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개소문 이야기 [14화]음모에 걸려들기 [5]
“아버님, 소자 이제 아버님 곁에 있지 않사옵니까?” 지금 우리나라에 와있는 당나라 사신은 어떠한 위인이옵니까?” 그의 머릿속에서 소 총관과 민의겸, 그리고 이대룡의 얼굴들이 한데 어울려 울컥 구토를 일으키며 어지럼증을 유발시키고 있었다. 여간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었고, 너무 기뻐서 칭찬이라도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소 총관이 필시 보복을 할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 한 구석이 한 치 앞을 분간 못할 지경으로 어두워지는 것이었다. 그러다 이 생각 저 생각 끝에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우리 동부 총관부 산하 56개 산성도 이제는 네가 돌봐야 하느니라. 알겠느냐?” 한지에다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붓을 놓은 연태조는 마루로 나가 바우를 불렀다. 연비 별장을 만나란 말이다. 그리고 별장과 함께 평원 땅 공대인 댁을 다녀오는 게야. 조심스럽게, 절대로 대사를 그르치지 않도록……. 어서 빨리 다녀오도록 해라.” 연태조는 아들 개소문에게 당부했다. 너의 혼사를 치러야 하니까 말이다. 우리 총관부를 상속하려면 그렇게 안팎으로 준비하고서 마음을 단단히 다져야 하느니라.” 초여름. 연태조는 오래간만에 관하 산성의 성주들에게 명을 내렸다. 아들과 함께 산성들을 둘러보기 위함이었다. 널따란 동부 총관부 앞뜰에는 아침부터 많은 군사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따가운 초여름햇살이 뜰에 있는 모든 꽃과 풀과 나무들에 내리쬐어 유난히 반짝거린다 싶던 그 때,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소리와 시끄러운 말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선두에는 어림군의 장택술 아장임이 분명하였고, 가운데는 황문시랑(黃門侍郞) 조연우(趙蓮宇)의 모습이 보였다. 조연우의 좌우에는 서슬 퍼런 어림군들이 호위하고 있었다. 의아한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맨 앞의 장택술 아장을 확인하고는 아연실색하였다.
게다가 황문시랑까지?’ 황문시랑이란 그리 높은 벼슬은 아니었지만 궁중에서 대왕을 가장 가까이서 모시는, 이른바 내시인 거였다. 그렇다면 필시 대왕의 어명을 받들고 있을 터. 오 낭장은 부랴부랴 뛰어나가 예를 올렸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를 솔솔 불어냈다. 어서 안으로 안내하오!” 마지못해, 아주 사무적인 태도로 그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그러다 때마침 밖으로 나오는 연 총관 부자와 맞닥뜨렸다.
그러나 침착한 표정으로 황문시랑을 바라보았다. 더욱이 일전에 맞서 겨뤘던 어림군의 아장이란 존재가 몹시 거슬렸다. 아니나 다를까, 장택술 아장은 무슨 참전 상이용사처럼 온 몸 여기저기를 친친 감고 있었다. 채 아물지도 않은 상처부위를 영광의 상처라도 되는 듯이 드러내놓고 두 다리 떡 벌리고 서 있는 모양새가 아주 가관이었다. “내 입궐하여 마마를 배알하고 올 터이니, 너희들은 일단 산성 순회 준비를 중단하고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리라!” 일말의 불안감을 애써 감추며, 연태조는 묵묵히 말을 몰았고, 아들 연개소문은 이미 저만치 앞장서서 말을 달리고 있었다. 연태조와 아들 연개소문이 내성(內城)을 지나 구제궁으로 향할 무렵,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한 노인이 나타났다. 굵은 삼베도포를 입고 커다란 방립을 쓴 그 노인은 말을 탄 채 연태조 부자에게 바짝 붙었다. 아아, 을지문덕……. 몽매에도 잊을 수 없는 사부, 문덕도사인 거였다. 연개소문이 뭔가 말을 걸려고 하자, 도사가 방립을 손으로 제치는 동시에 조용히 하라는 시늉을 했다. 연개소문은 사세가 급박한 바로 이 시점에 나타난 스승의 정에 가슴이 뭉클하였다. 연태조도 마찬가지였다. 나아가, 너무 답답한 이 사정을 문덕도인에게 확 털어놓고 싶은 심경이었다. 하지만 그저, 눈으로만 인사를 차렸을 뿐이었다. 반드시, 대감 대신 개소문을 보내겠다고 하시오!” 그는 어느새 바람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이윽고 연태조 일행은 구제궁 정문 앞에 이르렀다. 그러나 지존의 어명이라 어쩌는 도리 없이 혼자 말에서 내렸다. 황문시랑은 연태조를 내전이 아닌 대조전으로 안내하고 있었다. 태왕은 본래 어전회의가 아닌 한 대소신료들을 대조전에서 접견하는 법이 없었다. 급한 일이 있을 땐 일쑤 내전으로 부르는 것이 상례였다. 연태조는 괴이한 생각이 들긴 했으나 묵묵히 황문시랑의 뒤를 따랐다. 한 사람도 보이질 않고, 어림군 총관인 소익환만이 태왕의 뒤에 시립해있는 거였다. 다시 등 뒤의 소익환에게로 눈길을 보냈다. 태왕의 시선을 받자, 소익환은 고개를 아래로 떨어뜨렸고, 태왕은 다시 또 연태조를 내려다보았다. 돌궐 원병 문제가 아직도 해결을 보지 못하고 있어 여간 괴로운 것이 아니구려. 더욱이 돌궐의 사신은 날마다 입궐하여 짐에게 원병을 간청하고 있으니, 이런 성화가 또 어디 있단 말이오? 그리하여 이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고자 오늘 경더러 급히 입궐하라 하였소. 그러니 경은 짐에게 좋은 의견을 기탄없이 말해주길 바라오.” 연태조는 어리둥절하기 짝이 없었다. 파병을 극구 주장해온 당사자에게, 그것도 소 총관 외엔 다른 신하도 없는 자리에서 파병의 문제를 하문하시는 것부터가 몹시 괴이했다. 이왕 또 자기주장을 기탄없이 말해보라고 하니 연태조는 또 다시 결연한 음성으로 상주하였다. 만조의 문무백관들은 모두가 파병을 반대하니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이오?” 또 다시 반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기야, 그간 자주 상주해왔던 사안을 총정리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터였다.
하오니, 지난 날 돌궐이 우리나라를 위해 많은 원병을 보내온 그 신의를 유념해 보옵소서. 돌궐이 위태로운 이때 성상마마의 천병(天兵)을 보내시와 그 위급을 구하는 것이 하늘의 듯인 줄로 소신 생각하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돌궐의 사정을 좀 더 세세하게 조사한 연후에야 이 문제를 해결함이 좋을 듯싶소. 파병의 타당성을 들이대는 데야, 자기들이 더 무슨 반대를 하겠소?” 영류태왕은 연태조에게 생각할 겨를을 줄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연이어 몰아붙였다. 그래서 그들의 실정을 소상히 조사한 후에야 파병 여부를 결정함이 지당하신 줄 아옵니다.” 아니, 태왕의 작전에 말려들고 말았다. 그랬다. 영류태왕은 고개를 크게 주억거렸다. 태왕은 연태조에게서 이 말이 나오도록 유도했고, 성공한 것이었다. 태왕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과연 누구를 돌궐로 보냄이 옳겠소?” |
'소설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新연개소문전 -음모에 걸려들기7 (글쓴이-蘭亭주영숙) (0) | 2017.10.06 |
---|---|
新연개소문전 -음모에 걸려들기6 (글쓴이-蘭亭주영숙) (0) | 2017.10.02 |
新연개소문전 -음모에 걸려들기4 (글쓴이-蘭亭주영숙) (0) | 2017.10.01 |
新연개소문전 -음모에 걸려들기3 (글쓴이-蘭亭주영숙) (0) | 2017.10.01 |
新연개소문전 -음모에 걸려들기2 (글쓴이-蘭亭주영숙) (0) | 2017.09.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