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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 이야기 [43화] 모략과 책략 7(글쓴이-蘭亭주영숙)

해피y 2017. 12. 10. 22:14

 


연개소문 이야기 [43화] 모략과 책략 7

 





다음날 아침, 연개소문은 일찌감치 조복을 단정히 입었다.

그리고 빈틈없는 외눈에 외팔이가 된 채 구제궁으로 말을 달렸다.

그는 떠나기에 앞서 자기의 행보를 소익환이 알아차리도록 바우에게 일러놓았다.


그가 구제궁 대조전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어림군의 소익환과 막리지 민의겸 이하

중신들이 줄줄이 나와 있었다. 연개소문은 그들에게 일일이 인사하며 부친의 장례에

협력해주셔서 고맙다고 치하했다.

그러면서 불구가 되어버린 자신을 앞으로도 계속 가상히 여겨주실 것을 부탁하며 굽실거렸다.


이윽고 영류태왕께서 입장하시는데, '영류'라는 이름 꽃 영(榮), 머무를 류(留)에서 알 수 있듯이,

수많은 궁녀들에게 둘러싸인 채 황문시랑의 안내를 받으며 등장하였다.
대조전에 모인 조신들이 일제히 부복 배례하고, 궁녀들이 한 발씩 물러나 시립하자,

이윽고 영류태왕이 천천히 옥좌에 앉으며 그윽한 눈으로 전내를 둘러보았다.


연개소문은 가장 끄트머리 구석진 곳에 부복하고 있었다.   
태왕의 눈이 연개소문에게 멈추더니, 그 입술에서는 그럴 수 없이 부드러운 옥음이 굴러 나왔다.


“연개소문은 이리 가까이 오라!”


황문시랑이 소리 높이 외쳤다.


“연개소문은 계하에 대령하랍시는 분부이시오!”


그제야 외눈 외팔 연개소문은 주춤주춤 옥좌 앞으로 다가가 부복 배례하였다.


“신 연개소문, 성상마마께 문후 아뢰옵니다.”


“짐의 충신 동부 대인 연태조의 죽음은 짐의 무한한 슬픔이다. 경 또한 상심함이 큰 줄로 아노라.”


“성상 마마! 아비 잃은 소신의 외로운 처지를 긍휼히 여기시옵소서!”


연개소문은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는데, 대조전 깨끗한 바닥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영류태왕도 그러한 연개소문을 내려다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경은 그만 눈물을 거두라!”


“황공하옵니다, 성상마마!……. 소신으로 하여금 아비의 유업을 이어받아 가업을 유지토록

해주시옵기를 삼가 앙망하나이다.”


그러자 태왕은 묵묵부답이었다.


‘저 정도의 위인이니 나의 대권에 도전할 능력이 없음은 틀림없을 터…….’


영류태왕은 명분을 세워 국왕으로서의 은총을 내리는 것도 합당하리라 여겼다.

 
“동부총관 연태조는 이미 유명을 달리 하였으니,

조속히 그 후임을 세워 국가의 일이 촌각이라도

해이됨이 없도록 하여야 할 것인즉, 

짐은 모든 국가의 공직이 작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세습 경영되어온 유구한 전통을 본받아 연개소문으로 하여금

그 아비의 작위를 계승토록 동부 총관의

습작을 윤허하노라. 경들은 이를 받들어 어김없이 시행되도록 하라!”


“황공하옵나이다!”


“막리지는 들으오. 경은 곧 이를 시행함에 이의는 없는가?”


“성상마마의 분부, 지당하신 줄로 아룁나이다.”   


“겅들은 모두 다른 뜻이 없는가?”


“삼가, 성상마마의 성지를 받들겠나이다.”


영류태왕은 다시 연개소문에게 분부했다.


“경은 지금부터 더욱 짐에게 충성하여 종묘사직을 튼튼히 해주기 바라오!”


“황공하옵신 성지를 받들어 더욱 분골쇄신, 성상마마께 충성을 바치겠나이다.”


“갸륵하도다.”


영류태왕은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흡족한 얼굴로 연개소문을 내려다보았다.
전내의 누구 한 사람 군입을 여는 신하가 없었다.


집에 돌아온 연개소문은 총관부 외실에 나가서 연비 · 오 낭장과 여러 참모 · 군관들을 모았다.

총관부 살림의 현황을 들은 후에 앞으로의 계획을 시달하고 잔무를 대강 처리했다.
정식으로 동부총관에 부임한 그는, 모든 관하 산성에 시달하여 현황을 알리도록 하는 한편

모든 산성의 책임자를 소환했다. 얼마동안 공식적인 사무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

관하 모든 지역 산성의 현황을 자세히 알고 난 연개소문은, 그 뒤 일체의 외출을 삼갔다.

그리고 총관부 내실 뒤에 따로 초당을 짓고 그곳에서 소일하였다.
초당은 내실 뒤에 있기에 극히 비밀스런 공간이었다. 이 초당에서 어떠한 일을 꾸미더라도

세상 사람들은 일체 모르도록 장치되어있는 것이었다.
바로 이 초당에 연개소문의 스승 문덕도사가 기거하고 있었다.

연개소문은 스승과 함께 매일 나라 안 사정을 검토하고 나아갈 길을 모색하며 무엇인가를

계획하고 있었다.그는 여러 산성에서 쓸 만한 군관이면 모두 은밀히 불러들여 무엇인가를

지시하기도 하고, 가끔 총관부의 연병장에 나가서는 가려 뽑은 군사들의 훈련을 독려하기도 했다.



◇◇◇



흐르는 세월도 아랑곳없었다.
그는 여전히 후원 초당에 파묻혀 강태공처럼 세월을 낚고 있었다.

그 낚싯줄에 마침 걸려든 게 있었다. 당나라 사신 이대룡이 영류태왕의 재가를 얻어

전국 순유의 길에 나선다는 정보였다. 그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대룡은 평양성을 떠나 수구성을 거쳐 안시성·백암성·개모성·신성·부여성 등 주로

요동지방을 순유한다는 것이었다. 연개소문은 그가 무엇 때문에 별안간 전국 순유의 길을

애써 떠나는지 그 이유를 간파하였다.


늦은 가을이었다.


‘놈을 죽일 절호의 기회가 왔군.’


연개소문은 그동안 훈련시킨 날쌘 군관들을 다시 간추렸다.

이대룡이 평양성을 떠나기 하루 전에 평양성 북문 밖 산허리에 매복, 대기하도록

조처한 것이었다. 


고구려의 국왕으로부터 은자를 하사받고 많은 편의를 제공받는 은혜까지 입은 이대룡.

그는 수나라의 포로로 와있는 자기네 동포인 한인(漢人)들을 위무한다는

구실을 앞세우고 평양성을 떠났다.


연개소문은 정상인의 한 평민으로 변장하고서 말을 달려 북문을 나섰다.
이대룡의 일행이 어림군 군관들의 호위를 받으며 저만치 앞에서 가고 있는 게 보였다.
연개소문은 그들의 뒤를 몰래 밟는 한편 날이 어둡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대룡을 호위하고 가는 자들은 모두 어림군의 군관들이었다.

30여명의 적지 않은 이대룡 일행이 부지런히 발길을 옮기는 동안, 어느덧 날이 저물기 시작했다.
앞에는 험준한 고갯길이 울창한 나무숲 사이로 가파르게 뚫려있었다.

연개소문이 이미 복병을 준비해놓은 협곡이었다. 그는 옆 산의 계곡을 따라 지름길로 말을 달렸다.

이대룡 일행보다 앞서 가 있으려는 속셈에서였다. 


뛰는 말에다 채찍을 가하며, 그는 기어이 이대룡 일행을 앞질러 산꼭대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부하들이 기다리고 있는 협곡을 찾아들었다.

“자, 이제 때는 왔다. 너희들은 각기 준비한 수건으로 머리를 동여매도록 하라.

당나라 사신 일행이 고개로 올라오기를 기다려라. 한 순간에, 일제히 고갯마루를 뛰어나가야 한다.

이제부터 우리는 산적이다! 알겠느냐?”

연개소문의 목소리가 팽팽한 긴장감에 퉁겨질 듯하였다.

“예에!”

하늘을 뒤덮은 울창한 송림이 들어찬 계곡은 꽤나 어두웠다.
그는 협곡 아래의 길 쪽으로 귀를 기울였다.


        


‘흐흐~ 어리석은 고건무…….’

이대룡은 가마 안에 느긋이 앉아서는 감히 고구려 영류태왕의 이름을 씹어대면서,

숱도 적은 수염을 내리쓸고 있었다. 그의 임무는 요동지방 중요한 성들의 현황,

그리고 산세(山勢)와 지리를 소상히 알아내라는 본국의 비밀지령을 수행하는 일이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고구려 국왕은 그에게 은자니 군사들이니 챙겨준 판이라,

그는 생각할수록  웃음이 삐져나왔다. 뿐만이랴.

어디를 가든 비상시에 쓰라는 의미의 국왕 친서까지 몸에 지녔으니,

그 무엇도 두려울 게 없는 이대룡이었다.


그는 회심의 웃음을 깨문 채로 가마 옆문을 제쳤다.

밤은 깊어 지척을 분간 할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소익환의 특별배려로 뽑은 30여명의 호위군관들이 갖춘 기치창검(旗幟槍劍)도 당당하게

좌우를 따랐고, 시종들은 초롱 등불을 팔락거리며 길을 밝혀주고 있었다.

하늘에 맞닿을 것만 같은 산이 눈앞을 가렸다.

“여봐라! 밤이 깊었는데 민가를 찾도록 하라!”

심복하인이 얼른 다가왔다.


“이곳에는 민가가 없사옵고, 저 협곡의 고개를 넘어야만 객관이 있사옵니다.”

“음…….”

잠시 난감해하던 이대룡이 불쑥 짜증을 냈다.  

“어서 빨리 저 고개를 넘도록 서둘러라!”

교군꾼들의 발걸음이 좀 더 빨라졌다. 무척이나 가파른 협곡의 고갯길 양 옆은

울창한 삼림에 뒤덮여 있으며, 왼쪽은 절벽이고 오른쪽 또한 깎아 지른듯한

언덕으로 이어져 있었다.
이대룡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산세는 험하고 밤은 깊었다.

“여봐라! 좌우 경계를 엄히 하도록 해라.”

그의 목소리가 자기도 모르게 발발 떨리며 안으로 기어들었지만,

교군꾼들은 깊은 밤이거나 험한 산길이거나 아랑곳없이 능숙한 걸음걸이로

고개를 오르고 있었다. 어렴풋이, 고갯마루가 다가오고 있었다. 우수수, 가을바람이

낙엽을 날렸고, 산골짜기 사이로 좁다랗게 뚫린 하늘에선 무수한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고갯마루에 이르러 잠깐 한숨 돌리려는 순간이었다.
별안간 오른편 송림 사이에서 쩌렁쩌렁 울리는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게 섰거라!”

이대룡은 간이 철렁 하였다.
호위군관들도 졸지에 당황하며 장창을 거머쥐었다.
조용한 산간을 울린 호령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바람처럼 날랜 동작으로

괴한 10여명이 앞을 막아섰다.

저마다 칼과 장창으로 무장한 복면 괴한들이 이대룡의 가마를 포위한 것이었다.

“무엇하는 놈들이야?”

호위군관 중의 대장이 목소리를 가다듬어 호령했다.

“앗 하하하하……. 와하하하 핫!”


요란스러운 웃음소리가 온 골짝을 잡아 흔들었다.

그 웃음소리의 주인공이 서너 길은 됨직한 바위를 가볍게 뛰면서

바람처럼 몸을 날리더니 가마 바로 앞에 딱 버티고 섰다.

역시 복면을 한 그의 손엔 커다란 칼이 쥐어져 있었다.

칼날이 마치 바닷속을 유영하는 갈치인양 어둠속에서 빛났다.

어림군의 군사들은 모두 겁에 질려 뒷걸음질 쳤다.

“뭣들 하느냐! 이 쥐새끼들을 모두 처치하고 금은보화를 거두도록 하라!”

또다시 들려온 호령소리. 이대룡은 온 몸이 얼어붙어 꼼짝달싹할 수가 없었지만,

가까스로 가마 바깥으로 기어나오기는 했다.

어떡하든 달아나기는 해야 할 것 같았고,

여기서 죽는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되지가 않았다. 허무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수령인듯한 괴한의 호령소리가 끝나자마자,

10여 명의 부하들은 칼과 장창을 휘두르며 호위군관들에게 육박해왔다.

“에잇!”

“으악!”

처절한 절규가 고요한 밤공기를 뚫고 하늘에 울려 퍼졌지만,

처절하게 튀어야 할 피는 보이질 않았다.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하인과 상노들이 혼비백산하여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대룡은 숫제 엉금엉금 기어서 달아나고 있었다.

군사들과 괴한들이 싸우는 틈을 타서 계속 뒤로, 뒤로 기어가고 있었다.

앞으로 기었다간 순식간에 칼을 맞을 것 같은 위기감에 몰려서,

그는 눈을 부릅뜬 채로 싸움 구경을 해가며 후진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의 온 몸이 땀에 범벅이 되어갔다.

“으 하하하하! 이 쥐새끼! 네놈이 달아나면 어디로 간단 말이냐!”

우렁찬 웃음소리와 호령소리가 마구 뒤범벅되어 이대룡의 머릿속을 강타하고 있었다.
당나라 사신은 사시나무처럼 떨면서 오줌을 질금질금 지렸다.

“나리, 나리, 모, 목숨만 사, 살려 주시오……사, 살려……”

그의 목소리는 모기소리만큼 가늘었다.

“에잇!”

굵은 기합소리와 함께 괴한의 칼이 포물선을 그었다.

“으!”   

순식간에 몸과 분리된 이대룡의 목에서 나온 소리 또한 너무나 미미했다.
어둠이란 놈이 그의 피를 나오는 족족 먹어치우는 동안,

그의 머리통은 데굴데굴 벼랑 아래로 굴러가고 있었다.

칼을 칼집에 쓱 꽂고서, 괴한은 또 몸을 날렸다.

그의 부하들과 어림군 군관들이 싸우고 있는 곳이었다.

이미 20여 명의 군관들이 쓰러지고 두세 놈만 살아서 달아나려고

발버둥이를 치고있는 상황이었다. 괴한은 다시 칼을 뺐고,

칼이 허공중에 섬광의 꽃을 그으며 핑핑 몇 번 날았다.

“여봐라! 짐들을 모두 옮기도록 하라!”

“예이!”

처절한 싸움터는 다시 고요를 되찾았다.

10여명의 산적들은 이대룡 일행의 짐들을 하나씩 짊어지고 산속으로 사라졌다.
스산한 밤바람이 갈잎들을 몰아와 30여 명의 시체들 위를 스쳐갔다.

다음날 아침, 어림군 소익환의 저택은 완연 불난 집이었다. 난리법석이었다.

이대룡 일행이 산적에게 참변을 당했다는 소식은 온 장안을 들쑤셨다.

요행인지 우연인지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살아온 하인들이 마치 자기들

무용담인양 퍼뜨린 소문이었다.

당황망조한 나라에서는 급히 산적 소탕령을 내렸다.
어림군의 군사들이 사흘 밤낮을 이 잡듯이 산을 뒤졌으나,

도대체, 도적의 졸개 하나 발견할 수 없었다.

그들은 깊은 골짜기에 있는 빈 산채 하나만을 발견했고,

그래서 애꿎은 그 산채만을 불태워버렸다. 그리고 아무런 성과도 없이 철수하였다.

나라에서는 다시 어명을 내렸다.
당나라 사신 이대룡의 시체를 수습하여 장중하게 장사를 지내주라는 거였다. 
그 10여일 후에, 연개소문은 10여명의 군관들에게 은자를 듬뿍 내려줌과 동시에 금족령을 내렸다.

◇◇◇

당나라 사신 이대룡이 죽었다는 정보는 지체없이 당나라 조정에 전달되었고,

당태종은 만조백관을 소집하여 고구려를 어떻게 요리할 것인가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오늘 경들을 불러 의논코자 하는 바는 동방의 고구려에 대한 문제요.

고구려는 국초(國初)부터 우리와 친선화평을 염원하고 스스로 습복(慴伏)하여

잔명(殘命)을 유지하고 있으나, 짐은 수나라로부터 이어온 구원(舊怨 오래 전부터

품어온 원한)을 잊은바 없소. 또한 그 영토가 한사군의 고토임을 생각하여

그 구토를 다시 찾을 염원에 차 있었소. 하나, 아직 나라 안 형세가 안돈(安頓)치 못하고

국정과 국세를 규찰치 못하여 항상 염려하던 차에,

우리의 사신 이대룡이 저들 땅에서 비명에 죽는 사건이 일어났소.

이를 어찌하면 좋을는지 경들의 의견을 듣고 싶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