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

新연개소문전 -음모에 걸려들기5 (글쓴이-蘭亭주영숙)

해피y 2017. 10. 1. 22:25

 


 

연개소문 이야기 [14화]음모에 걸려들기 [5]


 

“아버님, 소자 이제 아버님 곁에 있지 않사옵니까?”


“오냐, 오냐……


“그런데 아버님,

지금 우리나라에 와있는 당나라 사신은 어떠한 위인이옵니까?”


“당의 사신? 음……


연태조는 차라리 신음으로 답을 대신하였다.

그의 머릿속에서 소 총관과 민의겸, 그리고 이대룡의 얼굴들이

한데 어울려 울컥 구토를 일으키며 어지럼증을 유발시키고 있었다.


“음…….”


또 한번 신음이 흘러나왔다.
아들이 양각도에서 한 일은 슬기롭고 의로운 일이라는 판단이 섰다.

여간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었고, 너무 기뻐서 칭찬이라도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소 총관이 필시 보복을 할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 한 구석이

한 치 앞을 분간 못할 지경으로 어두워지는 것이었다.
그는 너무 늙었다. 이 모든 일을 감당하기가 여간 버거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다 이 생각 저 생각 끝에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그의 두 눈에는 방금까지 서려있던 수심의 빛은 온데간데없어졌다.
어떤 결연한 빛마저 감돌고 있었다.


“얘야!”


“예, 아버님…….


“네 이미 성가할 나이가 되질 않았느냐?”


“아 예. 어서 해야지요. 아버님…….”


잠시 당황했던 연개소문은 문득 하란의 얼굴이 떠올랐다.


‘낭자……. 조금만 더 기다려주오!’


그의 가슴에 촉촉한 물안개가 자욱해지며 보랏빛깔 그리움이 차오르고 있었다.


“이제는 내가 너무 늙었다. 너는 하루 빨리 성가하여 아비의 뒤를 이어야 한다.

우리 동부 총관부 산하 56개 산성도 이제는 네가 돌봐야 하느니라. 알겠느냐?”


“아버님, 명심하겠습니다.”


그러고서 연개소문은 자세를 고쳐 앉아 하란에 대한 이야기를 소상히 말씀드렸다.
한동안 부자 사이엔 침묵만이 흘렀다.


“아비는 너만 믿는다.”


한참 후 먼저 입을 연 연태조는 조용히 벼루에 물을 부어 먹을 갈았고,

한지에다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붓을 놓은 연태조는 마루로 나가 바우를 불렀다.


“너는 이 서찰을 가지고 이 밤 안으로 말을 달려 산성으로 가거라.

연비 별장을 만나란 말이다. 그리고 별장과 함께 평원 땅 공대인 댁을 다녀오는 게야.

조심스럽게, 절대로 대사를 그르치지 않도록……. 어서 빨리 다녀오도록 해라.”


“예이, 대감마님, 하명을 어김없이 봉행하겠사옵니다.”


바우가 신바람이 나서 겅중겅중 춤추는 모양새로 뛰어나가는 것을 망연히 바라보며,

연태조는 아들 개소문에게 당부했다.


“너는 당분간 다른 생각은 일체 하지 말거라. 공대인 댁 권속이 도착하는 대로

너의 혼사를 치러야 하니까 말이다. 우리 총관부를 상속하려면 그렇게

안팎으로 준비하고서 마음을 단단히 다져야 하느니라.”


“예, 아버님 말씀, 명심하여 행하겠습니다.”


초여름. 연태조는 오래간만에 관하 산성의 성주들에게 명을 내렸다.

아들과 함께 산성들을 둘러보기 위함이었다.

널따란 동부 총관부 앞뜰에는 아침부터 많은 군사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따가운 초여름햇살이 뜰에 있는 모든 꽃과 풀과 나무들에 내리쬐어

유난히 반짝거린다 싶던 그 때,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소리와 시끄러운 말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말 탄 군관 20여명의 호위를 받으며 동부총관으로 오는 행렬.

그 선두에는 어림군의 장택술 아장임이 분명하였고,

가운데는 황문시랑(黃門侍郞) 조연우(趙蓮宇)의 모습이 보였다.

조연우의 좌우에는 서슬 퍼런 어림군들이 호위하고 있었다. 
뜰에서 산성으로의 출동준비를 서둘고 있던 오 낭장이 이외의 손님들을

의아한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맨 앞의 장택술 아장을 확인하고는 아연실색하였다.


‘도련님에게 된통 터졌다더니, 그거 자랑하려고 나타난 거야?

게다가 황문시랑까지?’


황문시랑이란 그리 높은 벼슬은 아니었지만 궁중에서 대왕을 가장 가까이서 모시는,

이른바 내시인 거였다. 그렇다면 필시 대왕의 어명을 받들고 있을 터.

오 낭장은 부랴부랴 뛰어나가 예를 올렸다.


“황문시랑 나리, 어서 오십시오.”


그러자 황문시랑은 나무판대기 같이 딱딱한 표정으로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를 솔솔 불어냈다.


“본 황문시랑, 대왕마마의 어명을 받잡고 연 총관을 뵈러 왔소.

어서 안으로 안내하오!”


‘어명…….’


오 낭장 역시 딱딱하게 얼어버린 표정이었다.

마지못해, 아주 사무적인 태도로 그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그러다 때마침 밖으로 나오는 연 총관 부자와 맞닥뜨렸다.


‘기어이 올 것이 왔구나…….’


뜰로 내려서다가 황문시랑 일행을 발견한 연태조는 움찔하였다.

그러나 침착한 표정으로 황문시랑을 바라보았다.


“어인 일이시오?”


그의 말은 자기도 모르게 조금 떨려 나왔다.


“동부 총관 대감께서는 급히 입궐하랍시는 대왕마마의 분부시오.”


황문시랑이 아주 거만하게 허리를 뒤로 젖힌 채 첩지를 전달하였다.


“성상마마께옵서?”


순간 연태조의 얼굴 근육이 일그러졌다. 첩지를 받아든 그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집안의 경사를 앞에 두고 며칠간 불안해하던 일이 마침내 터진 거였다.
연개소문 역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예감에 사뭇 불안하였다.

더욱이 일전에 맞서 겨뤘던 어림군의 아장이란 존재가 몹시 거슬렸다.

아니나 다를까, 장택술 아장은 무슨 참전 상이용사처럼 온 몸 여기저기를

친친 감고 있었다. 채 아물지도 않은 상처부위를 영광의 상처라도 되는 듯이

드러내놓고 두 다리 떡 벌리고 서 있는 모양새가 아주 가관이었다.


“내 입궐하여 마마를 배알하고 올 터이니,

너희들은 일단 산성 순회 준비를 중단하고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리라!”


말을 마친 연태조가 군졸이 끌고 온 준마에 성큼 올라탔다.


“아버님, 소자가 모시고 가겠습니다.”


어느새 연개소문도 말에 올라타 있었다.


“아니 된다. 너는 남아서 아비를 기다리도록 해라!”


“아버님, 심려 마십시오. 반드시 소자가 모시고 갈 것이옵니다.”


아들은 좀체 아비 말을 들으려 하질 않았다.

일말의 불안감을 애써 감추며, 연태조는 묵묵히 말을 몰았고,

아들 연개소문은 이미 저만치 앞장서서 말을 달리고 있었다.


연태조와 아들 연개소문이  내성(內城)을 지나 구제궁으로 향할 무렵,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한 노인이 나타났다.

굵은 삼베도포를 입고 커다란 방립을 쓴 그 노인은

말을 탄 채 연태조 부자에게 바짝 붙었다.


‘앗! 사부님!’


연개소문은 얼결에 소리를 지를 뻔하였다.

아아, 을지문덕…….

몽매에도 잊을 수 없는 사부, 문덕도사인 거였다.

연개소문이 뭔가 말을 걸려고 하자, 도사가 방립을 손으로 제치는 동시에

조용히 하라는 시늉을 했다. 연개소문은 사세가 급박한 바로 이 시점에 나타난

스승의 정에 가슴이 뭉클하였다. 연태조도 마찬가지였다.

나아가, 너무 답답한 이 사정을 문덕도인에게 확 털어놓고 싶은 심경이었다.

하지만 그저, 눈으로만 인사를 차렸을 뿐이었다.


그 사이, 문덕도사의 말이 연태조 옆으로 다가섰다.


“대감, 어전에 나가시면 필시 돌궐로 보낼 사신을 거론할 것인즉,

반드시, 대감 대신 개소문을 보내겠다고 하시오!”


연태조가 어리둥절하여 문덕도사를 바라보았지만,

그는 어느새 바람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혹시 꿈을 꾼 거냐?”


연개소문이 아직도 감격이 사라지지 않은 얼굴로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아버님, 꿈이 아닙니다. 스승님의 말씀대로 하십시오.”


이윽고 연태조 일행은 구제궁 정문 앞에 이르렀다.
연태조는 아들을 마치 적진과도 같은 이곳에 남겨두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지존의 어명이라 어쩌는 도리 없이 혼자 말에서 내렸다.


“개소문아! 너는 여기서 기다리도록 하여라.”


“예, 아버님. 다녀오십시오.”

황문시랑은 연태조를 내전이 아닌 대조전으로 안내하고 있었다.

태왕은 본래 어전회의가 아닌 한 대소신료들을 대조전에서 접견하는 법이 없었다.

급한 일이 있을 땐 일쑤 내전으로 부르는 것이 상례였다.

연태조는 괴이한 생각이 들긴 했으나 묵묵히 황문시랑의 뒤를 따랐다.
영류태왕은 이미 용포와 면류관을 착용하고서 용상에 좌정해 있었다.
황문시랑이 용상 앞에 부복하였다.


“성상마마, 어명을 받자옵고 동부총관 연태조 대감이 대령한 것을 아뢰나이다~”


“시랑은 이제 물러가라!”


“성상마마, 대명 거행 하나이다~”


“성상마마, 신 연태조, 지엄하신 분부 받자와 대령하였사옵나이다.”


황문시랑이 물러가자, 연태조가 부복 대례하였다.
배례를 올리고서 슬며시 용상의 좌우를 보니 해괴하게도 3공의 재상들은

한 사람도 보이질 않고, 어림군 총관인 소익환만이 태왕의 뒤에 시립해있는 거였다.   
영류태왕은 근엄한 표정으로 용상 아래 부복하고 있는 연태조를 쏘아보다가

다시 등 뒤의 소익환에게로 눈길을 보냈다. 태왕의 시선을 받자,

소익환은 고개를 아래로 떨어뜨렸고, 태왕은 다시 또 연태조를 내려다보았다.


“짐이 전에도 경들과 상의한 바 있거니와,

돌궐 원병 문제가 아직도 해결을 보지 못하고 있어 여간 괴로운 것이 아니구려.

더욱이 돌궐의 사신은 날마다 입궐하여 짐에게 원병을 간청하고 있으니,

이런 성화가 또 어디 있단 말이오? 그리하여 이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고자

오늘 경더러 급히 입궐하라 하였소.

그러니 경은 짐에게 좋은 의견을 기탄없이 말해주길 바라오.”


갑자기 입궐하라고 해서 불안한 마음 금할 길이 없었는데 뜻밖에도 돌궐 파병 문제라니,

연태조는 어리둥절하기 짝이 없었다. 파병을 극구 주장해온 당사자에게, 그것도

소 총관 외엔 다른 신하도 없는 자리에서 파병의 문제를 하문하시는 것부터가

몹시 괴이했다.
언제는 저런 식으로 안 그랬는가, 그리 싶기는 하였지만,

이왕 또 자기주장을 기탄없이 말해보라고 하니

연태조는 또 다시 결연한 음성으로 상주하였다.


“성상마마, 신의 소견으로는 돌궐에 원병을 보냄이 사리에 합당한 줄로 아뢰옵니다.”


언제나 그랬지만, 영류태왕은 또 다시 입맛이 썼다.


“경은 기어이 파병함이 옳다고 하나,

만조의 문무백관들은 모두가 파병을 반대하니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이오?” 

   
그야말로 하고 또 해오던 중복 문답이어서, 연태조는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


‘아무리 소일거리가 없으시기로, 또 다시 늘 하던 식의 문답을 하시다니…….’ 

 
“경은 어찌하여 대답이 없소?”


태왕의 옥음에는 짜증마저 섞여있어서, 연태조는 하고 또 했던 대답을

또 다시 반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기야, 그간 자주 상주해왔던 사안을

총정리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터였다.


“성상마마, 지금 돌궐은 당의 침략으로 존립이 위급한 때인 줄로 아옵니다.

하오니, 지난 날 돌궐이 우리나라를 위해 많은 원병을 보내온 그 신의를

유념해 보옵소서. 돌궐이 위태로운 이때 성상마마의 천병(天兵)을 보내시와

그 위급을 구하는 것이 하늘의 듯인 줄로 소신 생각하옵니다.”


“호오, 경의 뜻이 정 그러하다면 원병합시다. 그런데, 내 청이 하나 있소.”


연태조는 몸 둘 바를 몰랐다. 자기 귀를 의심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그런데 청이라니!’


“돌궐에 원군 파병을 반대하는 여러 대신들을 납득시켜야겠소.

그러기 위해서는, 돌궐의 사정을 좀 더 세세하게 조사한 연후에야

이 문제를 해결함이 좋을 듯싶소. 파병의 타당성을 들이대는 데야,

자기들이 더 무슨 반대를 하겠소?”


연태조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생각하고 있는데,

영류태왕은 연태조에게 생각할 겨를을 줄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연이어 몰아붙였다.

 
“경은 이를 어찌 생각하오?”


연태조는 문득 조금 전 꿈결처럼 만난 문덕도사의 말이 떠올랐다.


“경은 어째 아무런 응답이 없소?”


“성상마마, 돌궐에 사신을 보내심이 옳겠나이다.

그래서 그들의 실정을 소상히 조사한 후에야 파병 여부를 결정함이

지당하신 줄 아옵니다.”


태왕의 짜증 섞인 재촉에 밀린 듯이, 연태조가 확고한 신념으로 아뢴 것이었다.

아니, 태왕의 작전에 말려들고 말았다. 그랬다.

영류태왕은 고개를 크게 주억거렸다.

태왕은 연태조에게서 이 말이 나오도록 유도했고, 성공한 것이었다.

태왕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호오, 오랜만에 우리 의견이 한 노선으로 가는구려. 그러면, 또 묻겠소.

과연 누구를 돌궐로 보냄이 옳겠소?”


바로 그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