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개소문 이야기 [19화] 탈출의 묘수 3
마치 눈으로 본 것 마냥 상세하게 적은 예측. 스승의 깊은 사랑에 눈시울이 뜨거워진 연개소문은 두루마리를 다리 밑에다 감추고는 별안간 언성을 높였다. 바우가 후닥닥 몸을 일으키며 상전을 바라보았다. 상전의 두 눈이 번쩍거리는 걸 보니 몹시 흥분한 모양이어서, 바우는 제풀에 목을 움츠렸다. “하이고, 소인이 뭘 잘못 했는갑쇼?” “잘못 했지 그럼! 네 양심에 손을 얹고 생각해봐라 이놈!” “아이고, 서방님, 대체 왜 그러십니까요?” “너는 나를 죽이려는 놈들의 모습을 알렷다!” 연개소문의 말소리에 어떤 분노의 감정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예, 서방님. 알고말고요!” “그런데, 왜 알면서도 말을 하지 않았더냐?” 우렁우렁한 상전의 목소리가 바우의 귀를 후비고 들었다. “하이고 서방님, 죽여줍시오!” 바우는 괜히 후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더듬더듬 이실직고하였다. “서, 서방님 성품이 너, 너무, 엄청 급하셔서, 자, 자칫, 이, 일을 그르칠 수 있다고…… 중립지대에 도, 도착하기 전까진 저, 절대로 비, 비밀이라고, 사, 사부님이 엄명을 내리셔서…….” 바우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지 안색이 허옇게 변하여 입술에 침을 묻혔다. “무슨? 이 편지 말고 다른 걸 물으시려는 거옵니까?” “내가 무엇을 물을지, 너는 이미 짐작하는 게로구나?” 바우가 눈을 끔쩍거렸다. “필시 사부님은 알고 계실 터…….사부님이 또 다른 말씀은 없으시더냐? 너에게 입 걸어 잠그라고 한 다른 이야기 말이니라.” “예에? 뚱딴지처럼, 무슨 그런?” “너는 그 사람을 보았지? 치악산 고갯마루에서 말이다.” “그 사람이 누군뎁쇼?” “허어…… 내 지게 위에 앉아 오던 그 사람 말이다.” 바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는 푹 한숨을 쉬었다. “보았지요. 와아, 꽃처럼 예쁘더이다. 그런데 서방님, 이제는 어엿이 안방마님으로 모셔다 놨는데, 뭘 그러십니까요? 하기야, 혼례식을 하자마자 떠나오셨으니…….” “허어…… 그에 대하여는 말 말자.” 묵묵히 침묵을 지키던 그가 다시 바우를 불렀다. “그래, 너는 놈들의 얼굴을 어떻게 알게 되었더냐?” 상전의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진 것을 알고 바우는 긴 한숨을 토했다. “집에서 출발하기 전에, 사부님께서 심부름을 시키셨어요.” 바우는 자초지종을 술술 불었다. “…….” “서방님은 왜, 사부님의 글을 이제야 읽으시나요?” “뭐야? 하하하하……” 바우의 정곡을 찌르는 물음에 연개소문은 웃음을 터뜨렸다. 바우도 따라서 싱겁게 웃었다. “네 이놈 바우야! 끽소리 말고 이 두루마리를 깨끗이 태우고 오렷다!” “예에? 아까운데.......” “허허허허, 네놈이 말을 못 알아듣는구나? 어서 이걸 태우고 오렷다! 너나 나나 이제부턴 두루마리고 편지고 아무것도 못 봤고 모르느니라. 알겠느냐?” “아 예에~” 바우는 상전의 영대로 두루마리의 흔적을 깨끗이 없애고 들어왔다. “이제 그만 자거라. 내일은 여러 가지 일이 한꺼번에 밀어닥칠 것이다.” “계명관엘 가는 거옵죠?” “그래. 나를 죽이려는 덫 속에 빠져들어 주는 거야.” “거미줄에 걸려들어 가는 건 아니고요?” “말이 많다. 내일 아침은 하루치를 다 챙겨먹고 떠나자꾸나.” “히익?” “든든히 먹어둬야 하느니!” 이튿날 아침, 둘이서 각자 3인분씩의 식사를 시켜먹은 그들은 부랴부랴 행장을 수습하여 말에 올랐다. 그리고 경쾌하게 달렸다. 부지런히 말을 달려 대거리에 이르자, 벌써 저녁 무렵이었다. 계명관 부근의 큰 고목 아래에 말을 세운 연개소문은 마침 지나가는 한 노인을 불러 세웠다. “여보시오 노인장! 길 좀 물읍시다. 여기 계명관이 어디요?” 그러나 노인은 눈만 끔벅끔벅할 뿐이었다. “아, 당나라 사람?” 연개소문은 곧 당나라 말로 물었다. 그는 이미 몇 나라의 말을 배워둔 것이었다. “하하하하! 계명관 앞에서 계명관을 묻다니…….” “이리 오너라아!” 계명관의 하인이 달려 나와 허리를 굽실거렸다. “손님! 어서 오십시오. 먼 길에 피곤하시겠습니다.” “이 집에서 가장 좋은 방으로 안내하렴.” 두 사람이 말에서 내리자마자 하인이 두 필의 말을 끌고 마구간으로 가고, 다른 한 소년이 쫓아나와 방으로 안내했다. 바우는 마치 무슨 냄새라도 맡듯 이 방 저 방을 유심히 살피며 소년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묵을 방은 제법 널찍해서 여러 사람이 동숙해도 좋을만했다. 벽에는 산수화 족자가 걸려있었고, 문 위에는 제법 시를 새긴 현판까지 걸려있었다. 연개소문은 방에 들자마자 장창을 구석배기에 세우고 대궁과 쌍전(雙箭) 등을 풀어놓았다. 그리고 짐짓 요란하게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아하암! 피곤하다. 얘, 바우야. 난 피곤해서 잠 좀 자야겠다. 이따가 나 좀 깨워다오!” 필요 이상으로 크게 떠들어댄 연개소문은 금세 드르렁, 드러렁, 코를 골기 시작했다. 바우는 싱긋이 웃으면서 밖으로 나갔다. 그는 이 방 저 방 샅샅이 돌아가며 동태를 살펴보는 한편, 객관의 구조며 주변 골목길까지 상세하게 둘러보았다. 객관은 바깥채와 안채, 뒷채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각 채마다 야트막한 담이 둘러쳐져 있어 서로 차단되어 있었는데, 안채만은 양 옆에 바깥으로 드나드는 출입문이 있을 뿐, 뒷채에는 바깥으로 출입할 수 있는 별도의 문이 없었다. 안채를 통해서만 대문으로 나가게 되어있는 것이었다. 바우는 안채와 바깥채의 동정을 꼼꼼하게 살폈다. 그러다 보니 놈들은 대부분 안채를 점령하고 있으며, 오직 세 놈만이 바깥채 대문 안에 들어있다는 것까지 알아냈다. 웃기는 것이, 놈들은 모두 연개소문이나 마찬가지로 자는 척하고 있는 것이었는데, 연개소문이 코를 드르렁거리는 반면, 그들은 끽소리 없이 눈만 감고 있다는 것이 달랐다. 한참 만에 방으로 돌아온 바우는 연개소문의 귀에 대고 무슨 말인가를 속닥거렸고, 연개소문이 빙그레 웃었다. “어~ 그 술 한번 먹음직하구나. 술아, 너 본지가 오래다. 도대체 이게 얼마만이냐? 자아, 바우야! 우리 한잔 쭈욱 마셔볼까?” 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술잔에다 술을 가득 부어놓았다. 그래놓고서 연개소문은 잔을 높이 들어 큰 소리로 유쾌하게 말했다. “자, 바우야 한 잔 쭉 들자꾸나!” 상전의 하는 양을 멀거니 바라보며 꿀꺽 침만 삼키고 있던 바우는 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나직하게 말했다. “아니 서방님! 참말 이 술을 드실라고요?” 연개소문은 바우의 얼굴을 쏘는 듯이 바라보더니 별안간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 그 술맛 참 일품이로구나!” 그는 입으로 가져가던 술잔을 들어 마루 위에다 획 부어버렸다. “그러게요. 장군님, 이 술이 향기도 그저그만입니다요. 으하하하! 조오- 타!” 상전의 뜻을 재빨리 알아차린 바우는 자기도 상전처럼 소리 내어 웃으며 술을 뿌려버렸다. 또 술 한 잔을 가득 부어놓은 연개소문은 주섬주섬 이 안주 저 안주를 집어 접시에 담아서는 마루 밑 깊숙이 집어던져버렸다. “에잇! 이 중립지대에 서식하는 잡귀들아! 너희들도 한 잔씩 하고 썩 물러가거라! 오늘밤엔 이 연개소문이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닌 어중찌기 놈들을 모조리 잡아서 생으로 제사를 지낼 터이니, 너희들도 얌전히 구경이나 해라……. 아하하핫!” 바우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낮게 지분거렸다. “야, 바우야. 네 어찌 이를 장난이라 하느냐? 못 먹는 진수성찬은 제사상과 같으니라. 하하하하!” “하긴 그렇네요.” 바우도 배꼽을 싸쥐고 킬킬댔다. “자아! 이만하면 충분히 먹었으니, 그만 상을 물리자.” “예!” 바우는 재빨리 일어나서 상위의 그릇들을 지저분하게 흩어놓는 한편 음식들은 조금씩 덜어서 보자기에 싸서 마루 밑 깊숙이 던져 넣었다. 그릇들은 누가 보더라도 실컷 먹다 남은 음식 그릇인양, 상 위에 지저분하게 널브러졌다. 바우가 안채를 향해 소리쳤다. “여봐라! 여기 상을 내 가라!” 연개소문이 싱긋 웃으며 누울 자리를 보았다. “야, 바우야. 그만하면 됐다. 알아서 가져 가겠지. 이제 그만 자자꾸나. 내가 말한 거 명심했지? 그대로 시행할 것이니라. 알겠느냐?” “아무렴요, 서방님! 염려 마십시오.” 자는 척하고 있으려니 조심조심 발짝 소리가 다가오고 있었다. 하인이 큰 소리로 물었으나, 두 사람은 약간 몸을 꿈틀 하는 것 같더니 아무소리가 없었다. “에~ 우리…… 취했나 보다. 어서 불이나 꺼! 자야겠으니까!” 한참 만에 한 손님이 무슨 잠꼬대처럼 혀 꼬부라진 소리를 했다. “아 예에~” 하인들은 굽실굽실하면서 두 사람에게 얇은 여름이불을 던져주고는 지체 없이 등잔불을 끈 후에 지저분한 저녁상을 맞들고 나가버렸다. “아니 저 손님들은 골격은 장군감들인데 말이야, 그까짓 술 한 되를 나눠 마시고 저렇게 곯아떨어져?” “정말 이상해! 어떻게 저렇게 정신을 못 차리고 훌떡 벗어던진 채 뒹굴고 있을까…… 참나!” “하긴, 말 달리는 게 되게 힘들다고는 하더구먼.” “아무리 힘들다고 그래…….마치 술에 약이라도 탄 것 마냥……” “맞아. 누가 보면 딱 그렇게 오해하겠구먼.” 두 하인이 상을 들고 나가면서 서로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을 주고받았다. “얘들아, 이리 오너라.” 안채에 앉아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보개가 주안상을 들고 들어가는 두 하인을 부른 거였다. 그는 상 위를 주욱 훑어보고는 ‘휴우~’ 한숨을 토했다. “그래, 그 방의 손님들은 지금 어떻게 하고 있더냐?” “아이구! 말씀 마십쇼! 겨우 한 됫박 되는 술을 둘이서 나눠 마시고는 정신없이 뻗어버렸더라고요.” “웃통을 훌떡 벗어던지고는 코를 골면서 말입니다요. 그래서 베 이불을 덮어주고 왔습니다요.” “그래? 그 사람들이 그렇게 술에 약하더란 말이지?” “예에, 모르는 사람이 보면 술에 약이라도 탔다고 그러겠어요.” “뭐야? 그렇게 정신없이 뻗었더란 말이야?” 그러면서 보개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옛다! 수고했다.” “아이구, 이거 웬 것이옵니까?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손님!” 두 하인은 거듭거듭 머리를 조아렸다. “하 참, 그 손님들 참 안됐네…….” 언제 나왔는지 늙은 당나라 주인이 보개의 옆에 서 있다가 혀를 끌끌 찼다. “거 참, 마음씨 한번 곱상한 주인장이구려! 고양이 쥐 생각 하는 꼴이지만.” “한가한 말씀 하고 계시네!” 주인장도 지지 않고 대꾸했다. “어서 부하들이나 불러요. 후딱후딱 시체나 치워주시란 말이오!” “헛! 그렇군.” 보개는 총총히 부하들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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