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

新연개소문전 -음모에 걸려들기4 (글쓴이-蘭亭주영숙)

해피y 2017. 10. 1. 22:18

 


연개소문 이야기 [13화]음모에 걸려들기 [4]


거꾸로 든 장창으로, 연개소문은 다가서는 군졸들을 향해 가볍게 휘둘렀다.
장창이 마치 별개의 생물체처럼 허공에서 펄떡거렸다.

연개소문이 원형의 포위망을 차츰 넓히는 동시에 군졸들을 향해

창을 휘둘렀다.
그의 장창이 허공을 날을 때마다 군관들은 머리를 땅에 처박으며 쓰러졌다.

실로 눈 깜짝할 사이였다.

창을 거꾸로 들었기에 망정이지,

바로 들고 휘둘렀다면 군졸들이 떼죽음을 당했을 거였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의 가슴이 팡팡 뚫리고 있었다.

그들은 연개소문의 활약에 펄쩍펄쩍 뛰면서 와! 와!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이윽고 연개소문은 즐비하게 쓰러진 군관들을 쓱 내려다보곤

유유히 말발굽을 돌렸다.
그때, 한 청년이 허겁지겁 달려오더니 연개소문 앞에 와서 엎드렸다.


“장군님! 소인의 누이를 좀 구해주십시오.”


몹시 화급한 목소리였다.


“무엇이? 그대의 누이가 어찌 되었다고?”


청년은 패강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유람선이었다.

배 안에는 4~5명이 둘러앉아 한가롭게 술을 마시고 있는 모양이었다. 


“저놈들이 제 누이를  배에 끌어갔습니다!”


연개소문은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더운 피가 끓어오름을 느꼈다.

유람선에 친 화려한 비단 장막이며 차일을 보아

어림군의 벼슬아치나 당나라 사신 일행의 행색임이 틀림없었다.


“고이헌 놈들!”


연개소문은 질풍같이 말을 달렸고 금방 강기슭까지 도달하였다.
배 안에서는 한창 주흥이 무르익고 있는지 띵까띵까 악기소리와

기생들의 노랫소리와 사내들의 희희낙락하는 소리가 강물을 헤적였다.

연개소문의 눈에선 분노의 불길이 이글거렸고,

가슴에선 당장이라도 활 시위를 당기고 싶다는 불뚝성질이 타올랐다.

 

‘그러나 상대는 당나라의 사신에다.……빌어먹을!

어림군의 총관이란 자…….’ 


그는 우선 목청을 가다듬고는 유람선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여보시오!”


배에서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한창 취흥이 도도하여 떠들고 있는 판이라 알아듣지 못했을지도 몰라서,

그는 두 손을 모아 입에 붙이고 더욱 크게 소리 질렀다.


“여보시오!”


그제야 배 안에서 몇이 돌아보았다.

배의 끄트머리에 서서 호위하고 있던 군졸들이었다.


“이 방자한 놈아! 그놈에 돼지 멱따는 소리로 누굴 찾아!”


그들 중 하나가 제법 위엄기 있는 목소리로 소리친 거였다.
하기야, 그들이 알 리 없을 거였다.

불과 지척인 거리에서 자기들 상관인 장택술 아장을 비롯한

많은 동료들이 연개소문의 창대에 맞아 초죽음이 되었다는 사실을

아직은 모를 것이었다. 

연개소문은 저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핫하하! 아하하! 가소로운 놈!

네놈 목소리는 그럼 닭 모가지 비트는 소리냐!

잔말 말고, 그 배에 타고 있는 어림군 총관 나리에게

좀 보잔다고 일러라!”


“야아, 이 방자한 놈 봐라?

네 어찌 함부로 우리 대감마님을 찾는단 말이냐?

도대체 네놈은 누구이기에 그리도 무엄하게 큰 소리로 떠드는 게야!”


이윽고 배에서 장막을 걷고 밖을 내다보는 낌새가 보였다.
이대룡과 함께 장막 안에서 대작하고 있던 소익환이었다. 
강변에 떡 버티고 서서 감히 어림군 총관을 찾는 자의 행색을 보아하니

쌍상투*를 튼 새파란 총각임이 분명하였다.
총각이 다시 고함을 내지르고 있었다.


“이놈! 무슨 말이 그리 많으냐? 어서 총관을 부르지 못할까!”


“도대체 네놈은 누구냐? 네놈 정체나 밝혀라!”


연개소문은 피식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네놈 말이 옳다! 여봐라! 나는 동부 총관부의 연개소문이다.

어서 너희 대감께 여쭈어라!”


뭔가 집히는 바가 있는지, 군관이 슬쩍 뒤돌아보며 무슨 말인가를 했고,

그 즉시 총관의 얼굴에 긴장감이 스치고 있었다. 
군관은 더욱 큰 소리로 외쳤다.


“네가 동부총관의 아들 연개소문이란 말이냐?”


“그렇다!”


“그렇다고? 그러면 네 이놈! 어찌 감히 우리 총관님을 만나겠다고

떠드는 게냐? 썩 물럿거라!”


소 총관에게 점수를 딸 생각을 한 군관은 제법 호기롭게 장검을

뽑아 들고 휙휙 허공에 칼질하며 호통치고 있었다. 
연개소문은 유유히 등 뒤에서 활과 살을 뽑아 시위에 활을 먹이고는

정확하게 군관을 겨누고 소리쳤다.


“네 진정 말을 듣지 않을진대, 어디 혼 좀 나 보아라!”


쩌렁쩌렁한 호령소리가 온 강변을 울렸다.
유람선 안에서 놀던 소 총관은 물론,

강변 언저리의 모든 살아있는 눈동자들이 일제히

연개소문의 손을 주시했다.
곧이어 연개소문에게서 떠난 화살이 팽팽히 바람을 갈랐다.


쨍그렁!


화살은 곧바로 호위군관이 빼든 칼에 적중했다.      
군관의 장검은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두 동강 나는 동시에

허공으로 높이 뛰어올랐다간 시푸른 빛살과 함께 강으로 곤두박질 쳤다.

혼비백산한 호위군관은 뱃전에다 엉덩방아를 찧으며 주저앉았다.

상황이 이쯤 되자 소 총관은 물론 그를 둘러싼 여러 취객들도

가슴을 쓸어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유람선 장막 안은 어느새 취흥이 사라져 갔고,

팽팽한 긴장감만이 감돌았다.
그런 한편 강변에 운집해있던 사람들은 모두 흥분하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유람선에선 당나라 사신 이대룡이 소 총관의 얼굴을 멀거니 보며

어서 빨리 해결하라고 채근하는 눈짓을 했다.

자기 위신이 말이 아니게 추락했다는 느낌에 기분이 엉망진창이 된

소 총관은 새삼스레 분통이 터져서 술이 확 깼다.

그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호통이란 걸 치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어찌된 셈인지 몸이 말을 듣질 않았다.

입도 열리질 않았다.

그래도 억지로 움직이려고 몸을 움찔거려보는데,

그때, 또다시 연개소문의 호령소리가 날아들었다.


“여보시오, 어림군의 소 총관 나리!

그 총관부 군졸들이 납치해간 여염집 처녀를 어서 돌려  보내시오!”


일이 이쯤 되자 천하의 안하무인 격이며 당대의 세도가인 소익환도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절절 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우선 좌우를 둘러보며 명령 내렸다.


“여봐라! 어서 빨리 장 아장을 불러 오너라!”


그러나 장택술 아장은 전신이 피투성이가 된 채

간신히 도망 와있는 참이었다.

차일 뒤쪽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던 그는

기괴한 몰골로 우물쭈물하며 소 총관 앞에 섰다.

그리고 연개소문과 대결했던 일을 이실직고했다.


“대감마님, 연개소문의 무예가 어찌나 출중한지

소장과 30명의 군졸로는 도저기 감당할 수가 없었사옵니다.”


힘없이 머리를 조아리는 아장의 이마에서는

아직도 선혈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처참한 지경을 당한 소 총관은 모골이 곤두서서 눈살을 찌푸렸다.


“에잇! 못난 놈, 어서 썩 물러가지 못할까!”


“죄송하옵니다, 대감마님,”


장 아장이 비실비실 차일 뒤로 물러났다.
소 총관은 잠시 난감지경에 빠졌다. 

 
‘오늘의 치욕을 꼭 갚고야 말리라.’


소익환은 입술을 질겅질겅 씹으며 다음날을 기약했다.


“총관 나리! 만에 하나, 그 아녀자를 빨리 돌려보내지 않으신다면

또 한번 이 화살맛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또 다시 연개소문의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소 총관의 귀를 후비고 들었다. 그는 가슴이 답답하여 미칠 것만 같았다.

‘이놈, 연태조 아들놈, 개소문인지 개뼉다군지, 이놈! 어디 두고 보자!’

그는 옆에 쪼그리고 앉아 바들바들 떨고 있는 낭자를 내려다보았다.

그냥 돌려보내긴 몹시 아까운 미모였다.

잡은 물고기를 도로 살려주라니! 억울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

‘일단은 돌려줄 수밖에…….’


그는 침통한 표정으로 옆에 시립하고 있는 군관을 불렀다.


“너희들은 이 계집을 저기 강변에 연개소문 놈에게 던져주고 오너라.”

“예이~”

소 총관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두 군관이 달려들어

낭자의 팔다리를 붙들어내어 작은 배에다 내동댕이쳤다.

잠시 후 배는 맞은 편 강변에 버티고 서 있는 연개소문 앞으로 다가갔다.


간신히 구출된 낭자는 창백한 얼굴을 들어 연개소문을 올려다보았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눈물로 범람하며 무수한 언어를 토하고 있었다.

“장군님, 이 은혜, 백골난망이옵니다.”

한참 낭자를 내려다보던 연개소문은

옆에 서 있는 낭자의 오라비에게 물었다.

“바로 이 낭자가 그대의 누이동생인가?”

“예에, 장군님, 이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해야 하올지 모르겠습니다.”

“이만 일에 보답은 필요 없소. 어서 피하시오.

누이동생을 데리고 되도록이면 멀리 떠나도록 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저 불한당 놈들이 또다시 당신들을 괴롭힐 게요.

나는 당신들이 아주 멀리 사라질 때까지 이곳에서 지키고 있을 거요.”

“아아, 장군님. 저희에게 이토록 대은을 베풀어주시와

황공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이 크나큰 은혜, 후일에 결초보은 하겠습니다.”

남매는 거듭거듭 절을 하면서 걸음을 재촉했다.
남매가 멀리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말 위에 앉아 지켜보던 연개소문은

이윽고 바우를 돌아보았다.

“바우야!”

“예, 소인, 여기 있사옵니다.”

어느새 와 있었는지, 바우가 말고삐를 잡고 있었다.

“너무 늦었구나. 이제 그만 집으로 가자꾸나.”

연개소문은 고삐를 당기며 박차를 가했다.
말은 한 번 앞발을 높이 들었다 놓고는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말발굽이 닿는 곳마다 뿌옇게 모래먼지가 일어나며

그들의 모습을 가려주었다.

◇◇◇

다음날, 연개소문은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사랑채로 갔다.

“아버님, 소자 왔사옵니다.”

“오냐, 그리로 앉거라.”

연태조는 아들의 모습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아들의 건장한 체구, 믿음직한 모습은 언제나 그에게 기쁨을 안겨주었다.

세간에 떠돌아다니는 소문으론 아들의 무예는 온 나라 안의 내로라하는

장수들이 개소문을 당해내질 못할 정도라는 거였다.

그러나 지금 아들을 바라보는 연태조의 마음은 그리 밝지가 못했다.

개소문이 용맹하면 할수록 그에게는 더 험난한 길이 펼쳐질 것이

눈에 보이는 듯 빤하였다.

“개소문아! 어제 네가 양각도에서 일을 벌였다지?”

“아버님, 송구합니다.”

연개소문은 고개를 푹 떨구었다.

“매사에 자중하여라.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좀 더 먼 내일을 위해

오늘은 참고, 또 참아야 하느니……. 알겠느냐?”

“예에, 아버님……. 너무 심려 마십시오.

소자의 일은 소자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오냐, 어련하겠느냐만, 요즘 자꾸 불길한 생각이 들어서 그러니라.” 

연개소문은 아버지의 자애로운 눈을 보는 순간, 가슴이 답답해왔다.

불현 듯 죄스러운 마음이 뭉클 올라왔다.

“소자, 이제껏 아버님께 심려만 끼쳐드린 것 같습니다.

용서하소서. 다음부터는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조심하겠습니다.”

“아니다.”

그러고서 연태조는 말이 없었다. 눈을 감고서 생각에 잠긴 것이었다.
어림군 총관이란, 대(大)동부총관에 비하면 군사력으로야

문제 될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소익환은 영류왕의 부마이고 가장 신임 받는 가신이었다.

연태조 자신이 북공남수파의 총수라면, 소익환은 왕을 등에 업은

남공북수파의 기수 노릇을 하고 있는,

결코 만만히 볼 수 없는 정적(政敵)인 거였다.

또한 전날의 어전회의에서 그의 태도는

떠올리기조차 껄끄러운 안하무인의 행태 아니었던가.


‘바로 그 자가 내 아들에게 모욕을 당했다……. 가만있을 리 만무하다.’

그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얘야!”

개소문은 가만히 아버지의 얼굴을 보았다.

등잔불에 비치는 아버지의 얼굴은 기진맥진해진 얼굴이었다.

아니, 노쇠한 모습이었다.

볼이 움푹 들어가서 양쪽 광대뼈가 더욱 불거졌다.

“아버님, 무슨 걱정을 그리 하십니까?” 

“아니다……”

“아버님, 지금 우리나라에 와있는 당나라 사신은 어떠한 위인이옵니까?”

“당의 사신 말이냐? 음…….”

연태조는 눈을 감았다. 그의 머릿속이 갑자기 어지러웠다.

어림군의 소익환과 당나라 사신 이대룡의 얼굴이

막리지 민의겸의 모습에 겹치면서 흉측한 괴물의 형태를

자아내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조용히 눈을 뜨며 나직한 목소리로 아들을 불렀다.

“개소문아!”

“예, 아버님.”

개소문은 가만히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등잔불에 비치는 부친의 얼굴은 이미 노쇠할 대로 노쇠한 모습이었다.

양쪽 광대뼈만이 툭 불거진 얼굴.

아들의 무릎에 올려놓는 그의 두 손엔 푸른 힘줄만이 툭툭 도드라졌다. 

“그것보다도, 얘야, 너도 이미 성가할 나이가 되었지 않으냐?”

“아버님, 그동안 소자, 아버님께 너무 심려만 끼쳐드렸사옵니다.

앞으론 제가 부모님께 더 이상 걱정을 안 끼치고 평안히 모시겠사옵니다.”

“…….”

연태조의 눈이 또 붉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