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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연개소문전 -춤추어라 청룡도 7(글쓴이-蘭亭주영숙)

해피y 2017. 11. 10. 00:02

 

연개소문 이야기 [36화] 춤추어라 청룡도 7


 

“아! 장군님이다!”


“바우, 조심해! 놈들이 눈치 채면 어떡하려고!”

오매불망 그리던 은비와 바우의 목소리였다. 연개소문은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드디어 안착하였다. 어느새 달려왔는지, 바우와 은비가 그를 부축하였다. 배와 허벅지가 밧줄에 쓸려 아파왔지만 그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통쾌한 고통이었다. 오랜만에 두 사람을 번갈아보면서, 그는 가슴이 벅찼다. 그들은 마구 울먹이며 연신 서로를 불렀다.

“장군님!”

“바우야!”

“서방님!”


“오, 낭자!”

잠시 침묵이 흐르던 중에 계은비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연개소문은 가슴이 아렸다.

“낭자!”

그는 자신도 모르게 낭자를 껴안았다.
바우는 못 본 척하고 밧줄을 끌어내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한참만에야 숨이 턱에 차서 밧줄을 모두 끌어내리는 데에 성공하였다. 그토록 튼튼하게 매여졌던 밧줄이 어떻게 내려올 수 있었는지 불가사의한 일이었지만, 그것은 바우만의 비법일 것이었다.


“바우야! 너는 도대체 그걸 어디다 쓸려고 끌어내리는 게냐?”

“아이고 장군님, 이 밧줄을 그냥 내버려두면 장군님이 이리로 도망친 걸 곧 알게 된다고요. 흔적을 없애야 한다고, 노인장이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끌어내리는 겁니다.”

연개소문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물었다.

“그런데, 노인장이라니?”

바우는 밧줄을 둘둘 말아 자기의 말안장 위에 턱 올려놓고 나서야 연개소문을 돌아보며 말했다.

“장군님, 우릴 도와주신 노인장 한 분을 만났습니다. 그 분 아니었으면 와아, 이 일은 어림도 없었을 겁니다.”

“음, 그래? 내 생명의 은인이시구나.”

연개소문이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잠시 어디로 사라졌던 계낭자가 다가왔다. 

“서방님, 어서 말에 오르십시오.”

“어?”

비호였다. 비호가 앞발을 번쩍 들었다 놓으며 “히잉~”  반가움을 표시하는 거였다.  

“이게 어찌 된 일이야? 비호를 어떻게?”

“노인장의 활약 덕분입니다. 모두들 서방님의 검무에 혼을 빼고 있을 때 슬쩍 빼내 온 것이지요.”

“예사노인이 아닌가 보다. 거 참 너무 고맙네. 아무튼 어서 떠나자.”

세 사람은 각자의 말에 올라 재빨리 달리기 시작했다.
무작정 정신없이 산길을 헤매다가 보니 길이 하나 나타났다. 세 사람이 똑 같이 멈추었다.
바우는 신바람이 나서 어깨를 으쓱하고는 나직히 소리쳤다.

“장군님! 바로 이 길입니다. 이 길로 달리다 보면 바로, 노인장이 기다리는 곳에 당도하게 됩니다.”

“오호! 그래, 얼마를 더 가면 되느냐?”

“제가 연습 삼아 여러 번 다녀보았는데요, 아마, 150리(약 60km)는 족히 될 것 같습니다요.”

“흐음, 아주 치밀한 계획을 세웠구나.”

“그럼은입쇼!”

바우는 사뭇 자랑스레 대답했다.
세 사람은 아무런 장애도 없이 무사히 말을 달릴 수가 있었다. 화암사가 있는 동산에서 절벽을 타고 내려온 지점은 원래 성 밖에 속해있는 곳이었다. 그러므로 연개소문이 절벽 밖으로 뛰어내렸으리라곤 생각조차 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성 안에 있다면 4대문만 폐쇄하면 빠져나갈 수가 없는 것이기도 했다. 연개소문이 행방불명된 상황은 잠시 귀신이 곡할 노릇이 될 게 틀림없었다.
탈출에 성공한 것은 순전히 노인의 묘책 덕분이었는데, 노인은 성의 지리를 환히 꿰뚫고 있었다.

길잡이 바우를 선두로 연개소문과 계 낭자는 팔이 얼얼하도록 말에 채찍을 가하며 달렸다. 밤새껏 달리다 보니 어느덧 먼동이 터오기 시작했다.

멀리 맞은편에 바라다 보이는 산마루에서 붉은 해가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세 사람은 마치 동녘에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러 가는 듯이 땀을 뻘뻘 흘리며 내달았다. 산과 들이 새로운 초록색으로 뒤덮이는 싱그러운 계절이긴 했지만, 도망치는 그들에겐 그런 풍경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드디어 산마루의 초가에 이르렀고, 노인이 반가이 맞았다.
바우는 부랴부랴 말들을 마구간에 들인 후에 여물을 디밀어 넣어주었고, 노인은 미리 준비한 아침식사를 내왔다.

“이번에 노인장께서 나를 구해주신 큰 은공 참으로 감사하오.”


“장군님, 뵈올 면목이 없소이다. 노부는 본시 안시성에 출사하던 군관으로써 성주의 비위에 거슬림을 받아 추방된 몸이옵니다.”


“추방이라구요? 허허, 나랑 비슷한 처지였구려.”


“아니, 천만에 말씀을.........”


“나야말로 돌궐사신이란 명목으로 추방되었던 신세 아니었겠소. 그런데 내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내가 왜 추방되었는지를 이해할 수가 없소....... 그렇다고 고국이 미워지는 것도 아니고........ 아마 노인장도 나랑 비슷한 심정 아닌가 싶구려.”


노인이 왈칵 눈물을 쏟으며 연개소문의 손을 덥석 잡았다.
“장군........ 이 노부, 오직 고국을 그리는 정으로 오늘까지 목숨을 부지했을 뿐이옵니다.”
“허허, 나 역시 마찬가지라오.”
연개소문은 글썽거리는 눈매로 노인의 눈을 보았다. 해맑았다.
60대 노인으로서 당나라의 물정이며 지리에 능통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노인장, 함자는 어떻게 되시온지?”


“아이구, 그냥 양가라고 불러주시오.”


갑자기 계은비와 바우가 놀란 토끼눈이 되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은 아직 노인의 이름을 물어볼 생각조차 안 했다는 것이 몹시 부끄러웠다.


“양 노인, 과거를 다 잊으시고, 고국에 돌아가서 우리 함께 살도록 합시다.”


“예, 우리 동부 총관부에는 방도 넉넉합니다.”


바우가 거들었다.


“예 할아버지, 얼른 같이 간다고 대답하세요. 제가 할아버지를 모시겠어요.”


은비 낭자도 거들었다.
양 노인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울먹였다.


“꿈만 같습니다. 이 은혜 망극하옵니다.”


연개소문은 흡족하였다. 노인이 아직 주인을 제대로 만나지 못해서 저렇지, 안정만 되면 쓸 만한 인재가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어느새 아침이 지나고 있었다.


“장군님, 아직도 근 백여 리를 더 가야 합니다. 산간지대만 죽 달려야만 고구려 접경인 중립지대에 이를 수가 있습니다. 곧 놈들이 추격해올 것 같은데, 그 전에 어서 떠나야 합니다.”
양노인의 말에 연개소문은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렇지요. 어서 떠날 준비를 합시다.”


그들이 행장을 수습하려던 찰나였다.
서쪽 산기슭에서 당나라 기병들의 함성이 와아~ 들려왔다.


“어느새 추격군이........?”


“예에, 놈들은 아마도 우리의 탈출로를 차단하려는 속셈일 것입니다.”


연개소문이 깜짝 놀라자 노인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순간, 긴장이 감돌았다.
잠시 후, 연개소문이 침착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놈들이 우리들의 탈출로를 차단한다....... 거, 큰일 아니오?”


“그렇긴 합니다만, 우리가 있는 이 지형은 함정(陷穽)이 있는 험지입니다. 게다가 이 노부 외는 이곳을 아는 사람이 좀처럼 드물지요.”


“노인장의 말씀은 잘 알겠소. 이 지형이 노인께서 여러 차례 당나라에 드나드실 때에 익히 아시는 길이라 하지만, 결국 우리들은 이곳에 오래 머물 수 없는 사정 아니겠소. 놈들에게 통로가 차단되기 전에 얼른 탈출해야겠소.”


노인도 당황한 빛을 감추지 못하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노인장께선 이 지방의 지형을 잘 아시니 좀 묻겠소.”


“말씀하십시오.”


“우리가 있는 이곳에서 남쪽에 있는 저 산은 이름이 무엇이오?”


“아, 저 산....... 괘산이라 하옵니다. 바로 저 산을 끼고 남쪽으로 직행하면 요하를 건너는 나루터가 있지요.”


“알겠소. 그렇다면 우릴 추격하는 당나라군은 우리가 요하를 건너지 못하게 하려고 그 쪽으로 진행하는 것이겠소.”


“그렇습니다. 그러니 걱정이지요.”


연개소문은 즉시 바우에게 분부하였다.


“바우, 너는 노인장의 향도(嚮導)를 받아 계 낭자와 같이 즉각 이곳을 떠나라. 요하를 건너갈 채비를 하라!”


“예에!”


바우는 부산스레 떠날 준비를 했으나, 계 낭자는 좀처럼 움직일 생각을 안 했다.


“서방님을 남겨놓고 어떻게 우리들만 떠나라 하옵니까?”


“허허, 낭자는 그런 걱정은 아예 마오. 내 말대로 움직여야만 요하를 무사히 건너서 나랑 같이 만날 수 있소.”


그들의 떠나는 뒷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연개소문은 다시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랫목에 걸려 있는 헌옷 세 벌을 꾸려들고 마구간으로 갔고, 애마 비호를 끌어내어 잽싸게 올라탔다.


잠시 후, 그는 괘산 마루턱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았다.     
해는 하늘 가운데에 떠있었고, 서녘의 기슭에는 추격해오는 당나라군이 괘산을 포위할 태세로 함성을 올리며 달려들고 있었다.
동녘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찌된 셈인지 가시나무와 칡덩굴이 무성하게 자라나서 서로 뒤엉킨 채로 빽빽한 울타리를 형성하고 있었다.


‘흐음, 이 국경지대를 봉쇄한다, 그 뜻이렷다?’


그는 요하를 향해 흐르는 계곡으로 비호를 끌고 들어갔다.


“비호야, 너는 여기서 내가 올 때까지 꼼짝 말고 기다려라!”


비호가 그 말을 알아들었다. 비호는 대번에 무릎을 꺾고 앉으며 머리를 주억거렸다.

연개소문은 괘산 봉우리로 뛰어 올랐다. 가지고 왔던 헌옷으로 허수아비 세 개를 만들어서 바위틈에 세워놓고 적당한 빈터에 생솔 가지를 툭툭 꺾어 모아 불을 지폈다.
괘산 마루에서는 검은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당나라군 추격대장 고태위(高太尉)가 옆의 조장구(趙張邱)에게 말했다.


“저것은 도망친 연개소문 아닌가?”


“맞습니다. 연개소문도 굶주림은 참을 수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저렇게 밥을 짓고 있는 것을 보니......”


“그래, 일행이 네 명이라 했는데 놈들이 다 있는지 살펴보시오!”


조장구가 괘산 마루를 한참 살피다가 말했다.


“장군님! 맞습니다. 세 사람은 밥 짓는 옆에 앉아있고, 그 옆엔 한 사람이 서성대고 있습니다. 분명 네 명이옵니다.”


“호오, 그래? 내가 보기에도 그렇다. 그럼 연개소문 일당이 분명할 터....... 다행히도 우리 군에서 만들어둔 함정에 들었으니, 이제 저놈들은 독안에 든 쥐새끼들이야! 으흐흐흐!”


“그렇습니다. 나가긴 쉽고 물러서긴 어려운 형세에 들었으니 이제는 이 괘산만 완전히 포위하면 그만인 것 아니겠습니까?”


고태위가 머리를 끄덕였다.


‘흐으~ 연개소문을 생포했구나.’


그는 싱긋이 웃으며 다시 괘산의 산마루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야에 연개소문과 세 명의 초라한 모습이 어렴풋이 들어왔다.
잠시 후, 그는 조장구를 불렀다.


“장군!”


“예에!”


“연개소문 일당이 괘산에 있는 이상 굳이 요하 나루터까지 군사들을 투입할 필요는 없을성싶소. 오직 괘산만을 총력을 기울여 포위하면 될 것 같소.”


“예에, 분부대로 거행하겠사옵니다.”


조장구는 고태위의 명령을 받아 하달하기 시작했다.


괘산을 끼고 남쪽 지름길로 빠져나가 요하나루터를 봉쇄하려던 기병 5백기를 불러들여 괘산을 빈틈없이 포위했다. 그다음 고태위는 괘산 꼭대기를 향한 총공격령을 내렸다. 3천에 가까운 당나라군은 기고만장한 함성을 울리며 산마루를 향해 진격해가고 있었다.

산상에서 당나라군의 동태를 주시하던 연개소문은 빙그레 웃음을 깨물며 중얼거렸다.


“이놈들아, 나를 험지에 몰아넣고 쾌재를 부르며 들까불고 있는 게야?....... 흐흐흐흐, 어리석은 놈들!”

동시에 그는 큰 돌을 굴러 내리기 시작했다. 산 위로 개미떼처럼 기어오르던 적군은 돌에 맞자 즉사하는 자가 부지기수였다. 그러나 워낙 많은 적군은 쉴 새 없이 산으로, 산으로, 기어오르고 있었다. 어느새 한 마장* 거리에까지 육박해왔다.

대화는 할 수 있어도 좀처럼 넘을 수 없는 계곡에서 당나라군은 모두 멍청히 산마루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야이놈! 연개소문아! 너는 이제 우리가 파 놓은 함정에 걸려들었다. 더 이상 발악하지 말고 순순히 항복하라!”

연개소문은 등에 매고 있던 대궁에 살을 먹이며 생각했다.

‘거리가 멀어 적중되기 어렵겠지만, 일단 시범을 보이자.’

그리고 그는 목청을 돋우었다.

“야! 이 쓸개 빠진 당나라 장수놈아! 헛수고 그만 하고 어서 물러가라!”

순간, 시위에서 풀려난 살이 푸르릉 소리를 내며 날아갔고, 고태위의 가슴팍에 정확하게 꽂혔다.

“으아아아!”


고태위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말에서 떨어져 벼랑 아래로 굴렀다.
뜻밖의 역습으로 선봉 장수를 잃은 적군들은 일시에 사기가 떨어졌다.
연개소문은 대궁을 다시 어깨에 매고서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 이놈들아! 내 아무리 네놈들이 만든 함정에 들었다고, 네까짓 놈들의 포로가 될 줄 알았더냐? 목숨이 아깝거든 썩 물러가라!”

그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온 산을 흔들며 울려 퍼졌다.
그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다시 궁리했다.

‘아무리 비좁고 험악한 산길이라 하지만 지금쯤이면 능히 30여리는 달렸을 터. 요하강의 나루터가 바로 눈앞에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