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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 이야기 [40화] 모략과 책략 4(글쓴이-蘭亭주영숙)

해피y 2017. 11. 17. 05:20

 


연개소문 이야기 [40화] 모략과 책략 4

일행은 수구성 객관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었다.
초췌한 연개소문의 모습을 본 도사는 심히 우울했다.


‘예부터 왕후장상(王侯將相)은 그 씨가 따로 있다고 했다. 그리하여 나라에서 큰 벼슬을 하는 중신과 방백들은 국가 창업의 기둥이라 하였고, 그 작위를 자손 대대로 계승하는 것이 당연지사로 되어왔다. 하지만 지금 너는 저잣거리에 나돌아 다니는 필부만도 못한 처지에 놓여있구나. 충성을 하려해도 간신들의 장막에 가리고, 국왕에 의해 외국으로 추방되어 어머니 임종조차 보지 못하여 효자의 길마저 빼앗겼으니, 이 얼마나 딱한 일이냐……. 예로부터 충(忠)과 효(孝)는 그 본(本)이 하나라고 했다. 그런데 너는 충효의 길을 송두리째 빼앗겼구나…….’

그렇다고 입을 닫고 있을 수만도 없었다.

“장군, 놀라지 마오. 나라 안의 돌아가는 형세야 더 이야기 할 바 없거니와, 장군의 집안 일이 지금 누란지세(累卵之勢)에 있다는 것을 알리고자 하오. 지금 나라에서는 간신배들의 책동으로 동부 총관부를 폐쇄하려 하고 있소. 오직 장군만을 기다리며 하루가 여삼추로 날을 보내는 공 부인과 연비 장군만이 총관부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형편이오. 이 사세에서는 장군이 평양성에 도착한다 해도 그 신명(身命)을 보존키가 심히 어려울 것이오. 뿐만 아니라, 지금 중병으로 앓고 계시는 부친을 이어 대를 계승하기도 힘들게 되어 있소.”

“아! 아버님께서…….”

“장군의 모친은 연전에 작고하셔서 삼년상의 기일이 다가오고……. 간악한 무리들이 이러한 틈을 타서 동부총관의 습작권을 강탈하려 하고 있는 게요.”

“아, 어머님! 이 불효막심한 소자를 용서하시옵소서!”

연개소문은 방바닥에 엎디어 통곡했다.

◇◇◇

평양성이 멀지 않은 어느 고을 주막이었다.
술청에는 제법 술꾼들이 들어차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여보게, 연개소문 소식 아는가?”

텁석부리 술꾼이 술잔을 든 채로 옆의 비쩍 마른 사내에게 물었다.

“엉? 연개소문이 병신이 되었다는 그 소문?”

“정말이야? 난 도시 믿어지지가 않아서 말이야.”

“예끼 이 사람, 병신이 됐으니까 소문이 그리 났지. 그게 설마, 헛소문일라고?”

그때, 바로 옆자리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던 한 청년이 끼어들었다.

“형씨들, 그 연개소문이 바로 나이외다.”

모든 술꾼들의 귀가 번쩍 뜨이며 청년에게로 시선을 모았다.
장대한 체구이기는 하나, 외팔이에 외눈. 흉측한 몰골이 아닐 수 없었다.

“앗!”

모든 술꾼들의 입에서 똑 같은 영탄(永嘆)이 터져 나왔고, 동시에 얼굴들이 찌푸려지면서 연민의 표정이 그려지고 있었다.

“허 참!”

“쯧쯧쯧…….”

저마다 혀를 차며 고개를 내젓는 그들의 속내는 또 달랐다. 

‘저 꼴로? 흥, 동부총관은 정녕 물 건너 갔구먼.’

그들의 속을 훤히 꿰뚫은 연개소문은 크게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으하하하핫!”

그러고 자리를 털고 일어난 그는 보란 듯이 몸을 들이대며 그들을 죽 훑어보았다.

어슬렁어슬렁 주막을 나오는 연개소문의 뒤를 바우가 바짝 따라붙으며 툴툴거렸다.

“이놈은 장군님 그 모습을 차마 눈 뜨고 못 보겠습니다요.”  

연개소문은 오른쪽 눈으로만 바우를 물끄러미 보다가 조용히 으르렁거렸다.

“바우야, 네가 이런 나를 못 보아주면 어쩌겠느냐? 내가 죽으랴?”

바우가 질겁하였다.

“아니 되오! 장군님 돌아가시면 이놈도 따라 죽겠소.”

“거 말 한 번 잘 하였다. 그러면 바우야, 좀 물어보자. 너 살고 나 사는 것이 좋으냐? 아니면 모두 죽는 것이 좋으냐?”

“아이고, 장군님도 참, 그걸 말씀이라고 하십니까요? 모두 살아얍죠.”

“그럼 됐다. 나도 살고 너도 사는 길을 택함에 있어서 일체 군소리 말기다. 너는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되, 절대로 입을 함부로 놀리면 안 된다는 말이다. 알겠느냐?”

“예, 알겠습니다요. 잘 알았다고요. 흐이유우~ 요놈에 주둥이 함부로 놀렸다가 본전도 못 건졌네.”

바우는 자기가 자기 입을 톡톡 때렸다.

집의 대문 앞에 이르자, 연개소문은 착잡한 감회에 사로잡혔다.
그의 외눈에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핑하니 돌았다.
바우가 쏜살같이 대문 안으로 뛰어 들어갔고, 곧 이어 연비와 총관부 낭장 오영팔을 위시하여 수많은 군관들이 우루루 몰려나왔다.

“장군, 얼마나 고생이 심하셨소? 아이구우, 이 모습은 또 어인 일이란 말씀이오?”

연비가 와락 연개소문의 왼손을 잡고 울먹거렸다.

“나야 고생이랄 게 뭐 있었겠습니까? 장군께서야 말로 그동안 집안 대소사까지 돌보느라 수고가 많으셨을 터……”

그는 군관들에게 에워싸여 집안으로 들어섰고, 가장 먼저 큰사랑으로 달려 들어갔다.
아버지 연태조가 앙상한 몰골로 누워있었다.

“아아, 아버님, 소자가 돌아왔습니다.”

연태조는 눈을 반쯤 뜨다가 도로 감아버렸다. 그제야 연개소문은 참고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렸지만, 그러나 연태조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아버지이!”

연개소문은 뼈만 앙상히 남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엉엉 울었다. 울면서 아버지의 손이 차갑다는 것을 느꼈고, 회춘의 가망성이 없음도 깨달았다.
그는 조용히 일어났다. 가슴이 답답하였다.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어머님은 이미 돌아가셨고 아버님은 저렇게 산송장이 되셨으니……. 더구나 총관부는 내가 못 돌아 올 줄로 알고 어림군의 아장과 군관이 파견되어 상시 근무하고…….’

슬프고 분통한 생각 같아선 단번에 장창을 휘둘러 요절을 내고 싶었다. 그러나 감정을 내세워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사랑방으로 나와 조복(朝服)으로 갈아입고 나섰다.
우선 영류태왕을 배알하고서 자신의 이런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는 단신으로 말을 달려 구제궁으로 갔다. 대궐 문 앞에 이르러 말을 내리고서, 시위부에 들러 태왕 배알을 위해 현신했음을 알렸다. 시위부에서는 곧 어림군의 소익환에게 이 사실을 알리는 동시에 황문시랑에게 연개소문의 동태를 전했다.

영류태왕은 마침 편전에 있었고, 황문시랑이 어전에 부복하고 아뢰었다.

“돌궐에 갔던 사신 연개소문이 돌아와 대령했다 하옵니다.”

“연개소문이? 연태조의 아들 연개소문이 왔다는 말이냐?”

“예, 그러하옵니다.”

태왕은 흠칫 놀라서 잠시 침묵했다가 조용히 분부하였다.

“짐이 대조전으로 행차할 터이니 곧 들라하여라.”

“분부 거행이옵니다.”

영류태왕이 황급히 어가(御駕)를 차려 대조전으로 납실 때, 연개소문도 황문시랑의 안내를 받아 대조전으로 향했다. 소식을 접하고 황황히 들어온 막리지 민의겸과 소익환이 황공한 태도로 대조전에서 어가를 맞이했다.

연개소문은 대조전으로 들어가 옥좌 앞으로 가서 부복했다.

“성상마마, 성체 만강하시옵소서! 신 연개소문, 대명을 받잡고 돌궐 사신으로 갔다가 이제야 돌아와 성상마마를 배알하나이다.”

“경은 그동안 만리타국에서 수고가 많았도다.”

“황공하여이다.”

영류태왕은 부복해있는 연개소문의 모습을 조용히 내려다보았다.

‘외눈에다 외팔이…… 이그으~ 흉측한지고…….’

소름이 끼칠 지경이었다. 그 총명하던 눈과 장대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초라한 몰골로 부복해있으니 오히려 측은한 생각마저 들었다.

“경은 어찌하여 그리 몸을 상하였는고?”

“성상마마, 소신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돌궐에서 당나라군에 잡혀갔다가 이 모양이 되었사옵니다. 마마, 남은 목숨이나마 오직 마마를 위해 바치겠나이다.”

외눈으로 눈물을 흘리는 연개소문을 보자, 영류태왕은 가슴이 찌릿하였다.

“경은 과히 상심 말라. 경에 대한 짐의 믿음이 돈독한 것임을 알라.”

“성상마마, 황공할 따름이옵니다.”  

연개소문이 울먹이며 사뢰었다. 소익환과 민의겸도 연개소문이 소문과 같이 병신이 된 것을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푹 쉬었다.
지난날 그토록 기개 있고 당당하던 위엄은 어디로 가버리고, 일개 필부만도 못한 추한 눈물을 보이며 태왕께 총애를 갈구하는 연개소문의 모습은 이제 그들에게 하찮은 폐인일 뿐이었다.

“경은 그만 물러가라. 짐이 경에게 응분의 조처를 내리리라.”

“성상마마,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영류태왕에게서 금은보화와 피륙을 하사받아 집으로 돌아오면서, 연개소문의 입가에는 싸늘한 미소가 감돌았다. 그날 저녁, 연개소문은 많은 총관부 군관들의 환대를 받고, 밤이 이슥해서야 아내를 찾아 안채로 들어섰다.

수련은 안채에 앉아 중문에 걸린 초롱등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아침에 잠깐 본 지아비의 몰골…… 아무래도 그것이 꿈만 같았다. 믿을 수가 없었다. 그토록 오래 그리던 지아비의 그 모습을 보고, 그녀는 가슴이 철렁 했었다. 그 늠름하고 당당하던 모습이 간곳없었다. 외눈에 외팔이…… 게다가 몹시 지친 모습……. 그녀의 가슴은 쓰리다 못해 아팠다. 쿡쿡 쑤셨다. 그녀는 하루 종일 울고 또 울었다. 아무리 울어도 자신의 설움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돌이켜 보면, 지아비를 기다리던 그 3년 세월이 오히려 행복했었다. 3년 동안, 늠름하고 당당한 장부로서의 지아비가 그녀의 가슴에 펄펄 살아있었고, 언젠가는 뼈가 녹아날 재회의 즐거움을 누리리라는, 그런 꿈이 자라고 있었다. 그 꿈이 그녀를 지탱해왔다.

‘하지만 돌아오신 것만도 다행이다.’

그녀는 곧 들어올 남편을 위해 정성껏 화장을 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제 저 중문의 초롱불빛에 그 그리운 모습을 드러내리라. 그러면 아아, 미친 듯이 뛰어나가 그를 맞으리라.’

바깥은 이미 어둠이 깔려 조용하기만 했다. 이따금 사랑채 바깥의 총관부 외실에서 왁자한 웃음소리가 바람을 타고 희미하게 들려올 뿐이었다.

‘환영연이 오래 가는구나…… 그래, 나도 이 밤이 새도록 환영연을 열어드려야지……’

후원 쪽에서 불어오는 밤바람이 한결 시원스러웠다. 내실에서 빤히 보이는 중문에 걸린 초롱불이 오늘따라 외롭게 보이질 않았다.

지아비가 오고 있었다. 막 중문을 들어서고 있었다. 비록 외눈 외팔이의 형상으로 돌아오지만, 얼마나 오매불망 기다리던 임이었던가.
그녀는 맨발로 뛰쳐나갔고, 마구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지아비에게 매달렸다.

“서방님!”

그녀의 목소리는 대번에 쉬어버리며 울음으로 변했다.

“부인!”

연개소문도 격정에 몸을 떨며 그녀를 와락 안았다. 왼팔 하나로 번쩍 안아 올렸다.

“아아, 팔이? 팔이? 팔이…….”

수련은 깜짝 놀라서 그의 품을 벗어나려고 버둥거렸다.
하지만 빠져나오려고 할수록 더욱더 옭죄어 오는 남편의 팔이었다. 연개소문은 한 팔로 수련을 끌어안은 그대로 내실로 들어섰다. 지아비의 체취가 그녀의 온 몸을 감쌌다. 그녀는 어린애처럼 엉엉 울었다.
연개소문은 방으로 들어와서야 아내를 내려놓았다.

“어린애처럼 울긴…….”

그는 아내의 눈물을 닦아주며 싱긋 웃었고, 한참동안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다가는 다시 와락 껴안았다. 서로의 체온이 뒤섞이며 전류처럼 흐르고 있었다. 억센 그의 왼팔이 그녀를 다시 감싸고, 뜨거운 입김이 그녀의 얼굴을 덮었다. 한바탕 회오리바람 같은 격정의 시간이 지나가고, 이윽고 수련은 남편의 모습을 찬찬히 살폈다. 이상하였다. 왼쪽눈가가 벌겋긴 했지만 그 가운데의 눈동자는 옛날과 조금도 다름없는 빛을 발하고 있었다. 수련은 곧 알아차렸다.

“서방님, 눈과 팔이……..?”

“왜? 내가 병신이 되어 돌아와서 싫어진 모양이오?”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정색했다.

“서방님도 참,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시어요? 살아 돌아오신 것만도 얼마나 고마운 일인데요……”

“고맙소……”

그는 다시 그녀를 으스러지게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부인, 안심하오. 실은 거짓으로 병신인 척 변장한 거요. 아니면 우리 모두 살아남지 못할 것만 같아서 말이오.”

연개소문은 그녀를 안은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서방님……”

그녀는 마구 울먹이며 말했다.

“소첩은 아침결에 서방님 모습을 뵈옵고 나서 혼자서 얼마나 울었던지 모르옵니다.”

“허허허허! 용서하시오. 사부님과 상의한 끝에 이 모양을 한 것이니…… 큰 뜻을 펼치기 위해서는 작은 수모는 견딜 줄 알아야 한다오. 이건 절대로 비밀입니다. 부인의 현명함을 나는 믿겠소.”

연개소문은 아내를 번쩍 안아 침상에 눕혔다. 얼핏 하란을 지게에 올리던 때가 떠올랐지만 얼른 지워버렸다. 연개소문의 첫사랑 공하란의 모습은 이제 그녀의 언니 수련에게 완전히 희석되어버린 모양이었다. 방에는 황촛불이 희미하게 나부끼고 있었다. 밤은 두 사람의 운우지정을 담고 조용히 깊어갔다.