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개소문 이야기 48화 -거사전야 1
영류태왕 25년(642년) 이른 가을, 조용하던 조정은 갑자기 벌집 쑤셔놓은 듯한 사건이 터졌다.
전부터 성주와 불화해오던 요동 안시성 장수 양만춘(楊萬春)이 성주에 대해 반기를 든 것이었는데, 그것은 곧 고구려 조정에 대한 반란행위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조정은 연일 어전회의를 열었다.
안시성 성주 선우돌이 전형적인 탐관오리(貪官汚吏)인데 반해, 반군을 일으킨 주동 양만춘은 전부터 공공연히 북공책에 대한 자신의 지론을 주장해오던 인물이었다. 따라서 지금 조정에서 실권을 쥐고 있는 막리지 민의겸과 어림군 총관 소익환이 이끄는 대당 화친파에게는 눈 밖에 난 사람이었다.
영류태왕으로서는 이번의 반란은 방관하면 자칫 북공파에게 기선을 제압당할 우려가 있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걷잡을 수 없는 반정(反政)의 도가니 속으로 휩쓸릴지도 모르는 중대한 사건이었다.
더구나 반란군에게 몰려 열세에 떨어진 선우돌은 조정에다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한 의병 1만을 파병해 줄 것을 요청한 상태였다.
반란 소식을 듣자, 연개소문은 은근히 쾌재를 불렀고, 현 조정을 뒤엎기 위한 거사 준비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이미 이 거사에 가담할 동지 규합도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 이젠 적기에 병마를 일으킬 문제만 남아있을 따름이었다.
조정에서는 연일 어전회의가 소집되어 이 반란사건을 놓고 절치부심했다.
사건의 발단은 전적으로 성주 선우돌에게 있었다.
성주 선우돌은 그 성품이 포악하여 백성들에게 과중한 세금을 걷고 부역을 동원하는 등,악명 높았다. 그뿐 아니었다. 그는 이미 성주로서의 3년 임기가 만료되었는데도 다음 부임지인 장성감독(長城監督)으로는 갈 생각을 않고 차일피일 그 자리에서 뭉개고 있는 판이었다.
그러던 중 관내에서 덕망과 명성이 높은 장수 양만춘이 여러 차례 성주에게 간하기도 하고 항의하기도 했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성주 선우돌은 양만춘을 응징한다는 구실로 군사를 보내 그를 잡아들이라고 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양만춘도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는 일이라 군사를 일으켜 선우돌 성주에게 대항하게 되었다. 양만춘에게 몰려 형세가 다급해진 선우돌은, 이웃 성인 비사성·백암성·영유 등, 여러 산성에 원병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평상시 선우돌의 소행을 잘 아는 여러 성주들은 좀처럼 원병을 보내려 하질 않았다. 오직 비사성 성주 유기만(劉基萬)이 마지못해 원병 1천을 보냈을 따름이었다.
안시성 내란은 날이 갈수록 확대되어 가서, 양 진영은 동서로 대진하여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다급해진 선우돌은 조정에다 원군 1만을 보내달라고 요청한 것이었다.
영류태왕은 막리지 민의겸과 어림군 총관 소익환을 불렀다.
“경들도 다 아는 사실이오만, 요동 안시성의 내란을 어떻게 수습하면 좋겠소?”
“성상마마, 황공하옵나이다. 불초 소신 불민한 탓으로 이토록 성상마마의 심려를 끼치게 하였사오니, 몸 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덮어놓고 황공이라니! ........엥이.......’
민의겸은 조아린 머리를 좀체 들지를 못하고 있었다.
“경들은 왜 대답이 없는고? 빨리 의견을 내놓아 보오!”
그제야 소익환이 읍하고 아뢰었다.
“성상마마, 소신의 생각으로는 동부총관 연개소문 장군을 원병으로 파병하는 것이 좋을 듯 하옵니다.”
“또 연개소문인 게요? 경은 연개소문이 그 불구의 몸으로 어찌 사태를 수습할 수 있다고 보는 건고?”
“성상마마, 연개소문은 불구인데도 동부 총관을 맡고 있사옵니다. 그 자가 심히 위험인물인 것은 성상마마 역시 짐작하시고 계신 바, 그에게 이번에 지존의 어명을 받들고도 봉행하지 못하면 그 책임을 물어 총관부를 폐하시옵소서.”
‘덫을 놓자 그 말인가?’
영류태왕은 소익환의 진의가 어디에 있는지를 대뜸 알아챌 수 있었다. 비록 불구자가 되었어도 연개소문은 그 부친 연태조의 뒤를 이어 계속 당나라에 맞서서 북공의 강경책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었다.
‘도대체 눈엣가시이긴 해....... 이번 기회에 연개소문을 파견하면 여지없이 패할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사실이 아니겠는가. 그리 되면 경의 상주대로 그의 총관직을 삭탈한다? 호오, 이 판에 골치 아픈 강경론자를 제거하자........? 해롭지 않겠군.’
영류태왕은 싱긋이 웃음을 물고 민의겸을 보았다.
“경은 소 총관의 의견을 어찌 생각하오?”
막리지 민의겸은 또 머리를 조아렸다가 슬며시 얼굴을 들고 공손히 아뢰었다.
“성상마마, 노신의 소견으로도 그러하옵니다. 동부총관 연개소문이 아직 젊었사오니, 원병으로 보내시옵거나 장성수축의 부역감독으로 보내시는 것이 좋을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영류태왕이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좋소이다. 경들의 의견이 그렇게 통일되었으니, 이 사실을 지체 없이 내일의 조례에 올려 시행토록 하오.”
민의겸과 소익환은 어전을 물러나오며 내내 싱글벙글하였다. 그러면서 교활하게도 어림군의 소 총관이 안시성으로 출군하게 될 것이라는 정보를 은근슬쩍 흘리자고 약속하였다.
다음날 아침, 민의겸은 반란 진압 차 원병을 요동에 파병하는 출정령을 조례에 회부했다.
원래 병마 출병에 관한 대권은 문무백관이 참석한 가운데서 합의를 보아야 하는 사항이었다. 그것은 그 총관 관하의 각 산성들을 통해 병마를 동원하는 대권인 까닭에, 대공의(大公議)를 거치게 되어있는 것이었고, 그것은 어길 수 없는 제도였다.
대공의의 통문은 전국에 시달되었다.
아직 초가을이라 춥지는 않았지만, 연개소문은 후원 초당의 창문과 덧문을 죄다 닫아걸고서야 스승과 마주앉았다.
“사부님, 이렇게 되면 분명 공명을 세우기 위한답시고 소 총관이 출정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마음 놓고 거사를 할 수 있으니,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인 것 같습니다.”
문덕도사가 대답 없이 눈을 감았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연 총관의 말이 옳기는 하지만 대공의의 결과가 드러나기 전까지는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일이 아니오?”
“.........”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과의 긴밀한 유대인 법. 우리의 일을 저들이 눈치 챈다면 그땐 마지막이오.”
“알겠사옵니다, 사부님. 그렇지만 설마 그렇게야 되겠습니까?”
“장군, 낙관은 금물이오. 항상 심모(深謀 깊은 계략)에 원려(遠慮앞으로 올 일을 헤아리는 깊은 생각)하여 일에 차질이 없도록 하오.”
“예, 사부님 말씀 명심하겠사옵니다.”
다음날, 연개소문은 비밀리에 오졸 고정의와 을지만수를 동부 총관부로 불렀다. 그리고 거사의 계략을 깊이 생각하여 의논을 거듭했다. 주안상을 사이에 둔 세 사람의 표정은 하나같이 심각했다. 고정의가 두 사람의 표정을 살피며 차분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오늘 소장이 잠시 막리지부에 들렀었소. 역시나, 이번 출군령은 소 총관에게 내려진다고 하더이다.”
“그렇게만 된다면야, 장안성은 일시에 비게 되는 것 아니겠소? 그러면 우리의 거사는 춘풍에 돛을 단 격이오.”
을지만수가 눈을 반짝이며 장담하였다.
그러나 연개소문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조심성 있게 입을 열었다.
“원래 구제궁과 어림군은 우리가 점령하기로 되어있던 곳이니, 그렇게만 된다면야 좋겠지만, 어디 세상 일이 뜻대로 된답디까?”
“아닙니다. 좀 전에도 말씀 올렸지만, 이는 민 대감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니 분명합니다.”
“좌우간, 두 분께서 담당한 도원수부와 남·북 총관부만 신속 기민하게 점령하면 이번 거사는 성공인 거요.”
“전날 연 장군께서 지시한 대로, 소장은 도원수부를 책임지고, 을지 장군께서는 남·북 총관부만 점령하면 됩니다.”
고정의의 말에 을지만수가 연개소문을 보고 말했다.
“장군께서는 너무 걱정 마십시오. 다 썩은 어림군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미심쩍어서 소장, 하루에도 여러 차례씩 어림군의 동태를 살피고 있으니 말이외다.”
“병서에 말하기를, 경적필패(輕敵必敗 적을 얕보면 반드시 패함)라고 하였소만, 워낙 썩은 군사들이라 두려울 것은 없겠소이다. 그러나 만에 하나라도 장안성 내에서 격전이 전개되고 또 그것이 조속히 끝나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낭패가 아니겠소?”
“옳은 말씀이오.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이 있잖소?”
“그렇지요. 쇠뿔을 바로 잡으려다 소를 죽이는 격이 되면 큰일이오.”
병서에 능통한 고정의도 작전에 세심한 연개소문의 말에 새삼 수긍을 하며 감탄했다.
잠시 후, 연개소문이 답답한 표정인 채로 입을 열었다.
“아직은 낙관할 것이 못 됩니다만, 막리지나 어림군 총관이 우리의 기밀을 낌새채지 못하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할 것이오.”
“물론이오.”
서부총관 을지만수가 연개소문을 바라보며 짤막하게 응수했다.
“무엇보다도 각 산성 지방 방백을 설득해야 합니다. 우리의 뜻을 납득시키는 것이 앞으로의 큰 문제입니다.우리가 이제껏 노력해온 바이지만, 다시 한 번 우리의 전열을 가다듬을 필요가 절실합니다.”
“옳은 말씀이오. 이제 대공의를 앞두고 지방 방백들이 모여들고 있으니, 각자 휘하 지방 방백을 다시 결속시키는 데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오.”
그들은 조용히 술잔을 돌리며 치밀한 계획을 짰고, 밤이 이슥해서야 제각기 조심스레 헤어졌다.
대공의를 하루 앞둔 날 밤, 연개소문은 평소 비밀히 맺어둔 지방 방백·산성 성주들을 모아 동부 총관부에서 성대한 환영연을 베풀었다. 바로 여기에서 거사의 계획이 은밀히 전달되었다.
「이번 대공의는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고, 국가의 종묘사직을 굳건한 반석 위에 올려놓을 막중한 대사를 처리하는 계기가 되는 터이니, 여러분은 그 중대성을 십분 성찰하시기 바라오.」
연회가 한창 무르익고 있을 무렵에, 연개소문은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내실에 들어갔다. 아니, 정확하게는 내실 뒤편의 초당엘 들어갔다. 그리고 스승과 함께 거사 계획에 마지막 손질을 가하며 조용한 시간을 보냈다.
◇◇◇
드디어 대공의가 열리는 날이었다.
대조전은 전국의 지방 방백들로 붐비기 시작하였다.
연개소문은 신병을 빙자하여 연비 장군을 대리로 참석시켰다.
영류태왕은 만당한 문무제신들이 기라성처럼 늘어선 대조전에 납시어 근엄한 표정으로 옥좌에 앉았다.
“짐이 대위를 이어 종묘사직을 지킨 이래 허다한 어려움이 있어도 경들의 충성스러운 도움으로 화평을 누려온 바이나, 지금 요동 지방의 반란은 갈수록 짐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바가 매우 크오. 반역의 무리들을 소탕하고 질서를 바로 잡는 것이 종묘사직을 굳건히 하는 길이니, 경들은 심사숙고하여 해결책을 품의하도록 하오.”
막리지 민의겸이 앞으로 나서서 태왕께 아뢰기 시작했다.
“성상마마, 반란군 진압의 중책은 동부대인 연개소문 장군 밖엔 달리 수행할 인재가 없는 줄로 아뢰오.”
대리 참석한 연비 장군은 깜짝 놀라 귀를 기울였다.
“어찌 인재가 없겠는가만, 동부대인 연개소문은 짐의 충성스러운 고굉지신(股肱之臣)이라 능히 맡겨 안심할 수 있도다. 경들의 의견은 어떠한고?”
전내는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하였다. 동부총관 연개소문이 국왕의 미움을 사서 요동지방으로 출군하게 되는 줄 미리 알고 있는 군신들은 더더욱 몸을 사렸다.
누구 한 사람 감히 연개소문을 동정하여 반대의견을 밝히는 자가 없었다.
어림군 총관 소익환이 머리를 조아렸다.
“성상마마의 분부, 지당하신 줄로 아룁니다.”
“경들은 다른 뜻이 없는가?”
“예이~ 지당하옵신 분부이시옵니다.”
만좌한 조신들은 일제히 머리를 조아리며 찬성하는 의사를 밝혔다.
영류태왕은 비로소 마음이 놓여 깊은 한숨을 들이쉬었다.
영양태왕이 서거하고 나서 왕자 보장이 대를 이어야 하는 것을 그가 왕위를 찬탈한 것이었다.
고건무, 그는 섭정이라는 명분으로 대권을 쥐고 있다가, 적당한 때를 보아 어린 보장을 유폐시켜 버린 거였다. 그런데 보장의 비는 바로 연개소문의 누이였다. 그러니 연개소문에게는 태자비가 고모인 셈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영류태왕은 연태조가 항상 눈엣가시였고, 급기야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연개소문을 제거해야겠다는 결심을 다진 것이었다.
조신들의 의견을 종합한 영류태왕은 결정적인 어명을 내렸다.
“동부 총관 연개소문은 휘하 군사 보병·기병 도합 8천을 이끌고 단시일 안에 요동으로 출병하여 하루 속히 난을 평정토록 하라!”
안시성 성주 양만춘에 관한 문헌 기록
백암성과 개모성을 함락시킨 당태종은 다시 안시성(安市城)으로 진군하였다. 당시 안시성은 군사적으로 요동성에 버금가는 고구려의 중요한 요새였다. 지금의 만주 봉천성(奉天省) 해성(海城)의 동남방에 위치한 영성자산성(英城子山城)으로 추정된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는 안시성 성주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구당서(舊唐書)》 동이열전 고구려조에도 안시성의 성주가 누구라는 것은 언급된 일이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안시성 성주를 ‘양만춘’으로 알고 있다.
실제로 안시성 성주가 양만춘으로 기록된 것은 고려 말의학자 이곡(李穀)의 《가정집(稼亭集)》, 조선중기의 학자 송준길(宋浚吉)의 《동춘당선생별집(同春堂先生別集)》과 조선후기의 실학자이자 소설가인 박지원(朴趾源)의 《열하일기(熱河日記)》 등의 문헌이다. 이들 문헌을 살펴보면 고구려 시대의 안시성 성주가 ‘양만춘(梁萬春)’ 또는 성씨의 한자가 다른 ‘양만춘(楊萬春)’으로 나온다.
가정(稼亭) 이곡은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아버지이며, 《가정집》에 고구려 안시성주 양만춘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있는데, 조선시대의 송준길이나 박지원이 그 책에서 따다 쓴 것인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다만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세상에 전하는 말’이라는 단서를 달면서 다음과 같이 양만춘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안시성주 양만춘이 당나라 황제의 눈을 쏘아 맞혀, 당나라 임금은 양만춘이 성을 굳게 지키는 데 탄복하여 군사를 성 아래 머물게 하고, 비단 백 필을 성주에게 보냈다고 한다.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이, 그의 아우 노가재(老稼齋) 김창업(金昌業)이 북경으로 갈 적에 지은 전별시에, ‘천추에 대담한 양만춘은 수염 털보 눈알을 쏘아 뽑았네(千秋大膽楊萬春, 箭射虯髥落眸子)’라는 구절이 있다. 목은(牧隱) 이색(李穡)은 ‘정관음(貞觀吟)’이란 제목으로 지은 시에, ‘독 안에 든 쥐로만 생각했더니 흰 깃에 검정 꽃 빠질 줄이야(爲是囊中一物爾, 那知玄花落白羽)’라고 하였다. ‘검정꽃(玄花)’이라 함은 눈알을 이름이요, ‘흰깃(白羽)’이라고 함은 화살을 말한다.>
김창흡이나 이색 역시 이곡의 《가정집》에서 양만춘에 대한 기록을 보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특히 이색은 이곡의 아들로 《가정집》의 초간본을 편집했으므로, ‘정관음’이란 시를 쓰게 된 연유도 거기에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아무튼 안시성 성주로 알려진 양만춘은 범상한 인물이 아니다. 연개소문이 영류왕과 대신들을 죽이고 정권을 잡을 때, 그는 그 정변을 지지하지 않았다.
정변 이후 대막리지가 된 연개소문은 끝까지 양만춘이 불복하자 손수 군사를 이끌고 안시성을 쳐들어가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전략전술에 능한 연개소문도 양만춘의 군대가 지키는 안시성을 깨뜨리지는 못하였다. 양만춘을 굴복시키지 못한 연개소문은 결국 그에게 본래대로 안시성 성주의 직책을 맡기고 군사를 되돌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양만춘은 당나라 대군을 맞아 안시성을 굳건히 지켰다. 만약 당태종이 안시성 성주의 화살을 맞고 회군한 것이 사실이라면, 김부식은 《삼국사기》를 편찬할 때 그 기록을 빠뜨렸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당시 김부식을 위시한 《삼국사기》 편찬자들은 대체적으로 국내 기록을 무시한 채 거의 중국 역사서에 의존하였다는 혐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당나라와의 전쟁 기록만 보더라도 고구려 입장의 서술이 아니다. 당나라 군사들이 고구려로 쳐들어온 경위를 《구당서》에 나온 내용 그대로 발췌하다시피 하여 싣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고구려가 당나라 군사를 맞아 어떻게 응전했는지에 대한 기록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소홀한 편이다. 결국 《삼국사기》에서는 애석하게도 고구려의 막리지 연개소문이나 안시성 성주 양만춘의 전략전술에 대한 기록을 눈을 씻고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이러한 정황으로 볼 때 김부식이 일부러 수나라와 당나라에 수치가 될 수 있는 기록은 삭제했다는 쪽으로 생각해 볼 수밖에 없다. 김부식의 사대주의 역사관이 주범이었던 것이다. 《삼국사기》에서 안시성 성주 ‘양만춘’의 이름이 사라지게 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양만춘을 거론하다 보면 자연히 그의 화살에 당태종이 눈을 맞고 회군한 사실을 기록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당나라로서는 치욕적인 일일 수밖에 없고, 그래서 사대주의자 김부식은 그 기록을 아예 삭제해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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