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

新연개소문전 - 탈출의 묘수 1(글쓴이-蘭亭주영숙)

해피y 2017. 10. 6. 04:57

 

    연개소문 이야기 [17화] 탈출의 묘수 1


술꾼 일행과 이소룡은 한패거리인 모양으로, 모두 언제 취했었냐 싶게 바쁜 걸음으로 가고 있었다. 아무도 비틀거리는 자가 없었다. 하늘엔 구름이 껴서 달빛마저 흐릿한 밤이라 그들의 모습은 그저 희미하게 보일 뿐, 그다지 드러나지는 않았다. 이소룡을 선두로, 그들은 두 대의 포장마차에 날렵하게 올라타기 시작했다. 그들이 모두 마차에 오르자, 포장마차 안에 미리 타고 있던 자들이 올라탄 술꾼들마다 일일이 수건으로 눈을 가리기 시작했고, 그 작업엔 아랑곳없이 마부는 재빨리 말을 몰아 달리기 시작했다.

두 대의 마차는 평양성 서문 큰 길을 빠져나와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커다란 방립을 쓴 사내도 홀로 말을 타고 그들 뒤를 은밀히 따라붙었다.
마차는 어느새 서문에서 20리쯤 떨어진 산골짜기를 지나 평평한 산마루에 도착했다. 그곳엔 퇴락한 사당이 하나 있었는데, 몇 사람의 장정들이 눈이 가려진 술꾼들을 하나하나 사당 안으로 이끌어 들였다. 술기운이 천리 밖으로 달아나버린 술꾼들의 몸은 바짝 긴장하여 꼭두각시처럼 빳빳이 섰다. 이윽고 그들이 거의 원형으로 웅기중기 서자, 갑자기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술꾼들의 귀를 덮쳐들었다.

“잘 왔다! 모두 그 자리에 그대로 편히 앉도록 하라…… 너희들은 이제 우리 대장군님의 지시를 받기 위해 지하요새로 들어간다. 만일 너희들 중 한 놈이라도 충성이 부족한 자가 생기면 모조리 죽임을 당할 것이니, 각별히 조심하라! 알겠느냐!”

호령소리는 비좁은 사당 안을 쿠웅! 쿠웅! 울렸다.

“예이!”

눈이 가려진 그들이 일제히 큰 소리로 대답하고 나자 또 소리가 들렸다. 

“지금부터 지하 요새로 들어간다. 그 어떤 일이 벌어지거나 괴상한 소리가 나더라도, 놀라거나 궁금해 하지 말도록! 알아듣겠는가!”

“예이!”

곧이어 우웅! 하는 어인 짐승소리가 나면서, 술꾼, 아니 장정들이 앉은 자리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당의 바닥이 커다란 바위였던 모양으로, 그것이 장정들을 태우고 통째 내려가고 있는 거였다. 수직 하강이었다.


한 장정은 자기 눈을 가린 수건을 슬며시 올리고 간신히 앞을 내다보았으나, 어디가 어딘지 도통 분간할 수가 없게 깜깜하여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이윽고 괴상한 소리가 멎고 바위가 두 쪽으로 찌잉~ 갈라지더니 그들의 몸이 모두 일으켜 졌다. 그리고 모두 갈라진 바위틈으로 안내되어 한참 걸어갔고,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자아! 너희들은 이제 지하요새로 안내되었다. 각자 눈을 가린 수건을 벗어라.”

그들은 얼른 수건을 벗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여기저기 기기묘묘한 촛대에 촛불이 휘황찬란하게 타고 있었다. 널따란 방안엔 열두 폭 산수화 병풍이 세워져 있었고, 병풍 앞에는 커다란 상에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다. 장정들이 연신 코를 벌름거리며 군침을 삼키며 눈을 굴렀다.

잠시 황홀한 기분에 휩싸여 있는 그들 앞에 울긋불긋한 장수복을 입은 사나이가 나타났다. 그는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나는 여러분들을 믿습니다. 여러분들이 여기 이 이소룡... 이 주인의 명령, 잘 이행하고 돌아오시오! 그리하면 각기 그 공에 따라 푸짐한 상을 내릴 것이오.”

말을 더듬거리는 양을 보아하니 고구려 사람은 아니었다.
장수는 이소룡에게 무슨 당부의 말을 거듭 하더니 총총히 사라졌다.

“자아! 여러분! 이제 우리끼리 마음 놓고 마십시다.”

쓱 장정들 앞으로 나선 이소룡이 음식을 권했다.
제각기 이소룡에게 굽실거리며 장정들은 기꺼이 술잔을 들었다.

“주인님 은덕으로 잘 놀게 되었습니다.”

“하하하하! 사흘 후면 연개소문이 돌궐로 떠납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오늘 밤은 진탕 마시고 내일은 반드시 떠나야 하오!”

돌궐에 가는 연개소문만 처치하고 오면 후한 상금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장정들은 그동안 궁하던 팔자가 하루아침에 활짝 펴일 것이란 기대에 한껏 부풀어 있었다.

그들이 지하요새를 빠져나갈 무렵, 사당이 있는 산마루에는 방립 쓴 도사가 무엇인가를 계속 찾고 있었다. 사당 바로 앞에서 두 대의 마차를 놓쳤었고, 사당 안도 텅 비어있을 뿐이었다. 굽이굽이 계곡을 흐르는 개울물이 하늘의 달을 띄우고 흘러간다 싶었을 때에 별안간 올빼미 한 마리가 푸드득 날아올라 저 멀리 사라지고 있었다. 그쪽을 바라보던 도사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으음.......’

저 아래 비탈길에서 포장마차가 미끄러지듯 굴러가고 있었다.
도사는 부리나케 달려서 마차가 달리던 계곡 산길에 도착했다. 그런데 누군가 턱하니 앞을 막는 것이었다. 장창을 비껴든 우람한 체격의 사내였다.

“너는 어찌해서 마차의 뒤를 쫓는가!”  

그는 가슴을 쩍 펼치며 위압적으로 소리쳤다.

“갈 길이 바쁘다! 어서 비키지 못할까!”

도사의 호통소리도 만만찮았다.

“무엇이? 네놈의 숨통을 끊어주마!”

사내의 장창이 번개처럼 춤추었다. 그러나 도사의 허리칼이 먼저 사내의 심장을 푹 찔렀다.

“으윽!”

사내의 선혈이 밤하늘에 꽃처럼 뿌려졌다. 이윽고 도사는 사내에게서 칼을 빼냈고, 풀포기에다 피를 닦은 다음 허리에 찼다. 그리고 비호처럼 달려갔다. 잠시 후에, 그의 시야에 마차의 모습이 가물거리고 있었다.

◇◇◇

연개소문이 돌궐로 떠나야 할 시일이 임박해옴에 따라, 연태조 댁에서는 그 차비를 하느라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연태조는 아들이 초행길이란 것이 몹시 마음 쓰였다. 그래서 믿을 수 있는 돌궐 사신 아사나두이와 동행하게 해달라고 영류태왕께 청했다. 그러나 태왕은 안된다는 것이었다. 연개소문이 사명을 완수하고 무사히 귀국할 때까지 돌궐사신 아사나두이를 볼모로 억류해두라는 지엄한 어명을 내려서는 사신을 억류해버린 것이었다. 그래서 연태조의 노력은 허사가 되고 말았다.

연개소문은 무엇보다도 자신이 떠난 후의 집안 일이 불안하였다.
곰곰이 궁리하던 그는 사랑채로 아버지 연태조를 찾아갔다. 마침 연태조는 문덕도사와 담소 중이었다.

“개소문아, 잘 왔다. 거기 앉거라. 마침 네 얘기를 하고 있는 참이었단다.”

“예.”

“너는 이제 대고구려의 사신으로 돌궐을 방문하게 되었구나……. 이 애비 생각으로는 그렇다. 나라의 사신답게 그 절차를 제대로 밟고 싶다. 백 명쯤 시종들을 거느리고 떠나는 게 어떻겠느냐?”

‘번연히 눈을 뜨고도 아내가 바뀌었습니다. 이 판에 그 많은 사람들을? 싫사옵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연개소문은 부친과 스승을 번갈아보았다.

“아버님, 소자의 이번 길은 ……물론 나라의 사신으로 가는 길이긴 하오나, 지금이 비상시국 아닙니까? 그런 만큼 관례적인 사신의 절차를 밟는다면 오히려 소자가 활동하기 불편할 것이라 여겨집니다. 소자는 바우만을 데리고 떠날까 합니다.”

“대감, 이 늙은이의 뜻도 개소문과 같소이다. 그냥 단출한 채비를 하여 보내는 편이 훨씬 좋을 듯도 합니다.”

문덕도사는 연개소문의 속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개소문과 사랑을 속삭이던 아이는 분명 공 대인의 막내딸이었는데 막상 혼사를 치른 아이는 공 대인의 큰딸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하란이 왜 어디로 사라졌는지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음…….”

연태조는 아무래도 불안한 마음이 가시길 않았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만리타국으로 가는 길인데 어찌…….”

“아버님, 염려 놓으십시오. 종자들이 많으면 소자의 신경이 그만큼 더 쓰이게 될 거고, 되려 위험하기도 할 겁니다.”

“어허!”

위험해진다는 말에 연태조는 그만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보다 아버님, 연로하신 아버님만 계시오니 소자의 심정 불안하기 그지없습니다.”

“개소문아,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내가 잘 알고 있느니라. 네가 무사히 다녀올 때까지 이 노부가 대감을 모시고 있을 터이다. 너는 집안일을 과히 걱정 말고 무사히 다녀오기만을 바란다.”

“사부님!”

늙은 스승의 얼굴을 바라보는 연개소문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였다.

이튿날, 연개소문은 국왕을 배알하고 국서와 사신에게 내리는 국왕의 하사품을 받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피로감이 일시에 몰려왔다. 작은사랑에서 한숨 잠을 자고 나서 저녁식사를 끝낸 후, 그는 아내의 방문을 열었다. 그런데 방안에선 아내, 아니 처형 수련이 소리를 죽여 울고 있는 것이었다.

“미안하오……”

연개소문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재빨리 눈물을 닦는 수련의 어깨를 살포시 그러쥐고, 연개소문이 다정하게 속삭였다.

“염려 마오. 처형, 내 속히 다녀오리다. 그동안 늙으신 부모님을 잘 부탁하오.”

그녀는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꿀꺽 삼키며 아우의 지아비를 바라보았다.

“제부님……. 꼭 드려야 할 말이 있사온데……”

그래놓고 그녀는 머리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아니옵니다. 부디 소첩의 생각일랑 마시고…… 귀체 보중하십시오.”

“고맙소. 헌데, 꼭 할 말이 무언지, 지금 말해주지 않겠소? 궁금해서 못 견디겠소.”

“제부님!”

그녀는 와락 제부의 품에 안기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누르며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도대체 할 말이 무언지 궁금하였지만 굳이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결혼이라고 하긴 했는데 아내가 아니라 처형으로서의 예우를 받고 있는 신세 아닌가. 그랬다. 그녀는 한없이 서운했다. 그래서 더더욱 그 어떤 비밀에 대하여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 어떤 비밀……. 그것은 동생 하란이 행방불명된 이유에 대한 것이었고, 만약 그것을 발설한다면 모든 것이 뒤죽박죽 되어버릴 것이란 걸 그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갑자기 솟아오르는 그리움 때문에, 아니 사랑 때문에, 화라락 불타 오를 것만 같았다. 연개소문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에 불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서방님,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순간, 연개소문은 깜짝 놀랐다. 그녀의 얼굴이 흡사 하란의 얼굴로 변하는 것이었다.

“아아 하란…….”

하란, 아니 수련의 몸이 휘청 개소문의 품에 안겨들었다.

“미안하오……”

자기최면. 그랬다. 연개소문은 수련을 화란으로 인식되게 하는 최면술을 자기자신에게 걸은 거였고, 그 주문은  이미 수련의 방문을 열 때부터 작동되고 있었다. 세상에, 십년 만에 돌아온 아들이 또 다시 머나먼 타국으로 떠나면서 부모님께 가짜 며느리를 안겨 드리고 간다는 일은 천하에 몹쓸 짓임이 분명하였다. 게다가 어차피 결혼식을 올린 사이 아닌가.

“다시는 처형이란 말, 안 하리다…….”

“……?”

“사람이 바뀐 것이 너무 놀라워서 그랬던 거요……. 부인…….”

‘사랑하오…….’

연개소문은 아내를 끌어안은 팔에 더더욱 힘을 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입술을 더듬어 그 혀를 깊이 빨아당겼다. 이윽고 아내를 바닥에 눕힌 그는 그녀의 온 몸 구석구석을 삼킬듯이 핥았고, 그리고 이윽고 그녀의 몸 속으로 깊이 들어가 펄떡였다. 그들의 신방은 비로소 첫날밤을 치르느라 밤새 몸살을 앓았다. 

연개소문이 잠에서 깨어나보니 벌써 동창이 훤히 밝아있었다.
아내는 벌써 일어나 머리맡에 앉아서 그가 깰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가 눈을 뜨자마자 방긋 웃음을 보내며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두 뺨이 방긋이 홍조를 띠고 있는 게 무척이나 화사하였다.

“보고싶어 할 것 같소.”

연개소문이 빙그레 웃으며 아내의 얼굴을 들었다.
이상했다. 첫날밤엔 화란이 아니라고 투정을 부렸었는데, 이제보니 아내의 얼굴이 바로 화란의 얼굴인 거였다.

“……”

느닷없는 지아비의 말에 수련의 눈엔 생기가 돌았다.

“소첩, 서방님의 무운장구를 빌겠어요. 부디 무사히 돌아오시어요.”

그녀는 말을 하면서도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어린 티가 나는 아내에게서 기품마저 우러남을 알고서, 연개소문은 적이 안심되었다.
그는 천천히 일어나 방문을 나섰다. 그로부터 그는 무척 바쁜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사랑채에 건너가 부친 연태조와 스승 문덕도사께 작별인사를 드리고, 내방한 환송객들과 일일이 인사를 주고받았다.

떠날 시간이 임박해오고 있었다.

“서방님, 채비를 마쳤사옵니다.”

바우가 두 필의 말을 끌고 나왔다.
전송객들이 대문 밖에까지 따라나와 운집해있었다.
대문을 나서며 연개소문이 뒤를 돌아보았다.
수련이 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연개소문의 눈길을 받자, 금세 웃어보였다. 흡사 하란의 웃음이었다.
그는 대문 밖에서 기다리던 가신들과 수많은 전송객들에게도 일일이 인사를 했다.

“잘들 있으시오. 나의 앞길은 염려하지들 마시오. 나는 물의 정령(精靈)을 타고났다고 하오. 나는 수신(水神)의 가호로 절대로 죽지 않을 것이오. 반드시 살아 돌아와 여러분들을 다시 만나겠소.”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몸을 날려 말등에 올라탔다. 그리곤 채찍을 높이 휘둘러 말의 엉덩이를 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