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개소문 이야기 [41화] 모략과 책략 5 또 새로운 화재가 장안뿐만 아니라 온 나라 안에 들끓었다. 당나라에서 잡혀 죽었다던 연개소문이 죽지 않고 병신이 되어 돌아왔으니 화재거리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나라 안이 온통 연개소문 이야기로 꽃을 피우고 있던 어느 날 저녁 무렵이었다. 아침저녁으로 가을바람이 소슬하니 불어오기 시작하자, 유심정에는 장안의 한량들과 오입쟁이들이 제철 만난 기러기 떼처럼 몰려들기 시작했고, 널따란 술청엔 그날따라 벌써부터 술꾼들로 가득 차 있었다. 대청마루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젊은 장정들 서너 명도 거나하게 술에 취한 모양이었다. 한 사내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들어 옆에서 안주만 정신없이 축내는 젊은 사내의 옆구리를 쿡 지르면서 핀잔을 준 거였다. “이크, 이 사람. 갈빗대 부러지겠네. 하여간 귀인이고 뭐고, 됐네. 체통이 뭐 밥 먹여주나?” 귀인(?)이 연신 안주를 입에 집어넣고 있자, 맞은편에 있던 깡마른 사내가 끼어들었다. “아니 이 사람……” 귀인(?)이 깡마른 사내의 말을 막았다. “자넨 또 왜 끼어들어?” “하아, 끼어드는 게 아니라, 귀인, 귀인, 해서 말이지. 동부귀인 연개소문이 병신이 되어 돌아 왔다잖아?” “허어, 뉘 아니래?” “아, 그래…… 좀 늘여서 말하자면 외눈에 외팔이라네. 그 꼴에 귀인이 되면 뭘 하나 그 말이지. 차라리 병신 안 되고 귀인 안 되는 게 낫겠다. 안 그런가?” “야! 쓸데없는 소리 작작하라고! 천하장사에 슬기롭기 짝이 없다는 문무겸전 연개소문도 다 때를 잘못 만나 그렇게 된 거라고! 뭐 알기나 하고 지껄이는 거야?” 그때, 유심정 대문 밖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왔다. 교군꾼들인 모양이었다. 주인 유월향이 날렵한 몸매를 한들거리며 쪼르르 대문 쪽으로 달려 나가더니 호들갑스레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잽싸게 가마 앞문을 열어젖혀 올린 그녀는 엉덩이를 살랑거리면서 안을 들여다보고는 영판 차단지 깨어지는 소리를 했다. “아이유, 대감, 이제야 행차하시나이까? 이 대인께선 진즉에 행차하셔서는 눈이 짓무르도록 기다리고 있는뎁쇼.” 옆에 서 있는 교군꾼들은 보고도 못 본 척 딴전을 피웠다. 차마 보기 민망한 교태가 그녀의 몸에서 잘잘 흘러내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허허허허…….” 소익환의 입이 찢어져 귀에 걸렸다. “월향이! 오랜만이야!” 그러자 월향이 샐쭉해서는 소익환을 째려보았다. “아이고 대감도 참 망령 나쎴수? …… 어제 뵙고 오늘 뵙는데 그 무슨 오랜만이어요?” “허허허허! 그런가? 난 또 한 3년 지난 줄 알았지 뭔가!” “호호호호……. 무슨 뜻인지 감 잡았나이다.” “흐으…… 고것 참! 자네는 보면 볼수록 보고 싶으니 이 일을 어이 할꼬?” “아이고, 보사이다. 실컷 보사이다.” 소익환은 유월향의 부축을 받으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들은 앞뜰을 지나 후원의 조용한 방으로 갔다. “소 대감께서 오늘은 좀 늦으셨소이다.” 화선들에게 다리를 주무르게 하고 있던 이대룡이 부스스 일어나 앉으며 한소리 한 거였다. “오늘은 늦을만한 일이 좀 있었소이다.” 이대룡이 권하는 대로 상좌에 앉으며 소익환이 지나가는 말처럼 대꾸했다. “아니, 무슨 중대한 일이 있었소이까?” 그는 소익환을 걱정하는 척하면서 그 내용을 캐어내려고 신경을 곤두세웠다. “얘들아, 대감께서 조용히 하실 말씀이 계신 모양이다. 우리들은 술 한 잔씩 권해올리고 자리를 비워드리자꾸나.” 화선들이 재빨리 술잔에 술을 가득 따라놓고 나가자, 두 사람은 한동안 주거니받거니하여 술잔만 기울였다. 그러다 이대룡이 또 한 번 방 안을 휘둘러보았다. 방의 네 귀퉁이엔 촛불만이 혀를 날름거리며 그들을 환히 밝혀주고 있을 뿐이었다. “소 대감, 오늘 무슨 중요한 일이 있었다고 했소? 그것이 무엇이오?” 한참 만에 이대룡이 먼저 입을 연 것이었다. “병신이 되어 돌아온 연개소문 말이외다.” “사실은 나 역시 그 문제로 대감께 상의하러 온 것이외다.” 이대룡이 한술 더 뜨자 소익환의 얼굴에 궁금한 기색이 번졌다. “이 대감께서 하실 말씀이란 게 도대체 무엇이오?” “하하하하! 소 대감, 너무 성급하시구려. 말에도 선후가 있는 법 아니겠소? 대감께서 먼저 그 중요한 일을 말씀해주셔야 하겠소이다.” “하하, 그러지요.” 소익환은 입술에 침을 한번 바르고는 더 바짝 다가앉았다. “이 대인, 어제 연개소문이 태왕마마를 배알하려고 입궐했었소.” “아하, 보셨구려? 연개소문이 정녕 병신이 되었던가요?” 이대룡이 긴장하여 물었다. “어허, 이대인께서도 참, 별 의심을 다하시오. 내가 누구요? 태왕마마를 모시고 있는 막중한 위치에 있지 않소? 어떻게 병신 아닌 자를 병신 되었다고 보고할 수가 있으며, 개소문 또한, 이 몸을 거치지 않고 어떻게 자기 맘대로 태왕마마를 배알할 수 있단 말이오?” “정녕 병신이 되었다 그 말씀이지요?” 이대룡이 무릎을 치며 좋아하다가 갑자기 동작을 멈추고 혀를 끌끌 찼다. “거 참, 아깝구려. 그토록 용맹무쌍하던 자가……. 나이도 새파랗지요 아마?” “아직 이립(공자가 서른 살에 자립한 데서 나온, 30세의 다른 호칭)이 안 되었을 겁니다만, 아무튼 이 대인께서는 마치 고양이 쥐 생각하듯 하시는구려.” “허허허허! 딴은 그렇습니다.” 이대룡을 따라 웃는 소익환의 웃음소리가 방 안을 공허하게 맴돌았다. 술을 한잔 쭉 들이켜고 나서, 이대룡이 근심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그러면, 기어이 연개소문이 동부총관을 습작하게 되는 거란 말이오?” “아무리 병신이 되어 돌아왔으나, 무사히 귀국했으니까요. 국법상, 습작을 불허할 아무런 명분이 없지 않소이까?” “허지만 어명을 거역한 그 역적을……?” “엄밀히 따지고 보면 어명을 거역한 게 아니지 않소? 돌궐에 사신의 신분으로 갔었지만, 기실 그의 업적은 5만대군의 원병을 대신한 거였고, 그것은 이미 돌궐의 힐리가한이 인정한 바였소. 어찌되었든, 만부부당의 그 위인도 이제 병신이 되었으니, 귀국(당나라)은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 보오.” “허허, 소 대감. 연개소문, 그 자는 나는 새도 빠져나오지 못한다고 했던 그 죽음의 수렁에서 빠져나온 위인이오. 아무리 병신이 되었다지만, 절대로 마음을 놓으면 안 될 것이오. 그 속마음이야 어찌 알겠소? 병신 마음 고운 데 없다고…….” 이대룡은 소익환의 얼굴을 쏘아보고 있었다. ‘딴은 그렇군.’ 가만히 생각하니 일리 있는 말이었다. ‘그러나 완연한 폐인이었어…… 아아, 아까워라. 놈이 돌아오기 전에 완전히 역적으로 몰아 작위를 박탈해버렸더라면, 그랬더라면 동부총관은 어렵잖게 내 수중에 들어오는 건데……’ 소익환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이왕 일이 이렇게 틀어진 걸 어찌하겠소이까? 다음에 또 다시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려야지요.” 이대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대감 말씀도 일리가 있소이다만, 연개소문에게서 총관 직을 박탈하여 대감의 손에 넣는 것이 우리의 목적 아니었나 생각하니 많이 서운하구려. 내가 이런데, 대감은 오죽 마음이 쓰릴까 싶소.” “이 대인 말씀은 고마우나…….쩝!” 두 사람은 다시 술잔을 돌리기 시작했다. “소 대감은 아무래도 연개소문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시는 것 같소이다.” “허허, 이 대인의 조언을 높이 삽니다. 무겁게 생각하옵지요.” “뭐라구요? 하하하하!” “농이었습니다. 여하튼, 다른 기회를 포착할 때까지는 계속 놈의 동정을 살펴 볼 수밖에 없겠소이다.” “허허허허! 이거 참, 비로소 좀 통한 것 같소이다.” 이윽고 이대룡은 손바닥을 딱딱 두드려 화선들을 불러들였다. “우리 한번 즐거이 놀아봅시다. 얘들아~ 어서 들어오너라!” 유월향, 한가월, 설중매 등 화선들이 조르르 들어와 각각 소익환과 이대룡의 옆에 바짝 붙어 앉았다. 그들은 계집들을 옆에 낀 채 코가 비틀어지게 술을 마시며 밤이 가는 줄을 몰랐다. 장안의 여론은 사뭇 연개소문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그동안 연개소문은 되도록 바깥출입을 삼가고 총관부에서만 소일하였다. 세상의 관심을 잠재우자는 묘책이었다. 과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연개소문이란 이름도 점점 뜸해지고 있었다. ◇◇◇ 섬돌 밑에 귀뚜라미 소리가 한창인 깊은 가을밤이었다. “새삼 돌궐 이야기는 왜 끄집어내시는 거옵니까?” 그는 최대한으로 다정한 웃음을 머금었다가 뱉어내듯이 입을 열었다. “내, 부인께 이야기 하지 못한 것이 있어서 말이외다.” “그것이 무슨 이야기이옵니까?” “부인의 양해가 필요한 이야기요.” “말씀하시와요. 서방님께서 필요하신 일이라면 소첩이 뭐라고 왈가왈부 하오리까?” “내, 돌궐에 있었을 때에 지극정성으로 나를 돌봐준 낭자가 있었다오.” “…….” “오직 이 연개소문만을 의지하고 믿고 사는 가련한 낭자요. 그 낭자가 아니었으면 나는 아마 살아오지도 못했을 터인데, 내가 그 입은 은혜를 아직 갚질 못하였구려.” “아, 서방님……. 진즉 말씀 하시지, 왜 이제야 말씀하시옵니까? 그 낭자가 지금 얼마나 서운해 할까요? 만리타국에서 고생하시는 서방님을 소첩은 한 순간도 같이하지 못했는데, 그 낭자의 보살핌이 있어서 그래도 서방님이 이렇게 돌아오셨는데, 그 은혜를 모르면 어찌 사람이라 할 수 있겠는지요? 서방님, 언제 한 번 집으로 데려 오시와요. 소첩이 감사의 정을 표시해야겠사옵니다.” “부인, 고맙소.” 부부는 힘껏 끌어안은 채로 깊어가는 가을밤을 향유하였다. 너무 반가워 울먹이는 계은비의 모습을 바라보며, 연개소문이 겸연쩍게 웃었다. “그동안 홀로 고생이 많았겠소.” “아니옵니다, 서방님.” 그때 안채에서 계집종이 와서 공손히 아뢰었다. “안방마님께서 계 낭자 아씨를 모셔오라는 분부이시옵니다.” “그래? 알았느니라.” “계 낭자, 내 이미 말해둔 바 있으니 내실로 가보시오.” “하오나…….” 계은비가 망설였지만, 연개소문은 계낭자의 심정을 짐작하고 조용히 타일렀다. “낭자, 달리 생각 마오. 내 곧 건너갈 것이니 먼저 가 보오.” “……” 계은비가 고개를 숙인 채 대답이 없자, 계집종이 그녀의 팔을 끌었다. “아씨, 어서 가십시다. 마님께선 아까부터 아씨를 보시겠다고 내내 기다리셨습니다.” 계은비는 할 수 없이 계집종을 따라 내실로 향했고, 그녀가 나가고 나서야 연개소문은 팔베개를 하고 누워 조용히 명상에 잠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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