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

新연개소문전 -음모에 걸려들기2 (글쓴이-蘭亭주영숙)

해피y 2017. 9. 27. 16:18

 

 

연개소문 이야기 [11화]음모에 걸려들기 [2]

 


최후의 간언일지도 몰랐다.
연태조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고, 이마에선 구슬땀이 흘러내렸다.
왕의 용안이 다시 찌푸려지자, 전내엔 긴장감이 감돌았다.
연태조 바로 옆에 부복해있던 남부 총관 우필(禹必)이 소익환 어림군 총관과 슬쩍 눈짓을 주고받더니 몸을 일으켰다.


“연총관은 경거망동을 삼가시오! 여기는 지엄한 어전이라는 점을 잊지 마시오! 어찌 그리 천하의 대세를 그릇 판단할 수가 있단 말씀이오? 독단적인 오판으로 성상마마의 심기를 어지럽히다니! 자중하시오!”

연태조는 태연히 수염을 쓸다가 우필을 노려보았다.

“우 장군! 오히려 소장이 할 말이오! 여긴 바로 지엄한 대조전! 성상마마의 어전이오! 나라의 중대사를 논하여 성상마마께 옳게 상주함이 신하의 참 도리이거늘, 하물며 나에게 경거망동이라니! 도대체, 장군은 이 나라 사람이 아니란 말씀이오? 성상마마의 어전에서, 심히 당돌하고 무엄하오!”

연태조의 목소리는 이외로 차분했다.
영류태왕은 불쑥 막리지 민의겸을 불러 무언가를 소곤거렸다. 그리곤 짜증스럽다는 눈길로 전내를 휘둘러봤다.

“경들은 듣소! 도대체 이 문제 하나로도 국론을 통일하지 못하고 있으니 한심스럽기 그지없소! 오늘은 짐이 심기가 몹시 불편하니 일단, 모두들 물러가시오!”

태왕은 심기가 몹시 불편하다는 몸짓을 하며 용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연태조의 노쇠한 몸에는 알 수 없는 공허감이 밀물처럼 몰려왔다.


‘오늘만은 끝까지 상주하여 성사를 보려고 했는데, 아아, 또 물거품인가…….


연태조가 휘청휘청 구제궁을 빠져나올 무렵, 대조전 한 모퉁이에서 어림군 총관 소익환과 막리지 민의겸이 한참동안 수군거리고 있었다. 가끔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수군대고 있는 그들을 아무도 눈여겨보는 자는 없었다.

얼마 후, 막리지 민의겸은 무엇인가를 골똘히 궁리하는 얼굴로 내전 중문엘 들어섰다.

“성상마마, 무력한 노신, 오늘 어전 대공의에서 마마의 심기를 미령케 하였기에 몸 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

영류태왕은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상념에 잠긴 듯한 용안을 우러러본 막리지 민의겸은 더욱 안절부절못하며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를 쥐어짰다.

“마마, 황공……무지로소이다.”

“아니오. 막리지는 너무 자책하지 마시오. 오직 연 총관이 눈엣가시인 것을……. 짐이 이미 당나라와의 친선을 누차 밝힌 바 있거늘……. 연 총관은 참 어찌 그리 모든 조신들 앞에서 감히 짐의 위신을 추락시키려 들다니……. 국왕의 위엄이 이토록 흔들려서야 어디 나라의 기강이 바로 선다고 하겠소?”

노기 등등한 대왕의 불평에, 민의겸은 등골이 오싹했다.

“성상마마, 이는 노신이 마마를 보필하는 지덕이 부족한 소치이옵니다. 벌하여 주옵소서.”

머리를 푹 조아린 민의겸이 입술에 침도 안 묻히고서 여전히 벌벌 떨리는 목소리를 자아내자, 태왕은 또 다시 너그러움을 베풀 자세를 취했다. 하기야 민의겸은 너그러이 용서해주실 줄을 알고 한 말이었고, 태왕 역시 그 속내를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

“아니오. 경이 무슨 죄가 있겠소? 죄는 연 총관에게 있는 거요. 지금의 형세로 보건대 본국과 화친하려는 당의 진의는 조금도 의심할 바가 아니오. 그런데 연 태조는 마치 당이 고구려를 배신이라도 한다는 것처럼 말하지 않았소? 게다가 돌궐에 원병을 보내라? 내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연태조의 말이 사리에 맞지 않는 것인즉, 경은 짐의 뜻을 충분히 헤아려 수일 내로 이 문제의 결말을 지어주시오.”

민의겸의 속내를 환히 들여다본 왕은 참을 수 없는 가증스러움을 꾹 누르고  그리 말한 거였다.

“마마, 황공하옵니다. 그 동안 신병을 구실로 조정에 출사도 않던 연 총관이 이제 새삼스레 출사하여 저토록 방자하게 발언하였사온데, 그 까닭을 캐고 들자면, 그동안 행방불명이었던 그의 아들이 근래에 무예를 익혀서 돌아온 데에 있는 것 같사옵니다.”  

“연태조의 아들? 쉰에 낳았다는 바로 그 아들 말인가?"

“그렇사옵니다. 그래서 이름을 개소문이라 지었다고 하는데…….”

“그런데 그 자가 무예를 익혀? 흐음……. 앞으로 시끄러워지겠군.”

자기를 보는 대왕의 용안에 그림자가 스친 틈을, 민의겸은 놓치질 않았다.

“성상마마,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연 총관의 아들 개소문이 하는 짓이 참으로 미심쩍사옵니다. 요즈음, 폐출된 선왕의 왕자 보장과 자주 교유한다 하옵는데…….. 이런 점으로 미루어볼 때, 연 총관의 이즈음 거동은 여러 모로 우려할 바가 적지 않사옵니다.”

말을 마친 민의겸이 은근슬쩍 용안을 살폈더니, 과연 대왕의 용안엔 노골적인 불쾌감이 가득했다. 민의겸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뭣이라? 연태조의 아들 개소문이 보장과 교유가 잦다 그 말인가?”   

“대왕마마, 황공하옵니다!”

“경은 왜 자꾸만 황공타령인고?”

잠시 후, 왕이 신중하게 입을 뗐다.      

“그러면 바른대로 말해보게. 돌궐 파병에 대한 경의 생각은 어느 쪽인가 이 말일세.”

왕의 의미심장한 하문에 민의겸은 입술이 바작바작 탔다. 하지만 크게 놀아보자는 심보를 발동시켰다.

“마마, 황공하오나, 노신, 연 총관과 같은 생각이옵니다.”

이번엔 왕이 흠칫 놀랐다. 왕의 머릿속으로 오만 때만 가지 추측이 어지러이 춤추었다. 

“뭣이? 같은 생각이라니? 갑자기 무슨 말인가? 가장 믿었던 경마저 짐을 배신하겠다 그 말인가? 어서 설명해 보렷다!”

“하오나……. 돌궐에서 원병을 청하고는 있사오나, 돌궐의 정세를 자세히 알아보기 전에는 공연히 왈가왈부한다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옵니다. 하오니, 일단, 성상마마께옵서 대명을 내리시어 돌궐에 사신을 보내시옵소서!”

“뭐라? 파병을 하라는 게 아니라 사신을 보내라고?”

“예이~ 그러하옵니다. 파병…….. 아니 원병은 돌궐과 당의 정세를 확연히 분석하신 연후에 조처하심이 상책인 줄로 아옵니다.”

왕은 무릎을 쳤다.

“오호라! 거 좋은 생각이오. 그러하다면…….”

“마마, 사신이 돌궐에 들어가는 길이 모두 당나라군에 장악되어 있다 하옵니다.”

“옳거니!”

영류태왕의 눈에 번쩍 빛살이 스쳤다.

“돌궐의 요청을 무조건 거절하기도 대국의 체모가 서지 않을 터……. 실정을 파악한다는 구실로 시간을 벌어보자, 그것인가?”

“하옵고, 이참에 북공파의 세력도 꺾어보자 하는 것이 노신의 생각이옵니다.”

“흐흐흐흐……. 생각이 아니라 계략이렷다? 그렇다면 돌궐에 보낼만한 사신감은 물색해두

었는가?”

“노신의 소견으로는 연 태조 총관에게 직접 다녀오도록 함이 지당하온 줄 아옵니다.” 

막리지 민의겸이 또 머리를 조아리며 그리 말하자, 왕이 무릎을 쳤다.

“아하핫! 거 참 좋은 생각일세. 파병을 극구 주장하는 연태조가 직접 간다……. 그런데, 노쇠한 연 총관에게 어찌 그 임무를 맡길 수 있다는 말이오? 엥이……. 쩝!”

“마마, 지당하신 염려이시옵니다. 하오나, 마마께오서 연 총관에게 그리 하명만 하시오면, 반드시 그 아들 개소문이 갈 것이옵니다. 마마께오선 심려하시지 않으셔도 될 것이옵니다.”

“옳거니!…… 과연 막리지의 지모는 상상을 불허하는 것이구려!”

영류태왕은 결행 의지를 다졌다. 안 그래도 연계소문이 폐출된 보장과 교유가 잦다는 민의겸의 언급이 가슴 한 구석에 시커먼 걱정거리로 들어앉아버린 참이었다.

“경만 믿소. 고구려의 종묘사직을 보존하기에 경이 전력을 다해주시오.”

“마마, 하오면 노신, 분골쇄신, 마마를 위해 충성을 맹세하오며, 그만 물러가겠사옵니다.” 

“가상하도다……. 경도 피로할 터이니 어서 돌아가 쉬도록 하시오.”

“마마, 성수무강하옵소서.”

민의겸은 남몰래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본래 간교한 위인이 못 되었다. 다만 타고난 지혜와 덕행이 부족할 뿐이었다. 연태조가 막리지 자리를 순순히 내어놓자, 문벌 세습의 덕택으로 일국의 재상 자리에 올랐을 따름이었다. 고구려의 재상인 막리지는 3년에 한 번씩 교체되었는데, 각부 대인들 중에서 대대로인 막리지를 선출하게 되어있었다. 만일 막리지가 그 책임을 지키지 않으면 서로 병력으로 대결하게 되는데, 그 때는 국왕도 문을 닫은 채 지켜보게만 되어있었다. 그런데 연태조는 연한을 다 지키고서 자리를 순순히 내놓았었기 때문에, 민의겸이 막리지가 된 것이었다. 그러나 민의겸은 대고구려의 45부 · 군 · 주와 240여 산성을 지키는 기라성 같은 방백 장수들을 한손에 쥐고 국정을 쥐락펴락할 만한 위인은 못되었다.
바로 그래서 그는 항상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다. 강성한 동부대인의 문벌을 그는 항상 두려워했던 것이었다.

더욱이 연태조의 아들 연개소문은 천성적으로 총명하며 불가사의할 정도로 뛰어난 무예와 용맹을 갖춘 신출귀몰의 인재라 소문났다. 게다가 한 10년 무예를 익혔는지, 도를 닦았는지, 하여간에 무서운 실력자가 되어 돌아온 게 틀림없을 거였다. 민의겸의 불안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잘 됐어! 허어, 잘된 일이야! 싹을 잘라버려야 해!”

민의겸은 대궐을 빠져나오면서 연신 중얼거렸다. 그리고 귀가하던 길로 어림군의 소익환을 불렀다.

“소 총관, 일이 계획대로 될 것 같소,”

“아하, 그것 참 반가운 일이외다.”

“성상께오서 이 몸의 상주를 들으시고 연태조 일가에 대한 불안을 토로하셨소이다.”

“그래, 돌궐에 사신을 보내기로 결정 보셨습니까?”

“그렇지요. 연태조의 아들 개소문이 아무리 뛰고 날고 솟구친다 해도 어쩔 수 없을 게요.”

“허허, 막리지 대감 아니고서야 어찌 이렇듯 명쾌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겠소이까?”

“허 참, 소 대감도……. 이것이 모두 대감 덕분이로소이다. 나는 오로지 대감만 믿을 뿐이외다.”

“과찬의 말씀이오.”

“그런데 소 대감, 대감은 하루 속히 당나라 사신 이대룡 대인을 만나셔야 되겠소. 연개소문이 돌궐로 떠난 후의 대책을 세우도록 해주셔야지요.”

“잘 알겠습니다. 그 점에 대해선 염려 놓으십시오. 소장도 가만있을 수는 없지요.”

“암,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대감을 급히 오시라 한 게요.”

“소장을 그처럼 긴히 생각해주시니 감격할 따름입니다.”

두 사람은 공동의 적을 물리칠 수 있다는 부푼 꿈에 들떠서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술잔을 기울였다. 동부대인 연태조 역시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한밤중에 자리를 차고 일어난 그는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무엇인가 검은 구름이 덮쳐오는 것만 같은 예감이 그를 부르르 떨게 했다. 그의 적은 너무나 많았고, 그 적들을 혼자 상대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 암담하였다.

‘오늘 어전에서 막리지 민의겸과 어림군의 소 총관이 마치 작당이나 한 것처럼 나를 몰아세웠던 것 아니던가. 노골적인 적대감……. 그렇다면 그냥 물러설 수는 없다. 저들이 아무리 무리를 지어 작당을 하더라도 아직은 동부 총관부까지는 넘보지 못하리라.’

그러나 아들이 무예를 익혔다고는 하나 여러 모로 아직 어리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내 아무리 늙고 병들었지만, 대고구려의 앞날을 위해 반드시 간신들을 처단할 것이다. 개소문아! 내가 못다 이룬 꿈을, 네가 기필코 해내야 할 것이니라.’
 
소익환은 원래 어림군에 소속되어있기는 했었지만 별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던 인물이었다. 그러던 것이 영류태왕의 왕위 계승을 위해 민의겸과 앞장섰던 공로가 있어 대왕의 누이인 공주를 아내로 맞이하는 바람에 부마가 되었다. 당시 총관이었던 소영환을 추방하고는 그의 후계자라 하여 총관이 된 위인이었다.

그래서 자연히 영류태왕이 주장하는 북수남공책의 선봉 기수가 된 소익환은 막리지 민의겸과 함께 동부 대인 연태조의 힘을 꺾기 위해 발 벗고 나서기로 결의를 다진 것이었다.

소익환의 집 솟을대문 좌우에는 청사초롱이 주위를 대낮같이 밝혀주었다.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안뜰 좌우에도 청사초롱이 줄줄이 불야성을 이루도록 장치되어 있었다.

이때 어둠의 장막을 뚫고 오는 한 무리의 사람들. 무엇에 쫓기듯 다급하게 달려든 그들은 소 총관 댁 솟을대문 바로 앞에서 일제히 멈췄다. 한 채의 평교(平轎)를 멘 교군꾼들이었다. 시종 한 사람이 솟을대문 아래 서 있는 파수병에게 말했다.

“당나라 사신 이대룡 대인께서 소 총관 대감께 문안차 행차하셨소.”

파수병들이 일제히 고개를 주억거리며 당나라 사신 일행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