국의 환란을 자초하는 일이라는 것은 명명백백한 일이 아닐 수 없사와, 돌궐로 파병함은 절대 불가하옵니다. 통촉하소서!”  

영류태왕은 다시 전내를 둘러보았다.


“막리지 민의겸의 의견은 잘 들었소. 제공들 가운데 또 다른 의견들은 없는지, 기탄없이 말해보오!”


막리지 뒤에서 늙은 무인 한 사람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고 모든 시선이 그리로 쏠렸다.


“성상마마, 신 동부 총관 연태조 아룁니다. 막리지 민 대감께서 상주하온 바에 따르자면, 돌궐에 원병을 보내는 것은 당나라에 대한 신의를 저버리는 일이며, 또한 그 비위를 건드리는 일이라 하였사온데, 하오나, 신의 생각은 다르옵니다. 이는 천하를 다스리는 대법에 어긋나는 일이옵니다. 돌궐은 오랫동안 본국과 친선을 도모해온 동맹국이옵니다. 하오나 당나라는 수나라 대신 들어선지 얼마 되지 아니하여 아직 그 힘을 정비하지 못한 상태이옵니다. 당나라가 우리 고구려와 화친을 맺고 있는 것은 시간적 여유를 얻기 위함이라 사료되옵니다. 저들은 언제나 호시탐탐 우리 국토를 넘보고 있사옵니다. 그러함으로, 본국이 신의를 지켜야 할 나라는 명백히 돌궐이옵니다. 당나라가 아니옵니다. 당나라는 언제 어느 순간에 적이 될지 모르는 위험을 안고 있사옵니다. 성상마마! 부디 돌궐에 원병을 보내시어 우리의 울타리를 튼튼히 하도록 선처해주시옵소서! 소신 동부총관 연태조, 그 길이 상책임을 간절히 상주하는 바이옵니다. 굽어 통촉하시옵소서!”


‘호오, 동부대인, 그대의 말은 추호도 어긋남이 없구려. 허나, 짐은 오히려 그것이 못마땅하단 말이오!’


태왕은 쩝! 입맛을 다시며 지그시 연태조를 쏘아보았다.


“경은 언제나, 오로지 돌궐 파병만이 옳다고 주장하는구려! 지조가 뚜렷하오!” 

  
“성상마마! 황공하옵나이다.”


왕이 속으로 분노하고 있음을 연태조는 절절히 느끼고 있었다. 새삼 옛날이 그리워졌다. 태왕의 젊은 시절엔 저러지 않았었다. 영류태왕 '고건무'나 연태조 자신이나 무인의 기상을 유감없이 발휘했었다. 눈앞에 거칠 것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태왕의 총명과 해박함으로 하여 모든 일을 사리에 맞게 처리되곤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태왕도 연로하여 안일을 꾀하는 간신배들한테만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있는 판이라, 볼 때마다 답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연태조의 몸은 저절로 부르르 떨렸다.


수나라가 멸망하고 당나라가 등장한 시기인 618년에 왕위에 오른 고건무, 영류태왕은 619년, 621년, 작년인 622년엔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두 나라의 우호를 다졌다. 또한 당나라의 제안을 받아들여, 영류태왕은 수나라와의 전쟁에서 획득한 1만 명의 포로를 송환했다.
바로 그 왕이 여전히 용안을 찌푸린 채로 연태조를 쏘아보고 있는 거였다.


돌연 연태조의 뒤에서 불쑥 한 무인이 몸을 일으켰다. 어림군 총관 소익환이었다. 작달막한 키에 유난히 튀어나온 눈알을 뒤룩거리며 나온 50전후 소익환이 반백의 머리를 조아렸다.


“성상마마, 황공하옵니다. 소장의 생각으로는 막리지 민대감의 말씀대로, 당나라의 비위를 거스르고 돌궐에 원병을 보내는 것은 우리나라의 장래를 위태롭게 하려는 위험한 처사인 줄로 아옵니다.”


그제야 알게 모르게 임금의 용안이 펴지고 있었다. 연태조의 가슴에 시뻘건 분노의 불길이 이글거리게 되었다. 국가의 안위는 뒷전이고, 오로지 동부총관 연태조를 역적으로 몰려는 소익환의 내심이 훤히 들여다보인 것이었다. 연태조는 또다시 몸을 일으켰다.


“성상마마! 깊이 통찰하시옵소서! 마마! 불과 11년 전 살수대전을 떠올려 보옵소서. 수나라 래호아의 수군과 교전했던 그 당시를 떠올리소서! 아아, 마마께오선 희대의 명장이셨사옵니다. 그 때, 적장 래호아는 요동을 통과해 육로로 공격하는 수나라 30만 군에게 군수품을 보급해주며, 함께 평양을 공격할 임무를 맡고 있었사옵니다. 따라서 고구려로서는 이들을 빨리 격파하여, 수나라 별동대와 만나지 못하게 해야 했는데, 마마께오선 유인작전을 펼쳐 이들을 섬멸하자는 작전을 세우셨사옵니다. 래호아가 직접 4만 대군을 이끌고 우리 장안성으로 진군했을 때, 아아, 명장이셨던 마마께오선 외성을 비워놓고 적을 유인했었고, 외성 안에 들어온 수나라 군대는 기강을 잃고 마구 약탈에 나섰사옵니다. 그때 매복했던 우리 고구려 군대가 나타나 대오가 흩어진 수나라 군대를 섬멸시켰사옵니다. 도망간 수나라 군대는 해안가의 진지만 겨우 지킨 채 수나라 육군과 만나 합동작전을 펼칠 능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던 것이옵니다. 마마, 바로 마마의 활약 덕분에 을지문덕장군이 수나라 군을 살수에서 대파할 수 있었사옵니다. 마마, 그 위대한 역사를 잊으셨사옵니까?”


“허허, 그 때 일을 상세하게 피력하시는구려. 허나, 작금의 상대는 수나라가 아니지 않소?”


“당나라가 수나라를 멸하고 대신 들어섰다고는 하오나, 이는 사실 임금만 바뀌었을 뿐, 그 외 신하 되는 문무제신은 수나라 때부터 우리 고구려와는 불구대천지 원한을 가진 무리들이옵니다. 성상마마! 소신의 간절한 상주를 깊이 성찰하시와, 부디, 대고구려의 종묘사직을 반석 위에 올리시기를 삼가 바라옵니다.”주영숙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