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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 이야기 [38화] 모략과 책략 2(글쓴이-蘭亭주영숙)

해피y 2017. 11. 13. 03:39
 

 

연개소문 이야기 [38화] 모략과 책략 2

세상이야 어찌 돌아가건, 나라야 어찌 되건 말건, 저들은 자기 신상과 일족의 번영만을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러한 군상들의 흥청거리는 놀잇배가 날이 갈수록 패강 위에 늘어만 가는 요즘이었다.

그동안 당나라와의 친선책을 주장해온 영류왕은 간사한 무리들의 아부와 또 그 일당의 부화내동으로 , 성품은 거칠어지고 호화 방종한 습성은 날로 극심해가고 있었다.
영류왕은 매일같이 구제궁 앞 패강에 화려한 용봉선(龍鳳船)을 띄우고 술과 계집으로 세월을 보내는 것이 일과였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법이라고, 국왕과 3공의 막리지와 중신들이 이처럼 방종하니, 자연히 나라 안 관헌은 물론 일반 백성들까지도 호사 방종을 일삼게 되는 경박한 풍조가 세상을 온통 흐리게 하고 있었다.


간신들은 칡넝쿨 엉키듯 엉켜서 제 세상 만난 듯 득세하였고, 북공파의 연태조를 비롯한 기백 있는 충신들은 서리맞은 풀잎처럼 시들어 맥을 못 추는 형편이 되고 말았다.

소익환과 이대룡의 뱃놀이는 땅거미가 질 무렵에야 끝이 났다.

“자아 대감, 오늘 참 잘 놀았소이다. 여러 모로 감사하오.”

“원 천만에. 별 말씀을 다하시오. 살펴 가시오.”

이대룡은 소익환과 헤어져 공관으로 돌아오면서 깊은 생각에 사로잡혔다.


‘문덕도사라……. 그자가 정말 왕년의 을지문덕인지 뭔지 하는 그 자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럴수록……. 이 늙은이를 내일은 반드시 처단해야겠어. 그래야 내가 제대로 활동을 한단 말씀이야. 휴우~ 근데 요즈음은 고국에서 통 소식이 오지 않으니 갑갑하군. 연개소문의 그 뒤 행적이 궁금한데 말씀이야. 신출귀몰? 혹시 귀신처럼 빠져나간 거 아냐? 만약 그렇다면 끝장인데……..아이구 어쨌든, 내일은 우선 노인인지 괴물인지 이놈부터 처치하고 보자.’

이대룡은 소익환이 보내준 고구려 군관 30여명과 자신의 심복 등을 총동원하여 패강 변에 있는 누각을 포위하도록 했다.

“너희들은 각별히 조심하도록 하라! 오늘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이 늙은이를 놓쳐서는 아니 되느니라. 알겠느냐?”

“녜이!”

“내 너희들이 그 자를 잡는다면 후한 상을 내리리라!”

어느덧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깔리는 저녁. 그들은 와르르 패강 변으로 달려갔다.
괴노인이 있다는 누각을 포위한 것이었다. 노인이 있다는 누각은 한 면만 강물에 접해있었고, 3면은 육지에 놓여있었다. 이대룡은 이 3면에다 30여명의 군사들을 철통같이 포위, 매복시켜 놓았다.

3명의 군관이 누각의 정문을 두드렸다.

“여보시오! 주인장 계시오?”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누각 안은 조용하기만 했다.

“내 오늘 아침에도 노인이 이 누각 안에 있는 걸 확인했는데.......”

“누가 아니라나? 나도 분명히 봤어!”

두 군관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한 군관이 아주 목청이 터져라  하고 고함을 질렀다.

“여보쇼, 주인! 주인! 주인장!”

그래도 아무런 응답이 없더니 한참만에야 누각 안에서 등잔불이 켜지는 것이었다.
어두운 누각 안이 훤히 밝아지더니 흰옷을 입은 노인의 모습이 선명히 드러났다. 괴노인이 틀림없었다.

“저기 있다!”

군관들은 소리는 쳤지만 이상하게도 그 자리에서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누각 안에서는 카랑카랑한 노인의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이 밤에 누가 이리 소란하냐!”

“잔소리 말고 빨리 나와서 오랏줄을 받으라!”

“으하하하하!……”

노인의 웃음소리가 조용한 밤공기를 흔들며 음산하게 울려 퍼졌다.

“이 늙은 놈아! 어서 나와 오라를 받지 못할까!”

그들은 누구 하나 발을 떼지는 못한 채로, 서로의 눈치만 살피면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있는 것이었다. 그때 안에서 노인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야이, 한심한 당나라 개들아! 나는 네놈들 꼴이 보기 싫어 수중고혼이나 될란다!”

곧이어 풍덩! 하는 소리와 함께 노인의 모습이 사라져버렸다.

“잡아라!”

그제야 군관들의 발이 떨어졌다. 군관들은 후닥닥 강변으로 뛰어내렸다. 누각의 좌우에 매복하고 있던 군사들도 모두 강변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작은 배를 집어타고 부랴부랴 강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노인이 다시 물 위로 떠오르기만을 기다린 것이었다. 그러나 노인을 집어삼킨 물결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잠잠히 흐르고만 있을 뿐이었다.

“이 늙은이가 아주 빠져죽은 거야?”

“글쎄? 물귀신이 된 모양인가?”

그들은 그래도 혹 몰라서 오랜 시간을 기다렸으나 허사였다.


“그 늙은이, 처치했느냐?”

허탕치고 돌아온 그들에게 이대룡이 성급하게 물었다.

“예이! 그 늙은이가 창문으로 뛰어내려 투신했사옵니다.”

“뭣이?……. 그래, 시체는 찾았느냐?”

“배를 띄워서 긴 시간을 기다렸지만 끝내 떠오르질 않았습니다.”

“음……. 정말 죽은 게야? 그런데 시체가 떠오르질 않았다 그 말이지?”

“강심의 물살이 세다는 것을 감안하면, 아마도 떠내려갔을 것 같습니다.”

“허어, 그렇겠군.”

당나라 사신 이대룡에게 차출되어갔던 군사들로부터 문덕도사의 투신자살 소식을 들은 소익환은 하늘에라도 오를 듯 마음이 가뿐해졌다.

‘됐어! 연개소문에다 그 스승마저 처치했으니 이젠 내 세상이야. 하루 빨리 동부 총관부를 접수해야겠어.’

 

동부 총관부의 세습 문제는 커다란 정치문제가 되어있었다.
영류태왕은 연태조의 병이 회복될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부터는 그 처리 문제에 골치를 앓고 있었다. 동부 총관부의 세력을 끊기 위해 연태조의 아들 연개소문을 돌궐 땅에 보냈던 것이지만, 가서 죽어주기를 바랬는데, 죽기는커녕 당나라에 가 있으니, 왕으로서는 여간 껄끄러운 문제가 아니었다.
아무리 연태조가 밉더라도, 아무리 연개소문이 밉더라도, 도리가 아닌 것이었다. 일반 백성에게도 가율이 있는 차에, 하물며 국가의 커다란 세습 작위문제를 법도에 어긋나게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태왕은 이 문제를 두고 하문하기 위해 소익환 총관을 불렀다. 

 
“경은 연개소문의 일이 어찌 되었는지 알아보았소?”

“성상마마, 황공하여이다. 소신이 알기에는 연개소문은 당나라에 연금상태로 있어서 영구히 돌아오지 못할 것으로 아옵니다.”

“호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 와 있는 당나라 사신을 통하여 방면해줄 것을 교섭함이 어떠하오?”

“절대로 불가한 줄오 아뢰오~”

소익환은 풀쩍 놀라 머리를 조아렸다.

“성상마마, 황공하오나……. 연개소문은 방면되어 돌아온다 하옵더라도 자격 미달이옵니다. 폐하의 지엄하신 친당정책을 어기고 당나라군과 싸웠으니 아무래도 총관 습작은 어려울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영류태왕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였다. 연개소문의 동부총관 습작은 국왕으로서도 결코 달가운 일이 못되었다. 그렇지만 나라에는 국법이 있고 체통이 있는 법. 신하의 생사귀추(生死歸趨)도 모르는 채 그대로 마냥 내버려 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동부 총관은 대대로 나라의 중신으로서 그 뒤를 이어온 집안인 즉, 소홀히 다룰 수는 없는 일이오. 허니, 병중에 있는 연태조의 의향을 묻고, 연개소문의 소식 또한 하루바삐 소상히 알아보도록 시달하오.”

“성상마마, 연태조 대인은 지금 생사의 기로에서 방황하와, 의식불명이옵니다. 그러하와서 명석한 판단을 기대하기 어렵사옵고, 설령 연개소문이 돌아온다 하옵더라도 온 부중의 백성들이 그 포악한 성정을 기피하여 모두들 총관 습작을 반대할 것이옵니다. 이 점 널리 통촉하옵소서.”

소익환은 간절한 목소리로 상주하였다.

“흐음…….”

영류태왕으로선 난처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연태조가 나라의 중신이라 어떻게 조처해야 할지 선뜻 묘안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었다.

“나라에는 종묘사직을 다스리는 대법이 있는 즉, 또 한 번 동부 총관부에 통고를 하도록 하시오. 연개소문이 돌아오지 못할 경우, 부득불 동부총관의 습작권을 취소하고 그 권한을 나라에 바치도록 하오.”

“성상마마, 황공하오나 습작에 관한 대권을 행사하옵심에는 3공의 합의가 있어야 하오니 막리지 민의겸 대감께 친히 분부하심이 가할 줄 아옵니다.”

“옳거니!”

국왕은 어수를 들어 무릎을 쳤다.

“짐은 곧 막리지 민의겸에게 분부를 내리도록 할 것이오.”


구제궁 대조전을 물러나오는 소익환의 발걸음은 날듯이 가벼웠다.
그는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왕의 분부를 막리지 민의겸에게 돌린 것은 생각할수록 잘한 일이었다. 차기 동부총관은 자기에게 맡겨달라고 하는 자기추천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었다.

소익환은 궐문을 나서자마자 급히 말을 몰아 민의겸의 저택을 향해 달렸다.
마침 사랑방에 앉아있던 민의겸이 활짝 웃으며 소익환을 반겼다.

“그래,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었기에 내 집까지 다 오셨소?”

“하하, 지나가던 길에 불현 듯 민 대감이 뵙고 싶었다오. 허허허허!” 

“그래요? 이거 정말 고마운 일이외다.”

“하하하하…… 실은 동부 총관부에 관한 일로 좀 상의할 일이 있어서 급히 좀 온 것이옵니다.”

“아하! 알겠소이다.”

“알아보니 말이지요. 연개소문은 당나라에서 돌아올 가망이 전혀 없는 것 같더이다. 병중인 연태조야 이미 죽은 몸이나 마찬가지니……. 머잖아 동부총관의 습작이나 대위 문제가 불거질 터인데…….”

“그렇지요. 설사 연개소문이 살아온다 하더라도 그를 동부 총관으로 앉히면 이만저만 불편할 게 아니지 않겠소이까?”

“그러니 이리 찾아온 거 아니겠습니까? 내 오늘 성상마마를 배알하고 오는 길입니다만, 성상께오서도 소신의 의견을 가납하시고 그 문제를 민 대감과 상의하라고 하셨소이다. 대감의 역할이 무척 중요하니까요.”

“알겠소이다. 내야 소 대감이 좋다면 그 길을 갈 뿐이오. 그럼 우선 대감의 의견을 먼저 들어봅시다.”

“이제 우리 앞에는 오직 동부 총관 하나 남았습니다. 그러하니, 이 기회에 동부총관부를 우리 수중에 넣자, 그 말이외다.”

“음……. 우리 손에 넣자…… 어떻게 말이오니까?”

“만에 하나, 연개소문이 살아 돌아온다, 그런 불상사가 생기더라도, 놈이 발붙일 곳이 없도록 하자는 거외다. 우리가 먼저 선수를 쳐서 지반을 확고히 해두지 않으면, 오히려 우리가 큰 화를 입지 않겠소?”

“지당하신 말씀이오.”

“내 성상마마께 언질은 드려두었소. 연개소문은 그 포악한 성질로 인해 붕신들은 물론 궁중 · 부중 백성에 이르기까지 총관 습작을 반대한다고 상주한 것입니다. 그러하니, 성상께서 대감께 하문하시면 적절히 알아서 상주하시는 게 좋겠소이다. 우리, 더불어서 연개소문을 비롯한 동부총관부를 완전히 무너뜨릴 수 있도록 힘을 모읍시다.”

“잘 알겠습니다. 지금이 가장 절호의 기회이지요.”

“그럼요, 대감……”

머리를 맞대고 앉은 그들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모략과 책략에 부심하고 있었다. 그 사이 어느덧 해는 서산에서 기웃거렸다.  

 

◇◇◇

수련은 오늘도 안채 작은 방에 앉아 방문을 열어놓은 채로 상념에 젖어있었다.
얼떨결에 동생 하란의 대리가 되어 시집왔지만 엄연한 연개소문의 아내인 그녀였다. 그나저나 시집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사랑하는 지아비를 머나먼 북국 돌궐로 떠나보내는 아픔을 경험했고, 또 1년도 되지 않아 시어머니의 상(喪)을 당하는 바람에 큰 집안의 크고 작은 살림살이를 혼자 감당해야 하는 벅찬 나날을 보내왔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시어머니의 삼년상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번엔 시아버지 연태조가 덜컥 자리에 누워 의식을 잃고 사경을 헤매고 있는 것이었다.  

 
연태조가 이처럼 앓아눕게 되자, 총관부에서는 실제로 일을 돌볼 사람이 없게 되었다.
오직 남아있는 사람이라곤 그녀 한 사람 뿐이었다. 시골 부호의 집 딸로 세상 물정을 모르고 자라난 그녀가, 장안의 권문세도가 집안, 그것도 평탄한 때가 아니라, 회오리바람이 들이치는 속에서 온 집안을 꾸려가기란 여간 힘겨운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하는 수 없이 연태조의 일족인 연비를 불렀다. 그리하여 연비가 산성을 비우고 와서 총관부 일을 돌보며 연개소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었다.


게다가 나라에서는 연태조의 후임 습작을 위해 연개소문의 생사를 빨리 확인하라고 독촉이 빗발치듯했다. 더구나 동부 총관부를 폐쇄한다느니, 다른 사람으로 대위시킨다느니 하는 정신 사나운 소문만 무성하여, 그녀는 날마다 불안하고 초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