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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_strong>2008년 8월 8일<_span> <_p> 그루지야 사태(러시아-그루지야간 군사분쟁) 발생<_p>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 코카서스 지역에 위치한 그루지야는 유럽과 중앙아시아 중동의 길목으로 오랜기간 문화적 지정학적 충돌지역이었다. 그루지야가 베이징올림픽 개막식 날인 2008년 8월 8일 남오세티야 지역을 공격하자 러시아가 전투기와 탱크, 지상군을 투입해 그루지야를 공격하면서 군사분쟁이 발생하였다. 그루지야는 2003년 11월 ‘장미혁명’으로 친미(親美) 성향의 미하일 사카슈빌리(Saakashvili) 대통령이 취임한 뒤 친러시아 성향의 남(南)오세티야 영토를 놓고 러시아와 대립해오다가 이날 군사분쟁이 발생하였다.<_p> 그루지야 군대는 2만1150명, 러시아군은 102만 명으로, 친미정책을 펴온 사카슈빌리 그루지야 대통령이 미국의 지원을 기대해 무모한 전쟁을 시도했다는 관측이 있다.그루지야의 미하일 사카슈빌리(Saakashvili) 대통령은 208년 8월 9일 오후 러시아가 공수부대를 투입해 남오세티야의 수도 츠힌발리를 장악하자 즉각 휴전을 제의하였다.그루지야의 나토(NATO) 가입이 2008년 4월 좌절되면서 사카슈빌리 대통령은 분쟁 중이던 남오세티야를 타켓으로 영토회복을 노렸으나, 친러시아 성향의 남오세티야로 인해 러시아의 참전을 불러왔다. 또한 러시아는 친미 성향의 그루지야에 대한 공격으로 친(親)서방·탈(脫)러시아 노선을 밟고 있는 우크라이나·몰도바는 물론, 서방에도 분명한 경고 메세지를 보냈다.<_p> 서방의 지원이 없는 그루지야와 민간희생에 대한 명분이 없는 러시아간의 전쟁 장기화 가능성은 낮았다. 프랑스가 중재한 휴전안에 2008년 8월 15~16일 그루지야와 러시아가 차례로 서명하였다. <_p> <_font><_font><_p><_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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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p> 총 50<_cite>건<_th><_tr><_thead>
2005년<_td> 제5차 남북 해운실무접촉(파주 홍원연수원: 2005.8.8~8.10)<_td><_tr> 2003년<_t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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