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

新연개소문전 -춤추어라 청룡도 5(글쓴이-蘭亭주영숙)

해피y 2017. 10. 31. 23:00

 

연개소문 이야기 [34화] 춤추어라 청룡도 5


 

요술쟁이가 댓개비에 댓개비를 잇달아 꽂아대는데, 쟁반은 무겁고 댓개비는 길어져, 댓개비 가운데쯤이 저절로 구부러졌다. 쟁반이 떨어져 부서질 걱정도 안하는지, 요술쟁이는 도무지 돌리기를 그만두지 않았다. 이윽고 댓개비 열댓 개가 이어져, 높이가 지붕 위에까지 다다랐다. 요술쟁이는 이었던 댓개비를 천천히 하나씩 빼어 옆 사람에게 주어서 탁자 위에 갖다놓게 하더니, 댓개비 하나를 담뱃대처럼 입에 물고는 입에 문 댓개비 끝에 높은 댓개비를 세웠다. 그러고 두 팔을 늘어뜨린 채로 뻣뻣이 한참동안 섰다. 그러니 구경꾼 치고 뼈가 저릿저릿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쟁반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실상 바라보기가 너무 아찔해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별안간 바람이 일어 댓개비 가운데쯤이 똑 부러졌다. 구경꾼들이 저마다 놀라서 소리치자, 그러거나 말거나 요술쟁이가 날래게 쫓아가 쟁반을 슬며시 받아서, 다시 허공중에 높이가 백 척이나 되게 던져 놓았다. 던진 그 쟁반을, 사방오방팔방 구경꾼들을 돌아봐주는 여유까지 챙긴 다음에야 편안히 받아 모시는데, 도무지 뽐내는 기색도 없이, 누구도 아랑곳없이 쟁반을 모셨다.


요술쟁이가 벼 너덧 말을 앞에 놓고 두 손으로 다투어 움켜쥐더니, 마치 짐승이 고기를 뜯듯 삽시간에 다 먹어치웠다. 땅바닥이 핥은 듯 했다. 요술쟁이가 딱 버티고 서더니 땅바닥에 겨를 토하자, 겨는 침에 버무려져 덩어리가 되어 나왔다. 겨가 다 나온 뒤에 연기가 입술과 이 사이에 어리어, 손으로 수염을 씻고 물을 찾아 양치질을 했다. 그래도 연기는 멈추질 않았고, 요술쟁이는 너무나 답답한지 가슴을 치고 입술을 쥐어뜯다가 연거푸 물을 몇 사발이나 마셔댔다. 그러자 잠잠해지기는커녕 더욱 기세등등한 연기. 까딱하다간 죽겠다 싶었던지 요술쟁이가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힘 모두 동원하여 토악질을 해댔다. 붉은 불, 활활 타는 불이 입안에 가득했다. 그것을 젓가락으로 집어내니, 반은 숯이요, 반은 아직도 타고 있다.


요술쟁이가 탁자 위에 공작 깃이 꽂힌 금빛호로병과 청동화병을 내어놓았는데, 조금 있다가 보니 금빛호로병이 온데간데없었다. 요술쟁이가 구경꾼 가운데 한 사람을 가리키면서 “저 노야가 감추었어.” 하자, 그 사람이 노하여 얼굴빛이 변해가지고 “어찌 이다지 무례할 수가 있느냐?”고 툴툴거렸다. 요술쟁이가 웃으면서 지껄인다. “노야께서는 거짓말도 잘하시네요. 호로병은 바로 노야의 주머니 속에 있는걸요.” 그 사람이 크게 화를 내며 중얼중얼 욕설도 해대며 자기 옷을 툭툭 털어보였다. 그러자 홀연히 땡그랑 소리가 들리며 그의 품속에서 호로병이 떨어졌다. 시장바닥 사람들이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자, 그 사람 슬며시 다른 사람 등 뒤에 가서 섰다. 너무나 무안하여서.

요술쟁이가 탁자를 깨끗이 닦아내고 도서를 진열하였다.
조그마한 향로에 향불을 피우고 흰 유리접시에 복숭아 세 개를 담아 두었는데, 복숭아가 모두 커다란 대접만하다. 탁자 위에 바둑판과 바둑알을 담은 통을 놓고, 바둑판에 초석을 단정하게 깔았다. 잠깐 휘장으로 탁자를 가렸다가 조금 뒤에 걷으니 웬 사람들이 나타났는데, 구슬 관에 연잎 옷을 입은 자, 신선 옷차림에다 신선 신을 신은 자, 나뭇잎 옷에다 맨발인 자였다. 어떤 자는 마주앉아 바둑을 두고, 어떤 자는 턱을 괴고 앉아 졸고, 모두들 아름다운 수염에 예스러운 얼굴이다.

그런데 접시 복숭아 세 개에 갑자기 가지가 돋고 잎이 붙고 가지 끝에 꽃이 피었는데, 구슬 관을 쓴 자가 복숭아 한 개를 따서 먹은 뒤 그 씨를 땅에 심었고, 나뭇잎 옷에다 맨발인 자가 또 다른 복숭아 한 개를 먹기 시작하여 절반도 못 먹었는데, 아까 구슬 관을 쓴 자가 땅에 심었던 복숭아나무는 벌써 몇 자나 자라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었다.
어느새 세어버렸다, 바둑 두던 자들의 머리가.       
 
요술쟁이가 큰 유리구슬을 탁자 위에 놓고는 시렁을 만들어 세웠다. 그리고는 구경꾼들을 두루 불러 유리구슬거울을 열어 구경시켰다. 여러 층 다락집과 몇 겹 전각은 단청이 곱게 칠해져있고, 관원 한 사람이 손에 파리채를 잡고 난간을 따라 천천히 걸어간다. 아름다운 계집들이 서넛씩 짝을 지어 가는데, 보검을 찼거나 금병을 안았거나, 혹은 ‘봉생’을 불고, 혹은 비단공도 치는데, 구름 닮은 머리와 아름다운 귀고리가 묘하여 그지없이 곱다. 방안에는 백 가지 물건과 수없는 보물들이 쌓여있고, 세상에 부러울 것 하나 없는 사람 같다. 구경꾼들은 혼이 빠져라 들여다보며 부러움을 감추지 못하는데, 보고 있는 것이 거울이라는 사실을 잊어먹고 거울 속에 들어가려고 머리를 들이미는 자도 몇 명이다. ‘미치는 자가 속출하겠군.’ 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요술쟁이가 사람들을 물리쳤다.

“어리석은 사람들아! 거울 속 환상인 걸 뻔히 알면서 무엇들 하는 거요?”

한동안 거울을 못 본다며 거울문을 닫아버리는 요술쟁이.

요술쟁이가 이쪽저쪽을 향해 한가로이 노래 부르며 걸어가다 멈췄다.
그는 또 거울문을 열고는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전각은 적막하고 다락은 황량한데, 아름다운 계집들도 어디로 가고 달랑 한 사람만 침상에 모로 누워 자고 있었다. 옆에는 아무 물건도 없고, 손으로는 귀를 받치고 이마 밑에서 김 같은 것이 연기처럼 떠오르는데, 처음은 가늘고 끝은 둥그렇게 늘어진 젖통 같았다. 무과에 응시했다가 낙방한 귀신 종규(당나라 화가 오도자가 그린 귀신의 이름. 무과에 응시하여 불합격한 귀신이라 하였다)가 누이를 시집보내고 올빼미가 장가드는데, 버들귀신이 앞서고 박쥐가 기를 든 채, 이마에서 나오는 김을 타고 올라가서 안개 속에서 놀고 있다. 잠자던 자는 기지개를 켜면서 깨려다가 또 잠이 드는데, 갑자기 두 다리가 두 수레바퀴로 변하였다. 바퀴살이 아직 만들어지고 있는 과정이어서, 사람들 너나할 것 없이 징그러워 몸서리쳤다. 모두들 거울을 등지고 달아났다.

요술쟁이가 큰 동이 하나를 탁자에 놓고 수건으로 깨끗이 닦았다.
붉은 옷감으로 위를 덮고서 이번에 또 무슨 요술을 시작하려고 드는데, 품속에서 접시 하나가 땅에 떨어지면서 쨍그랑 소리를 내기에 보니 붉은 대추가 흐트러져 있다. 여러 사람들이 모두들 웃자, 요술쟁이도 덩달아 웃었다. 그리고는 그릇과 도구를 주섬주섬 담은 뒤에, 이내 놀음을 끝내었다. 재주가 없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날도 저물고 하여 어차피 끝내려고 했던 참이다. 일부러 파탄함으로써 여러 사람들에게 본래 이 놀음이 거짓이라는 점을 일깨워줄 뿐이다.




온 거리와 화암사 근방은 온통 청등 홍등으로 장식되어 가히 불꽃을 수놓고 있었다. 저자거리에서 갖가지 구경에 매료되어있던 사람들은 날이 저물자 모두들 화암사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화암사]라고 음각된 커다란 돌기둥을 들어서면 널따란 잔디밭이 전개되고, 그 잔디밭이 끝나는 곳에서 다시 계단을 오르면 웅장한 화암사 대웅전이 그 위용을 자랑하고 서 있었다. 


이 법당에는 오늘 공주가 행차하여 불공을 드리기로 되어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나라 안 고승들과 고관대작의 아낙네들이 벌써부터 모여들어 그야말로 야단법석*을 떨었다.
대웅전 앞 넓은 잔디밭은 물론, 좌우의 산비탈에조차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웅성웅성 모여들어 저마다 떠들어댔다.

“오늘 연등놀이에는 공주마마가 참례한다네.”

“고구려 장수가 공주님 앞에서 춤을 춘다던데, 정말인가?”

“보면 알겠지.”

“고승 현장법사가 불공 집례를 한다지?”

구경꾼들이 쑥덕거리는 말들은 일파만파로 퍼지고 있었다.

시간이 임박하자, 가사 장삼을 입은 승려들이 부산하게 오가며 마지막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문득 저쪽 후원에서부터 행렬이 이어졌다. 오늘의 불전을 집례 할 현장법사를 위시하여, 당대의 고승들이 붉은 장삼을 걸치고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모양새였다. 그들이 조용조용 걸음을 놓을 때마다 불공드리는 목탁소리는 은은하게 사람들의 귀를 울리며 밤하늘로 이울었다. 웅성거리던 군중들도 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해지며, 장엄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세상과 절연된 연개소문의 일상은 너무도 단조로웠다. 마치 다람쥐 쳇바퀴 도는 식이었다.
오늘도 어느덧 해가 별전 지붕을 넘고 담을 넘어갔고, 땅거미는 서서히 별전 앞마당을 기어들고 있었다. 연개소문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방안에 무료하게 앉아 점점 가까워지는 땅거미를 보고 있었다.

 
“장군님! 군관들이 왔어요!”

갑자기 동자가 뛰어들며 숨찬 목소리를 냈다.

“뭣이?”

불길한 예감이 그의 머릿속을 누볐다.

‘이제는 죽는구나.........’

그 생각을 하다 보니 연개소문은 오히려 힘이 부쩍 생겼다. 날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면서도 하시라도 몸 단련을 게을리 하지 않은 연개소문이었다.

‘오냐, 죽을 때 죽더라도 끝까지 해보리라. 말과 창만 있다면 그까짓 군관 몇 백이 뭐 두려우랴.’

그의 생각은 아랑곳없이 군관 세 명이 뚜벅뚜벅 걸어와 그의 방문 앞에 섰다.

“공주마마의 특명이오! 당신을 연등놀이에 참석시키라는 분부요!”

“나를? 연등놀이에?”

“그렇소.”

연개소문은 그들 군관의 얼굴을 빤히 응시했다.

‘무슨 곡절이야? 한 번 부딪쳐 보자.......’

연개소문은 느긋하게 말했다.

“잠깐 기다리시오. 이왕 가는 거, 의관을 좀.......”

“빨리 하시오. 시간이 촉박하오.”

“알겠소. 조금만 기다리시오.”

그는 은밀히 결심을 다졌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오늘 탈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절호의 기회다.’

그러나 탈출 준비를 어떻게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의관이라고 해봤자 무장해제당한 조복 차림이다. 자신의 모습을 체경으로 들여다보니 옛날 패기에 넘치던 모습이 간 곳 없었다.

‘백만 대군을 한 손에 쥐고 천하를 호령해보리라고 오랜 각고의 세월을 보냈던 결과가 결국 이 꼴이라니!’

씁쓸했다. 울컥 치미는 분노에 사로잡혔다.

“여보시오! 빨리 나오시오!”

밖에선 군관들의 독촉이 성화였다.

“지금 나가오.”

연개소문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싫으면 그만 두시구려!”

한 군관이 투덜거렸다.

‘다른 복선이 깔린 것은 아니군.’

연개소문은 온 몸에 알 수 없는 힘이 몰려드는 것을 느꼈다.

“자, 어서 갑시다. 너무 오래 지체하게 해서 미안하오.”

그는 비로소 웃으며 그들을 무마했다.

커다란 자물쇠가 벗겨지고 대문이 활짝 열렸다. 연개소문은 가슴이 후련해져서 심호흡을 했다. 그때 저쪽 마구간에 매어있던 그의 애마 비호가 주인을 알아보고 앞발을 높이 들며 흐흥 하고 크게 울었다. 

“오, 비호야! 그동안 잘 있었느냐?”

비호의 고삐를 잡고 있던 마부가 연개소문 앞에 말을 끌고 왔다. 눈물이 쏟아질 듯이 반가웠다. 그는 다정한 손길로 애마의 갈기와 등을 쓸어주었다. 마구간에 매인 채 버림받은 신세로 겨우 목숨을 연명해오던 명마 비호는 너무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연개소문은 재빨리 말 등에 올라탔다. 그러자 대기하고 있던 기병이 그를 포위했다.
연개소문을 포위한 긴 행렬은 삼엄한 위용을 사과하며 서서히 움직였다. 이미 길 양편엔 많은 구경꾼들이 늘어서 있었다.

무심히 길 좌우를 휘둘러보던 연개소문은 별안간 한 곳에다 시선을 고정시켰다. 맞은 편 추녀 밑에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두 사람. 말을 타고 있었다. 분명 남장 여인 계은비와 바우였다. 계은비가 무슨 손짓을 하는데, 그는 너무 반가웠지만 얼른 고개를 돌려버렸다.

‘무사히 살아있었어........탈출계획을 세운 거로구나.’

자칫하면 모종의 그 일이 탄로 날 수도 있겠기에 그는 시치미를 딱 떼고 앞만 보고 말을 몰았다.

연개소문을 포위한 행렬은 인파를 헤치며 화암사로 향해 가고 있었다. 붐비는 인파를 헤치며, 바우와 계은비도 각각 말을 몰아 연개소문에게로 다가가고 있었다.

바우가 잠시 말을 멈추고 연개소문을 들여다보며 눈을 찡긋 하는 동안 그녀는 재빨리 옆을 스치며 저만치 달아났다. 순간, 연개소문은 불끈 주먹을 쥐었다. 그의 주먹 속에 작은 쪽지가 웅크린 것이었다.

옆의 군관이 바우에게 호령하였다.

“총각, 뭐 하는 거야? 뭣 땜에 뛰어 들었어? 엉?”

“헤헤헤, 나리, 고구려 장수 얼굴 좀 자세히 보고 싶어서요....... 가까이서 보니, 아주 잘 생겼습니다요.”

“네 이놈! 듣기 싫다. 무엄하게 행렬에 뛰어든 놈은 용서 못한다.”

군관이 기세등등하여 장창을 들이대자, 연개소문은 말고삐를 높이 치켜들었다. 별안간 말이 앞발을 치켜들고 군관에게 달려들었다.

“이크, 이놈의 말이?”

군관이 쏜살같이 달아나는 순간, 바우도 달아났다.

“비호! 워~ 워~”

연개소문은 비호를 진정시키는 한편 재빨리 쪽지를 읽었다. 쪽지 내용은 물론 탈출계획이었다. 그의 온 몸에 불끈 힘이 솟고 있었다. 가슴이 폭발할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